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매일 크고 작은 사건을 만난다. 회의 자리에서 누군가의 한마디를 듣기도 하고, 예상보다 좋지 않은 결과를 받아 들기도 하고, 실수 하나를 오래 붙잡고 있게 되는 날도 있다. 반대로 뜻밖에 일이 잘 풀려 마음이 가벼워지는 날도 있다.
그런데 가만히 돌아보면 사람을 오래 붙잡는 것은 사건 자체가 아닐 때가 많다. 그날 있었던 일보다 그 일을 내가 어떤 말로 받아들였는지가 더 오래 남는다. 같은 일을 겪고도 어떤 사람은 금방 털고 일어나고, 어떤 사람은 오래 주저앉는다. 처음에는 그 차이가 상처의 크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며 조금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차이는 사건의 크기보다 그 사건을 붙잡는 해석의 말에서 갈리기도 했다.
사건은 사실이다. 이미 일어난 일이고, 없던 일로 만들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해석은 조금 다르다. 사건이 지나간 자리에 내가 어떤 문장을 붙이느냐의 문제다. 예를 들어 일이 잘 안 되었을 때 사건은 단지 ‘이번에는 뜻대로 되지 않았다’는 사실일 수 있다. 그런데 거기에 “나는 역시 안 되는 사람인가 보다”라는 말을 붙이는 순간 그 일은 단순한 실패가 아니라 나 자신에 대한 결론으로 바뀌어버린다. 반대로 “이번엔 방식이 맞지 않았나 보다”라고 해석하면 그 일은 아직 끝난 이야기가 아니다. 조금 조정해 볼 수 있는 일, 다시 시도해 볼 수 있는 일이 된다.
결국 사건은 비슷해도 그 뒤에 붙는 문장이 다르면 마음의 방향도 달라진다. 그리고 마음의 방향이 달라지면 다음 행동이 달라진다. 나는 우리가 무심코 하는 말들을 자주 관찰하고 돌아보게 된다.
어차피 안 되는 일이었어. 그 사람 때문에 망했어. 내가 원래 그런 사람이잖아.
이 말들은 순간적으로는 나를 보호해 주는 것처럼 보인다. 조금 덜 아프게 해 주고, 조금 덜 부끄럽게 해 주고, 조금 덜 책임져도 될 것 같은 마음을 준다.
하지만 그런 말들이 반복되면 어느새 내 가능성의 문도 함께 닫히는 것 같다. 설명처럼 보였던 문장이 실은 선택을 멈추게 하는 선언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 나는 사건보다 먼저 그 사건을 설명하는 내 언어를 돌아보게 된다.
나는 왜 이 일을 이렇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왜 이 실패를 곧바로 나 자신의 부족함으로 연결하고 있을까.
왜 상대의 말 한마디를 내 존재 전체에 대한 평가처럼 받아들이고 있을까.
가끔은 사건보다 내 해석이 나를 더 깊이 흔들 때가 있다. 그래서인지 나는 커리어도 결국 사건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어떤 일을 겪었는가도 중요하지만, 그 일을 어떤 언어로 정리했는가가 그다음의 방향을 더 많이 바꾸기도 한다.
같은 좌절을 겪고도 누군가는 “역시 나는 안 돼”에서 멈추고, 누군가는 “이번엔 다르게 해 봐야겠다”로 넘어간다. 그 차이는 생각보다 작아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꽤 큰 간격이 된다. 나는 이런 변화의 가능성을 ‘해석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조금 더 내 식으로 말하면 커리어는 사건으로 굳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사건을 다시 읽는 언어에 따라 다시 움직일 수도 있는 것 같다. 이것은 무조건 좋게 생각하자는 말은 아니다. 억지 낙관이나 긍정의 주문도 아니다. 아픈 일을 아프지 않다고 말하자는 것도 아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나를 더 작게 만드는 해석보다 다음 선택을 열어두는 해석이 내 삶에는 더 필요하다는 것.
오늘도 누군가는 뜻대로 되지 않은 하루를 보내고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작은 실수 하나에 마음이 오래 머물고 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누군가의 한마디를 자꾸만 곱씹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럴 때 조금 천천히 물어보면 좋겠다.
이 일은 정말 나를 설명하는 사건일까.
아니면 내가 너무 빠르게 나 자신을 결론 내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건은 지나간다. 하지만 그 사건을 해석하는 말은 한동안 내 안에 머문다. 어쩌면 오늘 돌아봐야 할 것은 무슨 일이 있었는가 보다 그 일을 내가 어떤 문장으로 남기고 있는가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