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죽으래도 없는 시간

쓰고 써도 남는 시간

by 스완

“그때는 그랬어. 먹고 죽으래도 시간이 없는 데 어떻게 그걸 보러 가니?”



뜨거운 여름날 동생네서 휴가를 보내기 위해 엄마를 모시러 갔다.

엄마의 약보따리와 일주일치 옷가방을 들고 엄마를 차에 태우고 돌아오는 길 엄마의 토크박스는 열렸다.



“그래도 그 잠깐을 낼 시간이 없었어?”

“먹고 죽으래도 없는 시간인데 어떻게 교회 가니? 그냥 동네아줌마들이 하도 네가 예쁘다고 해서 그런 줄 알았어.”


엄마는 5살 꼬마 혼자 교회에 가서 당차게 노래를 하는 것을 볼 마음의 여유조차 없었다고 한다.


“요즘은 꿈에 아빠는 안 아파 보이는데 피부도 좋고. 아빠는 천국이 좋은가 봐. “

“그런가 보네.. 그때는 그렇게 동네사람들 다 모아다 놓고 물고기 잡아서 매운탕 끓이라 하고, 콩 갈아서 순두부 만들라 하고,,, 일을 얼마나 벌이는지 정말.”


엄마의 주크박스는 하루 종일 TV를 보느라 잠가 뒀던 시간만큼 쉬지 않고 옹알옹알했다.

신경약을 오래 먹어 발음이 이제는 이상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엄마는 고속도로위 차 안에서 쉬지 않고 하하 호호 이야기하며

“그땐 그랬어” 라며 추억을 싫지도 좋지도 않게 이야기했다.



화재를 돌려보려고


“왜 엄마가 도란스 내리는 걸 몰랐지?”라고 묻자 엄마의 이야기보따리가 마술쇼를 부리듯

끝으머리를 서로 잡고 있는 이야기 색종이들이 하나씩 또 올라오기 시작했다.



“에휴… 엄마가 좀 시끄럽지? 그래도 너 운전하는데 졸리지 않고 얼마나 좋으니”


엄마는 80이 되셔야 조금은 마음의 여유가 생기신 것 같다.


먹고 죽으래도 없던 시간의 시기에는 숨 쉬는 여유조차 호사라고 느낄 만큼 엄마는 혼자서 발이 부르트도록 종종거리며 하루를 사셨다.

담배농사를 짓느라 매이 쉴 틈이 없고 사람을 좋아하는 아빠와 사는 덕에 엄마는 가정경제도 혼자서 많은 부분을 꼼꼼히 챙겨야 했다.

상황이 사람의 인격을 만든다고 하나?



그렇게 없던 시간이.. 그래서 아이들이 어떻게 크는지, 오로지 사는 것에만 신경을 써야 하던 시간이

이제는 하루 종일 귀에서 맴맴맴 우는 매미 울음처럼

끝나지 않을 여름처럼 시간이 멈춰 있는 듯 여겨진다.


하루에도 여러 번 전화가 오고 “뭐 하니?” “넌 뭐 하느라고 엄마한테 전화도 안 하니?”

엄마의 전화 레퍼토리는 매번 같지만. 먹고 죽으래도 없던 시간의 시기를 지나 엄마에겐 써도 써도 남는 시간이 되었다.


반면 나에겐 잡아도 잡아도 도망가는 시간의 굴레에 아직도 시간을 잡아가며 하루 종일 빠듯하게 살아낸다.

“뭐 하냐고? 바쁘지, 애들 챙기고 일도 해야 하고, 집안일도 하지.. 왜?”

“넌 바빠서 좋겠다. 엄마 하릴없어 심심해 죽겠는데. 딸년이 전화도 없고. 끊어!”



어쩜 이렇게 시간의 속도가 안 맞지?

분명 엄마에게도 잡으려고 애쓰던 시간의 시기가 있었는데 엄마는 하루 종일 엄마의 얼굴만 쳐다보고 엄마랑 대화하는 아기의 시간으로 가는 듯하다.


그 시간이 어떻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서로 다른 시간의 시기 속에 서로 맞춰주기보다 이젠 한쪽에서 맞춰줘야 하는 시간을 얼마나 보내야 할지 모르지만

너무 빠른 시간을 쫓아가느라 지나온 시간을 누리지 못하고 생각지도 못한 엄마의 지금의 텅텅 빈 시간을 조금씩이나마 채워줘야겠지.



하루의 시간을 나눠 쓸 수 있다면 서로에게 맞춰지는 시간이 될 수 있을까? 그냥 한번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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