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대를 졸업한 내가 졸업도 하기 전 12월에 입사 한 곳은 서울의 제약회사 연구소였다. 예전에는 꽤 큰 중견기업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입사할 당시는 재정적으로 힘든 상황이었다. 미국서 유학을 하고 오셨다는 연구소장을 비롯하여, 연구원은 나포함 8명 뿐이었다.
난 큰 꿈을 갖고 상경을 해서 새로 사귄 서울 친구와 일하며 놀며 몇 달을 즐겁고 신나게 보냈다. 그런데 갑작스레 서울이 아닌 안성에 있는 공장연구소로 출근을 해야 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너무 먼 출퇴근길에 엄두가 나지 않았다. 결국 한 달을 서너시간씩 출퇴근을 하며 다니다가 몸이 너무 힘들어 퇴사를 결정했다.
다시 서울에 있는 유명 병원연구소에 들어갔다. 시골쥐 같았던 나는 학벌도 환경도 너무 다르고, 이미 굳어져버린 그들만의 틀에 끼지 못했다. 재빠르게 취업사이트에 자주 접속했다. 그래서 한 달 후 경기도 여주에 위치한 농업기업 연구소에 다시 들어갈 수 있었다.
면접을 보러 간 그 곳은 시골 한복판에 연구소만 덜렁 있는 곳이었다. 이제 막 서울의 신나는 재미에 익숙해지고 있던 때라 약간 망설여졌다. 하지만 노느라고 통장 잔고를 신경 쓰지 못했다는 반성은 회사 측의 <아파트 기숙사 제공>호의에 결정을 미룰 이유가 없었다.
단조로운 시골 회사생활은 매일 회사-기숙사만 반복되었다. 가끔 연구원들과 면소재지에 차를 타고 나가 맥주 한잔 하는 정도가 우리가 누리는 문화였다.
선임연구원들과 동료들과 그럭저럭 잘 지냈다. 그러나 내 안의 학벌에 대한 열등감, 반복되는 일상, 무료한 시골생활 등은 내 안에서 변화의 욕구가 꿈틀대도록 만들었다. 대학원을 갈까 알아보던 중 마침 약대 과사무실에서 조교로 일하던, 고등학교 때 잠깐 친했던 친구의 추천이 있었다. 약대 대학원 진학을 하면 등록금 지원과 약간의 생활비 지원도 있고, 생약초 분야 연구이니 학부 공부와 연결도 되고, 결정적으로 다시 청주로 오면 더 좋지 않겠냐는 거였다.
집으로 다시 오고 싶은 마음과 이제 집에서 자유로와졌는데...하는 마음 양쪽의 무게가 비등비등했다. 하지만 등록금 지원과 집에서 편하게 생활하고 싶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대학교를 졸업한 지 3년 만에 약대 대학원에 다니기로 결정했다.
실험실에는 6명의 대학원 선배가 있었고, 약대 재학생 몇 명이 소속되어 있었다. 그나마 4년을 다녔던 학교의 대학원이기에 공부의 부담은 있었지만 생활이나 적응의 부담은 생기지 않았다.
그냥저냥 생활하던 어느 날, 무심코 들어간 화장실에서 나는 너무나 자존심이 상하는 뒷담화를 듣고야 말았다.
나보다 어린 학생들이
"저 옆 랩에 새로 들어온 언니 있잖아, 농대에서 왔대. 약사 꼬시려고 온 거 아냐?"
"그럴지도 모르지~회사도 다니다 왔다던데?"
내 얘기였다. 얼굴이 화끈 거라고 순간 눈물이 왈칵 올랐다. 어찌해야 할지 몰라 한참을 앉아있다가 랩으로 들어갔다. 평소에도 별로 눈치가 없다고 생각이 들었던 4학년 재학생이 말한다.
"누나~ 약사 꼬시려고 대학원 왔다면서요~?"
출처: 핀터레스트
와~~ 너무 자존심이 상해 잠시 할 말을 잃었다. 하지만 여기서 화를 내거나 얼굴을 붉히면 서로 생활이 불편해질 것을 알고 있다. 평소 말이 빠르고, 흥분하면 더 빨라지는 나지만, 이번에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천천히 말했다. 내 자존심을 지켜야 했다.
"약사가 뭐 엄청 대단한 직업이야? 나 약사 꼬실 마음 전혀 없어. 그리고 나, 서울대 나온 남자 친구 있어~. 내 사생활에 신경 안 써도 돼!"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 실제 남자 친구는 아니었으나 대학원 진학 전에 썸을 타던 오빠가 서울대를 졸업했던 거는 사실이었다. 그는 내게 꽤 호감을 보이고 있었기에 또 영 거짓말은 아니다.
그날 이후, 난 약대 졸업자들에게 나도 모르게 벽을 치고 있었다. 약대 대학원에는 약대를 졸업해서 약사 자격이 있는 대학원생과 나처럼 일반대학을 졸업해서 연구직을 위해 대학원 석박사 과정을 밟는 두 부류가 있었다.
가끔 약대 대학원에 다닌다고 하면, 약사가 될 수 있냐는 질문도 많이 받았다. 그러면 나는 속으로 큰 숨 한번 쉬고, '학부를 약대를 졸업해야 약사 자격시험을 볼 수 있고, 나 같은 일반 대학 출신 대학원생은 회사나 연구소의 연구원으로 가게 된다'고 차분히 설명을 해 주어야 하는 일이 빈번했다.
아무튼, 나는 약학 대학원을 다니며 약대 졸업생 남자와 벽을 세웠고, 어떤 소문이나 썸도 타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건 내 자존심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나는 나름 늦깎이였기 때문에 3년 늦은 나의 위치는 친구와 선배들에게 애매했다.
대학 친구들도 모두 졸업하고 없고, 그나마 친했던 대학 동아리 선배가 옆 공대 대학원에 다니고 있었다. 그와 자주 만나 밥을 먹고, 자판기 커피를 마시고, 저녁에는 술을 마셨다. 친구도 없고, 외롭던 내게 선배는 많은 웃음을 주었다. 학생 때는 재미있지만 꼰대라고 생각했던 선배의 자상한 의외의 모습을 자주 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