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내에 다녀온 아이가 저녁 식사 전 툭하고 내게 꽃을 건넨다. 꽃을 보니 어디서 샀는지 알 수 있다. 아이는 가끔 이런 꽃 한 송이를 사 와서 내게 준다.
시내 길거리에서 할머니가 가끔 꽃을 파시는 것을 본다. 아이는 분명 거기에서 꽃을 샀다. 꽃은 약간 시들었고, 포장도 썩 세련된 건 아니다.
가끔 시내에 가는 아이는 길 모퉁이에서 누추한 모습으로 꽃을 파는 할머니가 안 돼 보이는지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특히, 날이 춥거나 비가 오는 날엔 더 그렇다.
할머니를 생각하는 마음이든, 나를 생각하는 마음이든 둘 다 고맙고 이쁘다.
한동안, 중학교 2학년인 아이는 나를 너무 힘들게 했다.엄마인 내가 어떻게 내 딸이 이렇게 미워질 수 있을까 나를 자책했다. 그래도 딸의 미운 행동은 나를 자극했고, 최대한 참고 참았지만 순간순간 욱하는 감정들은 너무 자주 올라왔다.
집에서의 생활도 엉망이었으니 학교생활도 뻔했다.밤늦게까지 무엇을 하는지 문은 잠겨 있고 새벽이 되어서야 씻는 물소리가 났다. 성적과 학교에서의 부적응적인 생활로 담임선생님, 상담샘까지 면담을 했다.
사정을 해도, 협박을 해도, 부탁을 해도 아이의 변화는 크게 없었다. 그래도 1년이 지나니 빵빵하게 터질 거 같았던 사춘기 호르몬이 20% 정도 빠진 듯했고, 나의 스트레스도 아이의 호르몬만큼 빠진 듯하다. 그나마 아이와 이제 예전 몇 년 전처럼 다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이내 다시 내 혈압이 올라가긴 하지만 이젠 '미치겠네'라는 생각이 나질 않으니 이 정도면 양호하다.
너무 예뻤던 아이가 나를 이토록 힘들게 할 줄은 몰랐다. 마음이 따뜻하고 여린 아이가 그토록 고집이 세고, 고분고분 그저 '네'도 아닌 '응'이라는 대답을 하지 않을 때 나는 정말 화가 머리끝까지 나곤 했다.
"대답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야?"
난 아이의 앙칼진 가시 같은 고집을 꺾고 싶었고, 내 아이는 내게 자존심을 세워 절대 꺾이지 않으려 기를 쓰는 거 같았다. 그렇게 빵빵한 1년을 나는 나대로 참았고, 아이는 아이대로 견뎠다. 그리고 이제 조금 둘 다 부드러워졌고, 엄마와 누나 사이 애꿎은 아들만 엄마눈치, 누나 눈치를 보는 시간을 보냈다.
임신부터 출산, 육아까지! 그토록 내게 큰 숙제같 았던 아이가 기어이 사춘기까지 이렇게 내게 성장의 고통과 기회를 함께 준다.
윗몸일으키기 100개를 목표해 두고 80개까지 몸을 비틀어가며 간신히 올라온 기분이다. 이제 20개만 하면 100개다.
세상에서 가장 예쁘고 소중하고 사랑하는 자식이 이렇게 미워질 수도 있구나. 엄마라는 사람은 대체 얼마나 마음이 커져야 그 뾰족뾰족한 가시가 가득 찬 자식을 다 품을 수 있는 것인가?
사랑이라는 감정은 사랑하는 상대가 내 마음에 들어와야 하는 것이었다. 내 아이일지라도 내 통제에서 벗어나 자꾸만 나를 찔러대는 아이를 나는 미워했다. 내 마음이 더 크고 넓다면, 아이가 긴 가시로 막 움직여도 내가 찔리지 않을 만큼 내 마음의 울타리가 크다면 내가 힘들지 않았을 것이다.
예민하고 뾰족한 아이와 함께 사춘기를 보낸다는 것은 부모에게도 참 힘겨운 시간이다. 이제 그 가시가 조금씩 뭉툭해져 간다. 내 마음은 이제 둘째의 가시를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하겠지만 큰 아이로 인해 억지로 늘어난 울타리 덕분에 이 정도까지 힘들지 않기를 기대한다.
딸아이가 무심하게 툭 주는 장미.
장미는 가시가 달린 꽃이지만 이건 가시가 아닌 너무 예쁘고 아름다운 꽃이다.내 아이도 지금은 가시가 많지만 이 아이는 너무너무 예쁘고 소중한 꽃이다. 그 꽃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