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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죽이는 기대, 기 살리는 기다림

기대와 기다림

by 마음꽃psy

누군가를 사랑을 하면 나도 모르게 <기대>라는 마음이 생긴다. ‘어떤 일이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면서 기다리는 마음’이 기대이다.

기대라는 것은 참으로 설레는 감정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참으로 실망하는 마음을 안겨주기도 한다.

기념일이나 생일이 다가오면 나도 모르게 이번에 나에게 선물을 할까? 혹은 어떤 선물을 해 주려나?

상대에게 기대를 하곤 했다. 기대와 기다림은 참으로 마음을 설레게 했다. 그러나 내 기대와는 달리 어떤 날은 생일인 줄도 모르고 지나치기도 하고, 내가 원하지 않는 선물을 받게 되는 때도 있었다. 그럴 때는 희한하게도 더 화가 나고 더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차라리 아무런 기대가 없었다면 실망도 서운함도 없이 오히려 더 감사한 마음이 들었을 텐데.



기대라는 감정은 감사함을 만들 수도 있던 마음을 화가 나게 하기도 하고, 서운하게 하기도 하고, 실망감을 만들기도 한다. 오히려 기대하지 않던 사람에게 안부 문자만 받아도 놀라움과 감사, 감동이 일어나기도 하는데...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이나 가까운 사람에게 나도 모르게 자꾸만 기대라는 감정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내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그로 인해 속상하고 힘들어지는 경우가 너무 많다. 기대의 마음속에는 <당연함>이라는 것이 함께 자리 잡는 경우가 많다.

나를 사랑하면 당연히 내 생일 정도는 알아서 선물을 하겠지?

가족이니까 당연히 이렇게 해주겠지?

친구니까 당연히 이 정도는 해 줄 수 있겠지?

이런 당연함과 기대감이라는 마음(감정)은 내 안에서 나를 성숙하지 못하게 방해할 때가 많았다.


얼마 전, 나는 당연함과 기대라는 것이 얼마나 상대를 아프게 하는 것인지 알고 있으면서도 가족이라는 이유로, 사랑한다는 이유로 딸을 아프게 했다.

이제 중학교를 준비해야 하기에 수학 문제집을 가끔 풀어주곤 한다. 하지만 설명하다 보니 정말 속이 터지고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6학년이면 교과서에 나오는 이 정도는 알아야 한다, 아니 내 딸이면 당연히 이 정도는 알고 있을 것이다”라는 기대와 높은 기준이 제 마음 안에 있었나 보다. 나름 천천히 설명을 한다고 하는데 답답해하는 제 마음이 전해졌을 것이고, 내성적인 딸아이가 눈물을 보이는데 갑자기 너무 속상하고 화가 났다.

도 모르게 나온 말이

6학년이면 당연히 교과서 배운 거 알아야 하는 것 아니니?”



아... 1학년이면 당연히 한글을 알아야 하고, 3학년이면 당연히 영어 알파벳을 읽어야 하고, 6학년이면 당연히 분수 곱셈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누가 정해놓은 것이길래 당연히 알아야 하는 것일까? 학교에서 배웠으면 당연히 다 알고 기억해야 하는 것일까?


고등학교 때 그렇게 열심히 미적분 풀었는데 지금 기호조차도 생각나지 않는 나는?

20년 이상 영어를 공부했으면서 영화 볼 때 왜 하나도 못 알아듣는 건데?

경제 과학 사회 역사 다 배웠는데 왜 기억 못 하는 건데?

라고 누군가 물어보면 나는 뭐라고 답해야 할까?


배워도 모를 수도 있고, 기억이 안 날 수도 있는 것이라는 것을 잠시 잊었다. 생각하고 연습할 시간을 주고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잠시 잊었다.


한번 배웠다고 다 알면 누구인들 공부가 뭐가 어려울까? 그렇지 않다는 것을 다 알고 있으면서도 나도 모르게 내 아이에게 기대했던 내 마음으로 인해 속이 상했다.


바쁘다는 핑계로 아이들 숙제 한 번, 공부한 번 제대로 봐주지 않았고, 제대로 챙기지 못했으면서 아이들이 알아서 다 해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내 아이들이니까 당연히 잘하고 있으리라 기대했다. 아이가 충분히 연습할 시간과 기다림이 필요했는데 알고도 자꾸 잊어버린다.


사랑하는 상대에 대해 당연함과 기대라는 마음을 거두고, 기다림이라는 응원과 격려가 더 힘이 될 때가 있다. 당연함과 기대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있지는 않을까?


기대와 기다림, 상대를 설레게 하고, 나를 행복하게 하는 말이다. 그러나.... 때로는 기대가 사랑하는 사람의 기를 죽이기도 한다. 그리고 기다림은 그 기를 살려주기도 한다. 아이들에게는 기를 살려주는 기다림이 특히 더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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