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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을 이어간다는 것의 책임감과 시대 변화의 사이에서

김장을 준비하며

by 마음꽃psy

김장을 생각하니 지난달부터 신경이 쓰였다. 내가 준비해서 책임감으로 해야 하는 일이 아닌데도 계속 신경이 쓰였다. 많이 하거나 어려운 일을 하지는 않는다. 집에서 40분 거리 외곽에 사시는 어머니댁에 가서 어머니가 다 준비해 주시는 대로 난 시키는 것만 하거나 주로 주방에서 식구들이 먹을 식사 준비를 하면 된다. 물론 이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날리는 낙엽이 멋진 장면을 연출했다

혼자 계시는 어머니, 우리 4 식구, 시누네 4 식구, 가까이 계신 시이모님 등 열댓 명이 주로 모이게 된다.

음식을 예쁘게 맛갈스럽게는 아니지만, 나름 맛있게 한다는 소리를 종종 듣고, 손이 작아 그렇지 그래도 일 년에 제사를 몇 번 지내는 장손 며느리로 15년을 살았다. 우리 엄마는 큰 농사지으며 바쁘면서도 쪼그만한 셋째 딸이 늘 안쓰럽고 불쌍하다고 집안일을 많이 시키지 않았다. 그리고 언니들이 있기에 결혼 전 전기밥솥으로 겨우 밥만 할 줄 아는 상태로 결혼여 홀로 계시는 어머니와 함께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어머니와 함께 살며 반찬 만드는 법, 제사 음식 하는 법, 다양한 살림의 노하우 등을 배우며 8년을 함께 살았다. 어머니와 함께 살던 때에는 설, 추석 명절 외에도 정월대보름, 단오, 동지, 김장 같은 특별한 날에 하는 다양한 전통문화 같은 것도 때때로 챙기곤 했다. 특히, 대보름 명절에 오곡박, 나물반찬, 부럼 등 해야 할 것들을 잘 챙기며 들어도 모를 어린아이들에게 조잘조잘 설명도 해 주곤 했는데, 오히려 지금 알아야 하는 시기인데 제대로 챙겨본 적이 없어서 자연스레 설명할 기회를 만들지 못했다.


올해로 결혼 15년 차, 혼자 김치를 담가본 적이 없다. 된장, 고추장, 간장 같은 것도 물론 담가본 적이 없다. 시어머니와 함께 살 때는 어머니가 하실 적마다 옆에서 잔심부름을 하거나 지켜본 적은 있지만, 분가 이후에는 김치와 장들을 여기저기서 얻어서 먹거나 사 먹곤 한다. 바쁘다는 핑계, 귀찮다는 핑계, 아직은 내가 안 해도 해주시는 엄마도 계시고, 어머니도 계시니까...

무도 예쁘게 다듬어 절여놓고


김장을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재료 준비도 많고, 육체적으로도 많이 힘들다. 김장을 하는 날이 매섭기라도 하면 김장 후 몸살이 나기 일쑤다.

다음 주로 예정되었던 김장이 이번 주로 바뀌며 우리도 마음이 바빴다.

옆동네 사시는 시이모님이 농사지으신 무, 배추, 갓, 파 등 김치 재료들을 가져왔다. 배추를 가르고 씻고, 무와 파 등을 다듬고 씻는다. 어른들이 밖에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을 때 초등 4~중2까지 우리 아이들 둘과 조카 둘은 방에서 각자 아이패드나 핸드폰을 하고 논다. 뭔가 그래도 알려줘야겠다는 생각에 아이들을 부르지만 초등 4학년 아들만 나와 조금 거들며 힘이 들고 재밌다고 한다.

어머니가 소금을 뿌리며 우리들에게 말씀하셨다.

"잘 봐 둬야 나중에 나 없어도 김장 해 먹지~"

하시는데 동갑인 시누이가 말한다.

