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음꽃psy Dec 12. 2021

모성애는 아이와 함께 자라났다

처음부터 모성애가 있는게 아니었다.

과 쥐가 너무 무섭고 징그럽고 싫다. 뱀과 쥐가 나에게 어떻게 해를 입힌 것도 아니고, 나를 괴롭힌 것도 아니다. 그냥 본능적으로 싫었다. 그런데 우연히 뱀과 쥐가 나오는 동영상을 보며 <어미의 사랑>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어미의 새끼에 대한 사랑이  "자신의 목숨을 내 줄만큼 위대한 것이구나" 하는 것에 감동이 일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7DM_u3D42xM&feature=emb_imp_woyt

설치류인 쥐조차도 자기가 죽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새끼를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뱀과 싸다. 쥐와 뱀을 무서워하는 나도 어미쥐의 모성애에 끌려 끝까지 보게 되었다.      

                                                                                                                                                                   

아들과 함께 잠자리에 누우면 아들은 가끔 묻는다.

"엄마는 우리를 더 사랑해? 외할머니를 더 사랑해?"

잠깐 망설이는 척 하다가 대답을 한다.

"엄마는 너희를 더 사랑해, 원래 부모가 자식을 더 사랑하는 거야."

"그러면 외할머니가 서운하지 않을까?"                                              

                                                                              

 아들은 엄마가 누나를 더 사랑하는지, 자신을 더 사랑하는지, 아빠를 사랑하는지, 할머니를 사랑하는지 우선 순위가 늘 궁금한가보다. 나의 대답은 늘 한결 같았다.

"지금 엄마 옆에 있는 사람. 너랑 있을 땐 너고, 누나랑 있으면 누나라고 할꺼야."

아들은 그 대답을 좋아한다. 늘 자신이 옆에 있을 때 물어보고 누나는 그런 질문을 잘 하지 않으니까.   

                                                                                                         



난 엄마가 되면 처음부터 모성애가 내 마음에 꽉 차있는 것인 줄 알았다. 첫아이 너무 아프고 힘겹게 보내고, 그렇게 애타게 기다리던 아이였는데도 아이를 키우며 내 몸이 힘들면 짜증도 나고, 잠을 자지 않거나 제대로 먹지 않으면 화가 나기도 했다. 이런 내 감정에 나는 '모성애'가 없는 엄마일까? 나는 왜 무조건적으로 아기가 이쁘지 않은 걸까? 죄책감도 들고 자책감도 들었다. 흔히 하는 말 중에 "여자는 약하나 어머니는 강하다"라는 말도 있는데, 왜 나는 드라마나 영화에서 나오는 엄마처럼 모성애로 모든 것이 해결되지 않는 것일까 자괴감마저 들곤 했다.

                                                                                                                       

그러나 나의 모성애도 아이가 자라며 함께 자라났다. 아이에게 젖을 먹이고, 눈을 마주치고, 볼을 부벼가며 뽀뽀를 하며, 기저귀를 갈고, 울고 웃으며 모성애는 점점 더 커져갔다. 어떤 날은 아이가 너무 사랑스럽고 예뻐서 가슴이 터질것처럼 감사하기도 하고, 이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못할 것도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아이자라는 만큼, 모성애라는 내 마음도 자랐고, 점점 엄마가 되어가며 나도 진짜 엄마로 자라고 있었다.

                                                                    

그러나 엄마도 사람이다. 그리고 나는 많이 부족한 사람이다. 이제 사춘기에 접어들고 있는 딸아이는 아기때와는 또다른 모습으로 나를 힘들게 할 때가 있다.  매번 사랑스럽고 매일 예쁘지는 않다. 한편으로는 내가 '닮지 않았으면 하는 나의 모습'이 아이에게서 발견될 때마다 감정이 훅훅 올라오곤 한다. 애기때에는 유달리 예민하고 까탈스러웠던 아이가 이제는 자신만의 생각을 키워가고 있다. 엄마랑 부딛히 일이 생길 때, 그럴 때 나를 달래주고 나를 잠재우는 말은 단순하다. 인정하기 싫어도 저 모습이 곧 내 모습이다.

 "그려, 내가 낳은 내 딸이지"

아이에 대한 나를 내려놓기 위한 가장 단순하지만 가장 논리적인 내 설득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견물생심(見物生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