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보면 난 음식에 참 까탈스러운 아이였다. 먹는 것도 별로 없었다. 나는 소위 말하는 '비위가 약한 사람'이었다. 지금도 가리는 음식이 좀 있지만 30살 이전에는 많았고, 20살 이전에는 대체 나는 뭐를 먹고 살았나 싶게 먹는 것이 한정적이었다.
고기도 비계가 없는 완전 살코기만, 기름기가 둥둥 떠 있는 국물은 먹지도 못했고, 닭고기 껍데기는 만지기도 싫었고, 뭉클거리는 식감을 가진 것들은 먹지도 못했다. 치즈나 마요네즈 같은 묘한 냄새나는 것들 옆에만 가도 메슥거렸다. 우유를 먹으면 배탈이 나고, 생선도 눈이 보이면 먹기가 싫어져 가운데 조각만 먹었다. 젓갈류는 상에만 올라와도 입맛이 사라질 정도였다. 이러고 보니 대체 난 뭘 먹고 그나마 이 정도라도 큰 건가 신기하고 감사할 정도다. 유전을 제외하고서라도 형제들 중에 내가 유난히 작고 키가 안 큰 게 당연하기도 하다.
식성이 바뀌기 시작한 것은 20살이 되어서부터이다.
대학생이 되니 함께 다니는 사람들이 별거 별거 다 먹으니 나는 불편했다. 남자 선배들, 동기들 같이 다니다 보니 먹고 싶지 않은 것을 먹어야 하는 일이 생기기 시작했다. 삼겹살을 빠짝 구워서 남들 10조각 먹을 때 나는 한 조각 먹기도 어려웠다. 젓가락으로 내 거 하나를 정해 기름기가 다 빠질 때까지 짚고 있어야만 했다. 내가 잠깐 한눈이라도 팔면 그것도 없어지기 일쑤였다.
그러나 배가 고프니까 나도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고 먹어야 했다. 삼겹살도 남들처럼 먹기 시작했고, 순대국밥도 먹고, 선지 해장국도 먹었다. 먹어보니 내가 선입견으로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맛있었다. 경험해보지도 않고 내가 가진 선입견만으로 판단한다는게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치킨도 가슴살만 먹었던 내가 날개가 더 맛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치즈를 잔뜩 올려 먹는 것들이 많아졌다. 그동안 안 먹고살았던 시간이 억울하고 아깝게 느껴졌다. 왜 이제야 이 맛있는 다양한 것들을 먹기 시작했을까?
얼마 전, 아들이 유투버 누군가 곱창을 맛있게 먹는 것을 보았나 보다. 곱창을 먹어보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다. 그래도 10년 키워 본 엄마로서 그 식감이 그 입에 맞지 않을 것이라 예감했다. 하지만 다양한 음식을 먹어봐야 나중에라도 먹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못 먹더라도 사줘야 한다. 엄마인 나도 곱창을 먹기 시작한 게 고작 3년 전인데...
동네 새로 생긴 곱창집에서 세트를 시켰다. 곱창, 막창, 갈비 뭐 등등이 사진상으로 맛있어 보였다. 아들은 한껏 기대에 차서 곱창 한 점을 입에 넣어보더니 얼굴이 일그러고 씹지도 못하고 엄마를 쳐다본다.
입에 맞지 않는 음식을 먹었을 때 그 당혹감과 곤욕을 알기에 얼른 화장지를 뽑아주고 뱉게 했다. 옆에 딸아이는 냄새도 자기랑 맞지 않는다고 한다. 옆에 나온 떡과 고기를 주니 곱창 맛과 냄새가 배어서 그것도 못 먹겠다고... 결국 집에 가서 만두를 구워 먹었다.비록 입에 맞지 않는 음식이었지만 새로운 도전을 해 본 것만으로도 칭찬해주었다.
아이들이 새로운 음식에 대하여 호기심이 별로 없고, 내가 싫어하는 식감을 비슷하게 좋아하지 않는 것을 보면 엄마의 영향이 큰 듯하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 재료로만 요리를 하고 내가 싫어하는 부위들은 요리 전 미리 가위로 다 잘라냈다. 내가 어쩌면 애들 다양한 식성을 차단하고 방해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처럼 어른이 되어 더 많은 것을 먹어보고 좋아하는 것이 생길 수도 있겠지만 그 맛있는 것들을 너무 늦게 알게 된 것이 억울하고 속상할 지도 모른다.
내가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니듯, 내가 먹어본 음식이 전부가 아니다. 세상엔 얼마나 다양하고 맛있는 음식이 많을 텐데 늘 먹던 음식만 먹으면 너무 단조로울 것이다. 여행으로 새로운 곳을 경험하듯, 새로운 음식에 대한 경험 또한 인생에서 즐거운 도전이 되었으면 좋겠다. 아이들에게 새롭고 맛있고 즐거운 경험을 많이 해 주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식성이 바뀌어서 인지, 나이가 들면서인지성격도 좀 달라진 것 같다. 까탈스럽고 피곤하게 원칙을 따지고, 지적을 잘하던 면들이 좀 더 누그러진 거 같다. 뾰족뾰족하던 내 성향이 조금은 더 둥글둥글해지고 원만하게 넘어가는 것들이 생긴 것도 같다. 그리고 점점 왜 어른들은 저런 게 맛있다고 하시지? 했던 것들이 나도 맛있어지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