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을 당한다는 것은 마치 로봇처럼 기계를 조작하는 주인이 따로 있어서 프로그래밍된 대로 혹은 작동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것이다. 조종당한다는 것은 나의 의견이나 마음에 상관없이 누군가에게 마음대로 다루어지고 부려진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휘둘린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때로는 부모에게, 상사에게, 친구에게 또는 주변 사람들에게 우리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조종을 당하기도 한다.
사진출처: 핀터레스트: 꼭두각시 인형
과학과 최첨단이 발달하는 시대에도 인간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과 다양한 사회문제로 인해 스트레스는 증가하고 그 스트레스와 불안감을 해결하기 위해 어떤 이는 상담실을 찾아가기도 하고 어떤 이는 신경정신과를 찾아가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철학관이나 역술인 혹은 무속인을 찾아가기도 한다.
전에 몇 번 사주를 보러 간 적이 있었다. 통계자료에 의하면 한국 국민의 70% 정도가 직간접적으로 사주를 본 적이 있다고 한다. 그냥 뭐가 딱히 궁금해서 간 것은 아니고, 새해가 되면 신년운세도 궁금하고, 호기심도 생기고, 진짜 사주팔자가 딱 맞는가? 궁금하기도 했다. 사주팔자대로 사는 건 뭘까? 내 사주팔자는 좋은가? 올해 사주팔자에 행운이 있을까? 뭐 이런 막연한 생각만 있었다.
외곽지역에서 지인 두 분과 맛있는 것도 먹고, 간 김에 그쪽에 tv에도 나온 유명한 철학관이 있다고 하여 우리 셋은 방문해 보기로 하고 예약을 했다. 속리산 근처 반찬이 수십 가지 나오는 정식을 먹고, 기분 좋게 드라이브하며 철학관으로 갔다. 그냥 시골마을에 있는 주택이었고, 나보다 20살쯤 많아 보이는 아저씨가 한분 계셨다. 궁금해서 간 것도 아니었는데 거실에서 대기하며 앉아있는데 긴장이 되었다.
이게 뭐라고 긴장이 되는지 참 우스운 느낌이 들었고, 명리학자나 점쟁이들이 나를 더 알지 못한다는 것에 대한 신념이 있음에도 나도 모르게 긴장이 되었다. 함께 간 지인들이 먼저 상담을 했고, 한분당 거의 1시간씩 걸려 상담을 하셨다. 뭐가 그리 할 말이 많고 물을 것들이 많으신지 기다리는 것이 지쳐갈 때쯤 내 차례가 되었다. 책상 앞에 나도 모르게 다소곳하게 앉았다.
남편과 나의 생년월일 생시를 말하고 나서, 그분이 뭔가 찾으며 노트에 끄적이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랬더니 그냥 몇 가지 한자를 쓱쓱 적더니 반말을 하신다.
나의 첫 질문은
"제가 어떤 공부를 새롭게 하고 있는데 그 일로 제가 잘할 수 있을까요?"
그랬더니 그 일은 저랑 잘 맞지 않고 다른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사실은 그 순간부터 나는 마음이 상했고, 더 이상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았고, 내가 왜 여기 와서 돈을 쓰고 있나 후회가 들었다. 그리고 마음 안에서는
'그래, 뭐라고 남의 인생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시나 들어나보자'
하는 반감으로 앉아 있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별로 맞는 느낌이 없었다. 집안 이야기도 맞지 않고, 성향 이야기도 맞지 않았지만 그냥 듣고만 있었다. 그러시더니 대뜸 남편이 바람기가 있으니 부적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그때 너무 어이가 없었지만 호기심이 생겼다.
다른 것은 몰라도 나는 남편의 여자관계에 대한 신뢰는 확고했고, 아니 '혹시 바람을 피운다고 하더라도 나만 모르면 되지'라는 생각과 부적으로 막아질 바람일 것이면 너무 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적이 얼마인지 물어보니 원래는 더 비싼데 본인이 직접 쓰시기 때문에 30만 원까지 깎아줄 수 있다고 했다. 부적은 남편의 바람기도 잡고, 승진운도 만들어준다는 것이었다. 부적을 두 장을 써 줄 테니 한 장은 베개에 넣어두고, 한 장은 지갑에 항상 갖고 다니면 된다는 것이다. 승진운이라는 말에 살짝 혹 하기도 했으나, 승진이라는 것도 본인의 능력과 연차가 되면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일이라 이것도 30만짜리 부적으로 해결되는 것이면 인생이 너무 쉬워지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분께 물어보았다.
"그런데 만약에 부적을 썼는데도 제 남편이 바람피우면 어떡해요? 올해 진짜 승진 보장되어요? 안되면 책임지실 거예요? 부적 비 돌려주실 거예요?"
하고 물어보니 그건 안 되는 일이란다.
"남편이 바람을 피워도 저 모르게 피면 괜찮아요. 그리고 바람 안 피울 사람이고요. 저 그냥 부적 안 쓰겠습니다 선생님"
하고 나왔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남편의 이야기가 아닌 내가 관심 있는 공부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는데 엉뚱한 것에 초점을 맞추는 선생님이 왠지 답답하고 원망스럽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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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나는 부적보다 그분으로부터 엄청 큰 것을 배웠다.
내가 왜 내 돈 내고, 내 인생을 남의 입을 통해 들으려고 했을까? 우스웠다.
나에 대해 가장 잘 알아야 하는 것도 나이고, 내 인생을 결정하고 살아가는 것도 나인데, 나를 언제 봤다고 생년월일을 가지고 내 인생을 논하게 하였는가 어리석었던 나에 대한 성찰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상담자로서 내담자에게 어떤 모습으로 이야기를 듣고 해야 하는지에 대한 것도 많은 공부가 되었다. 사실, 내가 당시 마음이 힘들고 심약해진 상황이고, 늘 남편에 대한 불신으로 지냈다면 어쩌면 부적을 쓰고 왔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심리학을 공부하고 있었고, 내 마음과 다른 사람의 마음 작동에 대해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흔들리지 않고 객관적으로 이야기를 들으며 판단하고 나올 수 있었다.
내 인생은 내 것이고, 내 마음도 내 것이다.
내가 정신 차리지 않으면 상대는 내 마음을 조종하고 나를 휘두르며, 내 의지와 상관없이 돈을 쓰기도 하고, 시간을 허비하는 일도 생긴다.
그런데 내가 조종당하고 휘둘리는 것은 나도 모르는 상황에서 이루어진다. 내 인생을 내가 선택하기 위해서는 나를 잘 관찰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금 내 행동이 적절한지, 내가 선택을 하고 있는 것인지, 상대에게 이끌려 가고 있는 것인지 멈추고 바라보아야 한다. 나를 잘 관찰하는 것은, 내 인생을 내 뜻대로 살아가고, 내 인생에 책임을 질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