얼마 전, 뭐 일이 있던 것도 아니었다. 혼자 급히 유턴을 하려다가 연석 위로 올라가차 범퍼가 우지직 깨지는 소리가 났다. 내 머릿속 계산으로는 충분히 차가 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역시 난 공간지각력이 떨어지는구나를 다시 한번 자각했다.
주차를 하고 내려서 차를 확인하니 , 아... 속이 너무 쓰리고 아팠다. 급한 대로 긴급 출동을 불러 바퀴 부분 걸리는 데만 잘라내고 다녀도 큰 불편은 없었다.
속상하지만 나중에 고쳐야지 미루고 있던 와중 갑자기 방향지시등의 속도가 1초에 몇 번씩 울리는 것처럼 엄청 빨라졌다. 왼쪽으로 가야 하는 상황이 되면, 깜빡이의 속도만큼 나도 같이 숨이 빨리 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방정맞게 깜빡이는 지시등이 괜히 부끄럽게 느껴졌다.
깨진 범퍼는 그래도 괜찮은데 '방정맞은 방향지시등' 때문에 공업사를 가야 할 시점이구나 생각이 들었다. 공업사 근처 있는 친구랑 밥도 먹고 오후에 공업사를 갈 요량으로 나왔다. 동네에 가까운 곳도 있지만 몇번 방문했던 공단공업사 블루핸즈가 감사하고 신뢰가 가서 이제 이곳으로 오게 된다.
나름 찬찬히 잘 오는데 앞에 커다란 박스가 보였다. 피해야 할 것 같은데 뒤차, 옆차 간격상 피할 수 없다. 할 수 없이 천천히 밟고 지나가면될 거 같았다.
그냥 밟고 지나가면 될 줄 알았는데.. 아뿔싸!! 차는 밑에 바퀴 범퍼 깨지고 잘라낸 부분에 박스가 걸려서 들어갔나 보다. 밟고 지나가지 못한 채 박스가 바퀴에 끼어버렸다. 자동차를 운행하는데 소리가 너무 커서 혼자 창피하고 신경이 쓰였다.
박스가 끼어버렸다
잠깐 주차하고, 빼려 하는데 빠지지도 않는다. 혼자 낑낑대고 빼려다가 민망함에 웃음이 터져버렸다. 그래도 일단, 언제나 예쁘고 밝은 중학교 때부터 베프 만나 밥 먹고, 수다 먼저 떨어야 한다. 공업사는 오후에 간다고 미리 연락을 해 두었다.
친구는 거의 매일 통화하며 일상을 이야기해도 만나면 또 이야깃거리가 왜 이렇게 많은지.... 맨날 만나 수다 떨어도 할 얘기는 넘쳐날 거 같다.
쉭쉭 소리 나는 차를 운전하고 공업사에 오다 보니 어느 순간 조용해졌다. 오다가 어디선가 저절로 빠진 모양이다.점검을 위해 내려서 자동차를 쭉 살펴보니 혼자 여기저기 잘도 긁히고 다녔다. 며칠 전 맞은 비로 먼지 얼룩이 혹시라도 옷에 묻을까 조심스럽다. 실내세차를 한 적은 언제였던가 생각도 나지 않는다. 조만간 외부 세차도 하고, 실내세차도 하고 차를 좀 사랑해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편리한 삶의 가장 큰 공헌을 해 주는 것이 자동차인데 내가 너무 홀대한 거 같다.
어쩌면 우린 가장 감사해야 할 존재에 대해서 당연하다고, 편하다고, 바쁘다는 핑계로 그 감사함을 잊고 지내는 건 아닐까 반성을 하게 된다. 정비사님은 이것저것 보시더니 부품을 주문하고 고치는 시간이 좀 필요하다고 하신다. 자동차가 고쳐지는 동안 여성 쉼터에 혼자 앉아 내 자동차를 좀 아껴주고 사랑해 줘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더 좋은 자동차를 갖고 싶다는 욕망을 자주 생각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현재 내가 갖고 있는 것에 대한 감사함과 소중함을 더 챙겨야겠다. 그게 더 중요한 것임을 새삼 생각하는 기다림의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