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에, 음식물이 쌓인다.

내 마음에는, 죄책감이 쌓인다.

by 마음꽃psy

며칠 전부터 냉장고 문을 열기가 두려워졌다. 장고를 열면 마음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냉장고에 무엇인가 많이 들어차 있다는 이야기다. 그것들이 싱싱한 것이 아니라, 이제 썩어가고 물러져 가는 채소와 오래된 반찬들로 채워진 것이다.


죄책감이 들기 시작한다.

엄마가 농사지어 자동차로 한 시간을 갖다 주신 채소와 과일, 어머니가 틈틈이 텃밭에서 기른 채소들과 그것으로 만든 반찬들. 워낙 손이 작은 딸과 며느리를 아시는 지라 조금씩만 주신다. 그런데 그마저도 다 제 때 해 먹지 못했다. 그리고 오랜만에 간 마트에서 싱싱해 보여서 샀던 채소들, 냉장식품들이 야채칸에 들어간 지 언제였나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냉장고에 음식재료, 반찬이 쌓이기 시작하면 내 마음에는 죄책감이 쌓인다.

내가 제때 음식을 만들지 않았구나...

내가 가족들을 위해 좋은 음식을 만들지 않았구나...

내가 다른 음식을 먹었구나...(외식, 배달음식, 냉동식품..)


다듬고 씻어서 주신 채소나 과일들이 물러진 것을 보면 너무 속상하고, 어머니와 엄마한테 죄송스럽고, 제때 맛있게 해주지 못한 가족에게도 미안하고, 음식물 버리면 벌 받는다는 어릴 적 어른들 말씀이 떠올라 마음이 무겁다. 지구촌 어느 누군가는 마실 물도 부족해서 죽어간다는 티브이 속 아이들의 모습도 스쳐 지나간다.


몇 개월에 한 번씩 냉장고 정리를 다.

올해는 뭐가 그리 정신이 없었는지 그나마도 하지 못했다. 아무도 없을 때, 냉장고를 열고 오래된 과일, 물러버린 채소, 곰팡이가 펴버린 반찬, 유통기한이 몇 달이나 지난 반조리식품 등 다 꺼내고, 까만 봉지 안에 다 채웠다.

꽤 무겁다. 무게보다 내 마음은 몇 배나 더 무겁다. 이게 다 얼마야, 이걸 갖다 주려고 정성 들이신 부모님 얼굴이 떠오른다.


그래도 난 남편도, 아이들도 없을 때 증거를 없애야 한다.

엘리베이터에서 이웃 만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종량제 카드를 들고나가 아까운 음식물이었던 쓰레기를 음식쓰레기통에 넣으니 기계가 친절하게 3.4kg이라고 이야기해준다. 행여나 누가 들을까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후다닥 올라왔다.


싱크대에는 반찬통 비운 설거지거리가 가득하고, 쓰레기통에는 여러 비닐봉지가 가득이다.

설거지를 하며 여전히 난 마음이 무겁다.


너무 바빠서, 할 일이 많아서, 애들이 안 먹으니까, 나 혼자 먹자고 뭔가를 만들기가 번거로워서....

난 이렇게 비겁하게 하고 싶은 변명 많다.

냉장고를 비울 때 나는 좋은 엄마, 좋은 아내, 좋은 주부, 좋은 지구인이 되는 것에서 조금 멀어다.


냉장고가 빨리 비워질 때, 내 마음도 가벼워진다.

그림출처: 핀터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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