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음꽃psy Dec 13. 2021

도시락이 주는 소소한 행복

함께하는 것의 즐거움

많은 주부들은(?) 아마 누군가가 차려주는 밥상의 감사함을 더 많이 느낄 것이다. 매일 밥상을 차리며 이것이 얼마나 어렵고 때론 귀찮고 고된 것인지 나도 아줌마가 되어서야 깨닫게 되었으니까.

올해 사무실에 출근하며 선생님들과 옆에 있는 밥집에 가서 점심을 먹는 것이 좋았다. 가격도 부담스럽지 않으며 반찬도 내입에 꼭 맞아 너무 맛있었다. 점심시간을 기다리게 되었다.


어느 날, 다른 선생님 한분이 제안을 하셨다. 도시락을 싸오는 게 어떻겠냐고. 그냥 집에 있는 반찬 한두 가지 싸오면서 편하게 먹자고 하시는데 한편으로는 도시락 반찬을 고민하는 것도 싫고, 번거롭지는 않을까 살짝 귀찮은 마음도 들었다. 현재 가는 밥집이 너무 맛있어서 아쉬운 마음도 들고, 또 한편으로는 밥값을 아껴 아이들 고기라도 한번 더 사주게 되니 좋은 점도 있고.... 이런 여러 마음으로 도시락을 싸오기 시작했다.

오늘의 반찬: 어묵양파볶음


도시락 반찬을 쌀 때마다 엄마 생각이 났다. 우리 엄마는 4남매 도시락을 싸느라 얼마나 고민하고, 얼마나 피곤했을까...? 도시락 반찬이 별거 아닌 거 같아도 은근히 신경 쓰이는 일이었다. 

난 친구들처럼 진미채나 쥐포채 같은 마른반찬을 싸주셨으면 좋겠는데 엄마는 나물이나 김치볶음을 자주 싸주곤 했다. 몇 년 전에 어쩌다 도시락 얘기가 나와 엄마에게 말을 했다.

"엄마, 왜 맨날 나물하고 김치만 싸준 거야~?"

"엄마가 그랬니? 몰러 기억도 안나. 그냥 집에 있는 거 싸는 거지. 맛있는 거 못 싸가서 속상했니? 미안하다 얘~. 반찬 투정이라도 하지. 그러면 엄마가 알았을 텐데.."

아, 그러고 보니 난 반찬투정을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냥 입에 안 맞으면 내가 안 먹거나 적게 먹고 말았다. 맛있는 것을 만들어달라고, 맛있는 반찬을 싸 달라고 이야기를 한 적도 없었다.  30년이 지나 맛있는 반찬을 못싸주어서 미안하다고 말씀하시는 엄마에게 내가 더 미안해졌다.




도시락 반찬을 보면 그 집의 식탁이 보였다. 대여섯 분의 선생님의 음식 성향이 보였다. 어떤 선생님은 몇 가지 반찬을 정갈하게 싸오셨고, 또 어떤 분은 손이 크셔서 반찬의 양이 많고, 또 어떤 분은 밥을 잘 안 해드셔서 맛있는 김을 꼭 싸오시거나 컵라면을, 나처럼 아이들이 있는 집은 어묵이나 소시지, 동그랑땡 같은 냉동식품을 구워서 싸오기도 했다. 도시락을 싸와서  먹는 점심시간은 꽤 즐거웠다. 도시락 반찬 뚜껑이 열릴 때마다 즐거운 리액션이 나왔다. 그리고 무엇보다 밥을 다 먹고 나도 점심시간이 30분도 넘게 남아 우리는 커피를 함께 시고 여유로운 수다시간을 가질 수 있는 행복 시간이 생겼다.


처음 번거로울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도시락 점심은 또 하나의 출근 즐거움이 되었다. 어릴 때의 나처럼 입이 짧은 것도 아니고, 다른 집의 다양한 반찬을 먹는 것도 새로움이고 즐거움이고 또한 기대감이었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도시락을 들고 다닌 것이 이십 년도 넘었다. 그때는 무거운 가방에 도시락 가방까지 너무 무겁고 힘들었는데, 지금은 그냥 쇼핑백 하나에 가볍게 들고 와서 맛있게 먹고 더 가볍게 들고 간다.

생각지 못한 선생님의 작은 제안이 우리 모두에게 소소 즐거움과 행복 시간이 되어주니 참 감사한 일이다.


이번 주가 도시락 마감주이다. 올해 일이 마무리가 된다. 다들 아쉬운 마음으로 내년에는 종이컵도 줄이고, 나무젓가락도 줄여보자는 '소소하지만 실천을 해 보자'는 이야기로 점심시간 유익한 결론을 지었다. 이렇게 멋지고 좋은 분들과 내가 함께 하고 있다는 게 또 감사한 마음이다.

누군가 차려주는 밥상도 좋지만 모두 함께 차리는 밥상은 더 큰 행복이 되었다. <함께 하는 것의 즐거운 힘>이다.


갑자기 집에서도 아이들과 함께 밥상차리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 혼자 준비하고 차리는 것을 당연함으로 받아들이게 하기보다 아이들이 반찬을 꺼내어 상을 차리고, 함께 식사준비를 할 때 더 큰 행복과 감사함을 느낄 수 있도록 기회를 주어야겠다.

오늘의 간식: 딸이 만든 커피번
매거진의 이전글 모성애는 아이와 함께 자라났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