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도 이별이라고?
한 사람이 씨앗을 심었다.
싹트는 것이 궁금하고 걱정된
그 사람은
흙을 파내고 계속 씨앗을 지켜보았다.
상해버린 씨앗은
열매를 맺지 않았다.
바보… 씨앗을 심었으면 썩어지는 게 당연한 거지 그걸 지켜보려고 흙을 파내면 어떻게..
책을 읽는 동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과 포도를 먹다 뱉은 씨앗을 작은 화분 안에 심었다.
아이들은 그 씨앗이 궁금해 살살살 흙을 옆으로 밀고 매일 포도씨앗이 어떻게 되는지 지켜보았다.
“그거 안 나올걸.”
“아니야. 흙에 심었으니 씨앗이 나올 거야.”
“흙에 심었으면 기다려야 하는 거야 씨앗은 남이 보는 걸 부끄러워해서 덮어줘야 하거든”
아이들에게 책 이야기가 생각나 부끄러워하는 씨앗이 부끄럽지 않게 맘껏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다시 덮어주자고 했다.
어쩌면 어른이라는 이유가 다 아는 것처럼 행동한 게 아닐까?
아마도 나의 어린 시절에도 호기심으로 토마토, 참외, 사과, 수박씨등도 땅에 묻지 않았을까?
어린 시절의 나는 주변이 모두 흙이라 파 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까?
나도 어린 시절에 우리 아이들처럼 호기심이 많았을 텐데 그때는 그게 다 인 것 같았는데 어느새 나에게 호기심은 지식의 진실이라는 이름과 이별을 한 후였다.
“왜요?” 왜 꼭 흙을 덮어줘야 하는지 왜 꼭 모른 체 해야 하는지 아이들은 궁금해했지만
그래야 한다는 말 때문에 아이들은 호기심을 씨앗과 함께 묻어 두었다.
볼 수는 없어도 매일 화분 앞에 앉아 포도씨앗이 심긴 구석을 바라보며 언제 나올까? 궁금해했다.
그렇게 며칠을 지나 옅은 잎 하나가 쏘옥 올라왔다.
“나왔다.”
아이들은 너무 신기해서 파티가 시작된 것처럼 들썩이며 좋아했다.
호기심과 잠깐 이별을 한 후 아이들은 생애의 커다란 쾌감을 맛보았다.
어느덧 호기심에 눈을 반짝이던 아이도 그것을 호기심으로 바라보는 나의 시선도 바뀌었다.
어느새 먹구름이 오르락내리락하는 원인 모를 시기가 왔다 갔다 했다.
야속하다고 할 수도, 서글프다고 할 수도 있을 서로 다른 시선을 회피와 마주치기의 어긋남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