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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은 바뀌었지만, 여전히 꿈을 꾼다

by 마음꽃psy

중학교 시절, 나는 국어 선생님을 정말 좋아했다.

30대 초반이었던 선생님은 전형적인 미인은 아니었지만, 날씬하고 큰 키에 호리호리한 몸매를 가졌고, 미스코리아처럼 풍성한 사자머리 파마를 자주 하셨다. 규범적이고 소심했던 나는 진취적인 선생님의 말과 생각에 매료되었다. 결혼하지 않은 채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자유로움이 무척 부러웠다. 그리고 나도 그런 멋진 국어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꿈꿨다.


시내로 나와 고등학교에 진학했을 때, 나는 시골 학교에서 느꼈던 선생님들에 대한 따뜻함과 존경심이 서서히 사라지는 것을 경험했다. 특히 좋아하던 국어 과목마저 고등학교 선생님은 재미없었고, 공부 잘하는 예쁜 아이들만 노골적으로 편애했다. 새로 사귄 친구에게 내가 겪었던 좋은 선생님들에 대해 이야기하자, 야무지게 생긴 친구는 말했다.


"너 진짜 시골에서 왔나 보다. 난 그런 선생님 만나 본 적 없어."


선생님이 되고 싶던 마음은 점차 옅어졌다. 성찰 없이 친구들을 따라 이과를 선택했고, 대학에 가고, 취업하고, 다시 대학원에 진학했다. 그리고 결혼. 남들은 쉽게 겪는 듯한 임신과 출산 과정에서 나는 인생의 바닥을 경험했다.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생각보다 강한 사람이었다. 서서히 마음을 다잡고, 힘을 얻었고, 결국 아이를 품에 안았다.


힘들고 고된 임신, 출산, 육아를 지나며 나는 비로소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7-8년간 해왔던 실험 연구 업무를 정리하고, 심리상담을 공부하며 상담과 강사 일을 시작했다. 강사로서 유치원 아이부터 대학까지 다양한 아이들과 선생님들을 만났다. 그 과정에서 자주 생각했다.


'내가 만약 선생님이 되었다면 행복했을까?'


교실에는 정말 다양한 아이들이 있었다. 외부 강사를 기대하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어떤 아이들은 노골적으로 무시하거나 우습게 여기기도 했다. 그래도 나는, 매일 보는 것이 아니기에, 하루 혹은 몇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해 친절하고 또렷하게 강의에 집중했다.


'매일 보는 게 아니니 얼마나 다행인가.'


수업을 방해하거나 친구를 괴롭히는 아이들을 매일 만났다면 나는 과연 어떤 모습이었을까. 나는 스스로에게, 모든 아이를 변화시키려 하지 말자고 주문했다. 초보 강사 시절, 모든 아이를 변화시키고 싶었던 열정은 곧 지쳐버림과 자괴감으로 돌아왔고, 그 경험을 통해 깨달았다. 나는 모든 아이를 품을 수 없고, 짧은 시간 안에 변화시킬 수도 없다는 것을.


어떤 반에서는 선생님의 표정이 굳어 있었고, 삶의 재미가 사라져 있었다. 그 모습이 이해되었다. 매일, 하루 종일 통제가 어려운 아이들과 함께하는 삶은 고단할 수밖에 없었다. 불안정한 수입과 비규칙적인 일정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에 작은 안도감을 느꼈다. 특히 힘든 초등 저학년 학급을 마친 어느 날, 복도에서 담임 선생님께 인사를 드리며 무심코 말했다.


"선생님, 많이 힘드시겠어요..."

내 또래쯤 되어 보이는 선생님은 갑자기 내 손을 잡았다. 그리고 말했다. 어떤 날은 잠도 오지 않고 숨이 막힐 것 같지만, 어쩔 수 없다며, 그저 내년에는 조금 더 나은 아이들을 만나길 기도한다고. 나는 그저 조용히 선생님의 손을 꼭 잡아드렸다.


요즘 나는 사회복지사 과정을 공부하고 있다. 사회복지사로 바로 취업할 계획은 없지만, 불안한 마음에 막연히 또 준비하는 것이다. 어릴 적, 나는 멋진 국어 선생님이 되어 자유롭게 살기를 꿈꿨다. 지금의 나는 그 꿈과는 다른 길을 걷고 있다. 하지만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 내가 하는 일이 누군가에게 작은 힘이 되고, 하루를 견디게 해주는 데 보탬이 된다는 사실이다.

나이가 들며 꿈은 바뀌었지만, 여전히 꿈을 꾼다. 그리고 사람을 향한 마음만은 여전히 변함없다. 그 마음이 지금의 나를 지탱하는 또 다른 힘이 되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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