"엄마, 나중에 우린 김장 안 먹어. 사 먹을 거야"

어머니가 안 계시면 김장 안 하게 되겠지? 나도 마음으로 생각하던 차인데 말씀하시니 뭔가 뭉클했다.

이모님 댁에서 가져온 배추가 아주 이쁘다

하지만 난 가끔 생각한다. 아마 우리 세대 이후 많은 전통문화가 사라질 수 있겠구나.....

우리 어릴 적에는 김장을 하면 어린 나도 돕겠다고 꽁꽁 언 손을 비비며 뭔가를 하겠다고 왔다 갔다 했다. 된장을 담그는 날에도 우리는 엄마랑 콩을 삶고, 메주를 만들고, 뭔가 우리 식구들이 1년 동안 먹을 귀한 일을 함께 한다는 것에 신나기도 했다. 정월대보름이면 나물 반찬, 오곡밥을 꼭 해 먹었고, 쥐불놀이 같은 것도 신나게 했댔다. 동지도 명절로써 엄마는 내가 좋아하는 새알을 넣고 팥죽도 꼭 해 주시곤 했다. 그렇게 전통은 나의 생활 속에도 자연스럽게 있었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에게는 아니었다. 아이들은 추석, 설 명절이 아니고 다른 날은 책에서나 잠깐 봤을까 말까 한 날이고, 된장 고추장은 당연히 마트에서 사 먹는 것으로 생각한다. 가끔 외할머니나 할머니 집에서 손이 작은 엄마가 작은 반찬통에 담아오면 되는 것으로 생각한다.


요즘 세대, 나 같은 엄마 우리 집 같은 집이 많아지면 그냥 자연스럽게 오랫동안 전해 내려 오던 전통문화가 사라지는 거구나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할머니로부터, 엄마로부터 자연스럽게 알게 된 전통을 내 아이들은 경험하지도 알지도 못한 채로 보낸다는 게 뭔가 책임감을 다하지 못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친한 지인이 예전에 된장이나 간장 같은 것을 만드는 것을 배워놔야 전통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말씀을 하셨을 때, 흘려들었고 난 관심이 없었다. 그저 '관심 있고 좋아하는 사람이 배우면 되지~ 난 나중에 다 사 먹을 거야.' 속으로 생각했다. 어머니 마당의 항아리들이 새삼 다시 보였다. 이 항아리들 안에는 어머니가 날이 좋은 날 만드신 고추장, 된장, 간장들이 얌전히 들어있다. 그리고 오늘 김장준비를 하며 어머니가 건강하게 움직이실 때까지 아마 김장을 함께 하겠지만 어머니가 안 계신 이후에 나는 김장을 홀로 할까? 하는 생각을 한다. 예전만큼 김치를 많이 먹는 시대도 아니고, 먹을 것이 넘쳐나는 시대, 굳이 몇십 포기씩 꼭 일 년 김치를 해야 하는가? 김장을 하기 전에 여러 생각이 들곤 했다.

마당의 항아리들도 다시 보게 되고.


좋은 전통문화를 지켜가고 이어주는 것도 지금 나의 세대에게 필요한 것이구나 새삼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내가 계속해서 김장을 하고, 오곡밥을 해 먹이고, 동지에 팥죽을 해 먹이는 사람이 될 것 같지는 않다. 전통을 예전처럼 꼭 집에서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니까. 시대가 바뀌었으니까...

된장을 사 먹고, 김치를 주문해서 먹고, 식당에서 오곡밥을 먹으며 우리의 전통문화와 음식에 대하여 잊지 않는 것, 아이들과 함께 하며 알려주는 것만으로도 변화하는 시대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 나는 또 비겁한 변명을 하고 나를 위안한다.


아이들은 학교를 가고 나와 남편은 회사를 가야 하기에 배추를 절이고, 양념장 준비만 해두고 집으로 왔다. 내일 어머니와 이모, 시누이가 김치를 다 해서 김치통에 예쁘게 담아 놓으면 나는 많이 미안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내일 어머니께 들러 김치를 가져오고 일 년 또 맛있게 먹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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