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리어온뉴스 기사를 돌아보며
어느 날, 발행된 신문 기사를 하나씩 다시 들여다보았다. 비슷한 시간에 발행된 글인데도 유난히 조회수가 낮은 기사들이 몇 있었다. 내용이 부족한 것도 아니었고, 오히려 더 깊이 있는 글이라 생각했다. 나름대로 좋은 주제와 키워드를 고른 글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사람들은 그 글을 선택하지 않았다. 가만히 제목들을 다시 바라보았다. 그제야 보였다. 그 글들의 공통점이. 조금은 날카로운 단어들, 조금은 불편한 질문들, 그리고 어딘가 나를 돌아보게 만드는 제목들이었다.
우리는 늘 성장을 말하지만 사실은 그보다 더 많이 ‘불편함을 피하며’ 살아간다. 이미 하루를 버티는 것만으로도 벅찬 사람에게 “당신의 문제를 보라”는 문장은 도움이 아니라 부담이 되고 불편함이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을 찌르는 글보다 자신을 이해해 주는 글을 선택하는지도 모르겠다.
그 사실을 조금 늦게 알았다. 좋은 글이면 읽힐 거라고 생각했다. 맞는 말이면 선택받을 거라고 믿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맞는 말’보다 ‘지금 읽을 수 있는 말, 지금 내 필요한 말’을 선택했다.
생각해 보면 그건 너무 당연한 일이었다. 우리는 늘 부족함을 알고 있고 이미 충분히 스스로를 의심하고 있다. 그 위에 또 하나의 지적이 올라가면 그 글은 배움이 아니라 부담이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을 평가하는 글보다 자신을 이해해 주는 글에 손을 뻗는다.
그날 그 공통점이 보인 이후로 나는 글을 쓰는 방식이 조금 달라졌다.
틀렸다고 말하기보다 놓치고 있는 것을 조용히 건네고,
부족하다고 말하기보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다시 보게 하고,
문제를 지적하기보다 가능성을 보여주려고 했다.
신기하게도 그때부터 글이 조금씩 달라졌다. 조회수를 보던 자리에서 이제는 글 읽는 사람의 표정을 생각하게 된다. 사람은 자신을 공격하는 글은 피하고, 자신을 이해해 주는 글을 선택한다는 것을 알기에 오늘도 나는 조금 덜 날카롭게, 조금 더 따뜻한 정보가 살아 있는 뉴스를 발행하려고 한다.
성장은 상처 위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이해 위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