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안녕

나와의 이별을 했다.

by 스완


엄마는 자녀가 가장 먼저 부르는 단어이자, 가족 내에서 사랑과 헌신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존재입니다.

네이버에 엄마라는 뜻을 찾아봤더니 이렇게 나왔다.


사랑과 헌신의 상징.


그게 뭔데…


말도 통하지 않는 아이와 하루 종일 감독관처럼 떠드는 아이 틈에 덩그러니 있는 내가 갑자기 공허해졌다.


‘나는 여기서 뭐 하고 있지?’


입덧으로 그렇게나 못 먹고 힘들고 골반이 벌어지지 않아 12일이나 예정일 보다 늦게 나오느라 아이도 나도

목욕탕에서 불고 불은 사람처럼 퉁퉁 부어 있던 나.

막달이 되어도 쉴 틈이 없이 전날까지 첫째의 놀이터에서 그네를 태워주던 나.

허옇게 뜬 얼굴로 둘째를 낳고 몸조리를 할 상황이 못돼 혼자서 두 아이를 안고 업고

하루 종일 먹지 못하고 아이들과 지지고 볶던 틈에 내 안에 내가 없어진 느낌이 들었다.


늘어진 티와 하루 종일 너무 다른 성격의 아이를 보느라 퉁퉁 부은 다리.

잠자는 것에 너무 힘겨워하는 첫째를 얼르고 달래다 겨우 같이 잠을 곁에서 잤다.

잠깐 아이가 자는 틈에 어질러진 집을 치우려고 하면 첫째는 금방 깨서 하루 종일 징징거렸다.


정리? 나? 그런 게 어딨어.

그냥 자자







매일 핸드백을 들고 다니고 타이트한 치마와 8센티미터 힐을 신고 바쁘게 여기저기 다니던 나는 없다.

아이를 낳고 일을 드나든 시절 높은 힐을 신고 아이들을 데리고 오고 가던 그 시절도

핸드백이 아닌 커다란 이민가방을 하나씩 더 가지고 다닐 정도로 가방은 점점 커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힐의 높이는 낮아졌고 결국은 플랫슈즈만 신고 여기저기 뛰어다녔다.

아이 둘을 데리고 일을 하는 내 다리가 신호를 보내왔기 때문이다.

무릎에 물이 자주 생기고 발바닥에 족저근막염이 왔다.


너무 얇은 플랫슈즈도 안되고 너무 높은 힐도 안 됐다.


내가 좋아하던 옷스타일, 가방스타일, 신발스타일. 헤어스타일, 등등… 내가 좋아하던 것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결국은 내가 없어지는 시간이 왔다.


“내가 누구더라.. ”


00 엄마, 몇 층엄마, 00 하는 엄마. 00 아내, 00 며느리가 되어 있었다.


서류에 이름을 적는데 내 석자가 낯설게 느껴졌다.


어디서든 내 이름을 부르는 일은 없었다.


그렇게 나와 이별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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