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분에'와 '때문에' 사이에서

나는 한동안, 일이 막힐 때마다 이유부터 찾았다. 왜 이렇게 되었는지. 왜 지금은 안 되는지. 왜 나는 여기서 멈춰 있는지.


이유를 찾는다는 건 어쩌면 살아남는 방식이었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덜 미워하기 위해, 그리고 무엇보다 나를 납득시키기 위해. 그때 내 입에서 가장 자주 나온 말은 늘 비슷했다.

“시간이 없었어.”

“환경이 안 좋았어.”

“기회가 없었어.”

말들은 사실이었다. 시간은 늘 부족했고, 환경은 늘 완벽하지 않았고, 기회는 늘 공평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나는 그 문장들이 현실을 설명하는 말이 아니라 내 선택을 닫아버리는 문장이 되어가고 있다는 걸 알았다.


‘때문에’라는 말은 조용히 주어를 바깥으로 밀어낸다. 시간이, 조직이, 누군가가, 상황이. 내 커리어를 결정했다고 말하는 순간 나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난다. 처음에는 편하다. 내 잘못이 아니라는 말이니까. 내가 부족한 사람이 아니라는 해명이니까. 하지만 반복될수록 마음 한쪽이 아주 천천히 굳어간다. 나는 점점 작아지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점점 줄어든다. 무엇보다 이상한 건, 그 말이 나를 ‘위로’하는 것 같으면서도 결국 나를 ‘멈추게’ 한다는 사실이었다.


반대로, 같은 사건을 겪고도 어떤 사람들은 다른 문장을 꺼낸다.

“그 경험 덕분에 내가 약한 지점을 알았어요.”

“그 피드백 덕분에 방향을 수정했어요.”

“그 실패 덕분에 기준이 생겼어요.”

나는 처음엔 그 말이 낯설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을 보며 생각했다. 저 사람은 원래 단단한가. 저 사람은 원래 저렇게 긍정적인가. 그런데 가까이서 보면 꼭 그렇지는 않았다. 그들도 아팠고, 흔들렸고, 때로는 울었다. 다만 다르게 정리했을 뿐이다.


‘덕분에’는 현실을 미화하는 말이 아니다. 좋았던 일에만 붙이는 반짝이는 수식어도 아니다. 나를 무너뜨린 사건 속에서, 내가 가져갈 수 있는 자원을 찾아내는 언어다. 그 사건이 내 삶을 끝내버린 문장인지, 다음 문장으로 넘어가게 하는 문장인지를 내 손으로 다시 정하는 말이다. 상담현장 아니 일상에서도 자주 본다. 같은 상황을 겪었는데도, ‘때문에’에 머문 사람은 더 오래 멈추고 ‘덕분에’로 정리한 사람은 아주 작은 행동을 다시 시작한다. 상황은 그대로인데, 해석이 달라지면 마음이 달라지고 마음이 달라지면 움직임이 달라진다.


커리어는 ‘사건’이 아니라 ‘해석’으로 쌓인다. 누군가는 말한다.

“그 일 때문에 나는 끝났어.”

다른 누군가는 말한다.

“그 일 덕분에 나는 기준이 생겼어.”

두 사람의 현실이 완전히 달랐던 건 아니다. 그 사건을 설명하는 언어가 달랐다. ‘때문에’는 나를 멈추게 하고, ‘덕분에’는 나를 움직이게 한다. 그리고 나는 아주 늦게 깨달았다. 내가 바꿀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느낄 때조차,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이 하나는 남아 있다는 걸.


내가 그 일을 어떤 문장으로 남길 것인가.

요즘 “~때문에”라는 말을 자주 하고 있다면 그 문장을 억지로 지우지 않아도 된다. 현실은 현실이니까. 다만, 그 뒤에 질문 하나만 붙여보면 좋겠다.

“그럼에도 내가 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이 상황 덕분에 내가 배운 건 무엇일까.”

현실을 끝의 문장으로 둘 것인지, 다음의 문장으로 바꿀 것인지. 그 작은 선택이 커리어의 방향을 아주 조금씩 바꾼다.


오늘 하루,

내가 가장 많이 쓴 단어는 무엇이었을까.

‘때문에’였을까,

아니면 ‘덕분에’였을까.



[박소영] 매주 수천 명의 직장인에게 커리어 인사이트를 전달하는 <커리어온뉴스>의 발행인입니다. ‘성장하는 사람들의 언어’를 이곳 브런치에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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