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수 없이 그럽니다.
“그래서 왜 날 낳았는데. 누가 낳아달라고 했어?”
중1때 1호가 나에게 대뜸 소리를 질렀다.
갑자기 훅 들어온 말에 난 아무말도 못하고 얼음이 되어 버리고
머리속에서는 분화구에 화산이 폭발여지도 없이 갑자기 쏟아져버린 폭탄에 준비없이 터지고 만것 처럼
뚜껑이 들썩들썩하고 연기가 쉴세없이 마구 뛰어올라오려했다.
어떤 의도도 없이 문을 열고 집밖을 나갔다.
한참을 걷고 또 걸으며 정처없이 걷다 다리가 너무 아파서 벤치에 주저앉아 멍하니 있었다.
아이의 말을 곱씹을 여지도 없이 눈에서 물이 흘러내렸다.
흑흑흑.. 엉엉엉..
소리없이 울고 또 울으며 깜깜한 밤에 혼자서 어깨를 들썩이며 벤치에 앉아 울고 울었다.
또다시 시간이 흘러 너무 늦었다는 생각이 들어 집으로 발길을 옮기면서 그런생각이 들었다.
‘왜 난 갈때가 없지?’
아이를 임신하고 입덧이 너무 심해 혼자 헉헉대다 작은 1호와 뱃속의 아이와 무작정 입덧이라도 가라앉히고 싶다는 마음에
엄마집으로 운전해서 갔다.
엄마집으로 무작정 왔지만 엄마도 오빠가족과 함께 살고 나의 아이들과 오빠의 아이들의 나이가 비슷해서 내가 편히 쉴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궂이 여기까지 와서는’
후회가득한 돌파구에서 이틀을 머물다 다시 독박육아의 터전으로 돌아왔다.
‘왜 난 아무도 돌봐주지 않냐구. 나도 나를 돌봐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돌아오는 길에 눈물이나서 운전을 하면서 연신 눈물을 닦았다.
어린시절 너무 가난한 시골소녀의 장녀라 어쩔수없이 부모의 도움이 끈어져 살아내려 애를 썼다.
내껀 왜 없냐구 투정도 부려봤다. 난 후남이니까 없는거지뭐.. 그렇게 늘 헛헛한 마음이 엄마에게 의지않고 혼자 살아야 한다는 마음이 컸나보다.
연락을 왜 자주 안하냐는 엄마의 말에 “엄마도 바쁘고 힘든데 난 잘 지내고 있으니까 걱정말아요”라며 엄마에겐 의젓한 큰딸역할을 했다.
나의 아이가 청년되어 엄마품을 떠나려고 할때마다 “그만 둬요. 내가 알아서 한다구요”
‘니가 어떻게 알아서 해’ 라는 말이 목까지 올라왔지만 ‘그래 해봐라’라는 벌칙일수도 있는 마음으로 아이말을 못들은척, 안본척, 폭풍같은 사춘기 계절을
지나가고 있다.
사춘기는 귀먹어리 3년, 장님 3년이라는데.. 예전 시집살이와 비슷하다고 ..
지금 난 내가 낳아 내 집에 잘 먹이고 잘 키워 내 품을 떠나보낼 왕자시집살이를 하는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낳았지만 내 힘으로 낳지 않았고, 나와 닮았지만 나와 닮지 않은 아이로 인해 난 어쩔수없이 마음을 비우고 어쩔수없이 홀로서기를 준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결혼이란 철학자의 길로 가는 삶인가?
아니면 키우는 건 인내와온유의 삶을 지녀야 하기에 철학자의 삶이 되어 가는걸까?
혼자 기숙사생활을 하면서 연락도 없던 아이와 같이 마주앉아 저녁을 먹으며 대화를 했다.
“혼자있으면 좋아? 엄마가 걱정할까? 생각이 안들어?“
“잘지내고 있는데 왜 연락해요.”
‘엄마도 이런 맘이였을까?’
체력이 좋지않아 조금 힘들면 하루종일 누워 일어나지도 못하던 날이 있을땐 더더욱 연락을 안하던 내가 엄마는 연락안하는 못된 딸이라고 전화가 올때마다 싫었는데.
아이는 나와 달리 혼자만의 시간이 즐기느라 더욱 홀로서기 연습을 즐기는것 같기도 해 나와 다른 내 아이의 끊어내는 끈이 아쉬움이 들었다.
내힘으론 할 수 없지만 흐르는 대로 끈어지기도 끈어낼때도 필요한것 같다.
그럴때 강제로가 아닌 유연함이 필요한듯 하다.
사소한것에 즐거움과 행복을 느끼는 나에겐 무심한 한마디가 상처가 되기도 나를 단단히 하는 무기가 되기도 한다.
상처를 주는 나로 인해 덮어주는 담요의 무기가 필요하다 느끼기도 하고
날카롭게 꽂힌 말에 두부처럼 무엇이든 받아주며 유연해지는 보드라움의 매트무기를 장착하게 되기도 한다.
어쩔수 없이 내삶에 파고든 나의 가족들, 나의 삶이 불평의 어쩔수 없게가 아니라 유연하고 사랑스런 어쩔수없게로 만들어 가고 싶어
오늘도 마음산책을 하며 사색하고 나를 잘 들여다보며 지금의 상황에 우울하지 않고 푸르름이 가득한 산책길이 되어보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