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육아에서 엄마마음과 아이마음을 배웠다.

개육아도 육아야

by 스완

구리를 키우며 육아란 이런 건가?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처음 나와의 이별을 하고 나의 또 다른 아이와

생을 시작했을 때 모든 것이 서툴렀다.

하고자 하는 것도

먹고자 하는 것도

자는 것도 모두 달랐다.

1+1=2인데 아이는 2가 아닌 무한대였다.




어디서부터 뭘 해야 할지 몰라 매일 헉헉 거렸다.

왜 말을 안 듣는 거니?


아이와 나의 속도가 맞지 않아 삐걱댔다.

아니, 나와 아이를 기르는 나의 속도가 맞지 않아

삐걱거렸다.


이해한다고 하면서도 나의 기준에 맞추고

아이가 좋아할 거라 생각하던 것들도

나의 관점에서 비롯된 거였다.


그러니 더 삐걱거릴 수밖에.





말하지 않아도 눈으로 구리를 따라가면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기분을 안다.

기분과 감정을 분위기로 알아채는 구리를 통해

아이들의 사춘기를 대하는 법도 배웠다.


이전에 구리를 알았다면 ‘서두르라고’ 혼자서

툴툴대지 않았을까?


버스를 놓칠까 봐 아이의 기분에 안 맞는 옷을 고르는

아이를 기다리며 한숨 쉬던 나에게

그깟 유치원 버스가 뭐라고.

그냥 오늘은 아이가 마음을 표현하고 싶은 날인가 봐

라고 당장 뛰어가 말해주고 싶다.





처음이라는 페이지를 써 내려갈 땐

모두 백지여서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써야 할지 모르니 좌충우돌 일수밖에 없지만

조금은 여유를 가져봐라고 알았으면,

남들과 달라도 돼.

서둘러 일을 처리하느라 아이와 눈 맞추지 못하고

고개도 돌리지 않으면 말하던 대답을


모든 것 내려두고 눈을 맞춰봐라고

말해줄 수 있을까?


어린 엄마의 첫 페이지를 함께 써 내려간

아이들에게 툴툴대던 나에게

등을 토닥여 주고 싶다.


구리처럼 그냥 곁으로 다가가 조용히 아이를

안아주고 싶다.

말이 아닌 온기로 다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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