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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베이킹랩 이성규 Aug 11. 2020

여기 카페 오픈하나요?

여기 카페 생겨요?


지나가던 분이 묻는다. 나는 빵집 공사현장을 지켜보는 참이었다.


아뇨, 여긴 카페가 아니고 빵집이에요.

아 그래요? 생긴 게 꼭 카페 같아서요.


12월 초 빵집 인테리어 공사가 시작되었다. 한 달 남짓이면 끝날 줄 알았다. 허나 시멘트 바닥과 마감재가 추위에 잘 마르지 않아 공사는 지체되었고, 1월이 되어서야 내부 공사가 마무리되었다. 파사드 공사가 이어졌다. 파사드 공사가 시작되면서 빵집 앞을 지나치시는 분들께 질문을 종종 받았다. 여기 카페 생기냐고.


빵집 디자인에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이 빵집의 얼굴인 파사드였다. 아이디어로 가득한 핀터레스트를 며칠간 들여다본 결과 아주 맘에 드는 파사드 사진을 발견하였다. 철판으로 마감한 벽에 나무로 짠 문틀이 잘 어울리는 피자집 파사드였다. 특히 프러시안 블루와 나무 색의 조화가 눈길을 잡았다. 사진을 보는 순간 바로 이거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테리어 설계하시는 분께 사진을 보여드리며 내가 생각하는 것들을 이야기하고 안을 확정하였다.


파사드 공사는 지지대를 벽면에 붙이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 지지대 위에 아연도금 철판이 붙여졌다. 곳곳에 흉하게 드러나 있는 용접 자국을 보며 저게 내가 상상한 파사드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심한 의구심이 들었다. 실망감에 현장을 떠났다.


다음날 다시 찾은 빵집엔 프러시안 블루로 멋지게 칠해진 파사드가 나를 반겼다. 근처 고물상에서 미리 가져다 놓은 드럼통도 예쁘게 칠해져 있었다. 드럼통의 색도 미리 지정해 놓았었다. 보르도 레드, 바로 프랑스 보르도 와인 색이다. 보르도 레드는 내가 프랑스에서 구해 와서 기르고 있던 프랑스 토종밀 Rouge de Bordeaux의 영어식 이름이기도 하다.  


며칠 후 아쥬드블레라는 빵집 이름도 파사드 위쪽에 붙였다. 보르도 레드로 예쁘게 칠해진 드럼통 위에는 두꺼운 철판을 잘라 만든 빵집 로고 돌출간판도 걸렸다. 프러시안 블루의 아연도금 철판, 보르도 레드의 드럼통, 그리고 그 위에 로고가 새겨진 돌출간판. 야심 차게 준비한 빵집의 포토존이었다. 하지만 당황스럽게도 여기서 찍힌 사진은 단 두 장뿐이다. 빵집 정식 오픈전 나와 동업자가 각각 찍은 두 장의 사진이 전부이다. 빵집을 열고 몇 달이 지나 드럼통이 치워졌다. 구매가의 10%인 헐값으로 원래 고물상으로 돌아갔다. 다시 몇 달 후 돌출간판도 떼어졌다. 드럼통이 없어진 공간으로 지나다니는 행인들이 돌출간판에 부딪쳐 부상을 입을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포토존은 사라졌다.


2005년 한국의 경영계에 불어닥친 열풍이 있었다. 바로 블루오션 전략이다. 경쟁이 치열한 핏빛 시장이 아닌 경쟁이 없는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자는 전략이다. 이 전략의 핵심은 차별화와 저비용을 동시에 추구하는 것이다. 서로 상반될 듯한 두 개의 전략을 동시에 실현할 수 있도록 고안된 것이 바로 ERRC였다. 즉 제거(Eliminate), 감소(Reduce), 증가(Raise), 창조(Create)이다. 고객가치 창출에 도움이 되지 않는 요소는 과감히 제거, 감소시켜 비용을 낮추는 동시에 가치 창출에 도움이 되는 요소는 늘리거나 창조하여 차별화를 실현하자는 것이다. 당시 대기업 전략기획팀에 있던 나는 2년을 블루오션 전략의 바다에서 헤매고 다녔고 당시 짜낸 사업 전략도 적지 않았다.


근데 삶이 참 희한한 게 이런 경험이 정작 내 삶에는 적용이 잘 되지 않는다. 회사 일은 나의 사업이 아니기 때문에 객관화가 가능하나 자신의 일은 객관화가 쉽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돌이켜 보면, 즉 객관화시켜보면 포토존이라고 만들었던 화려한 아연도금 철판도, 보르도 레드로 이쁘게 칠한 드럼통도, 두꺼운 철판을 오려 만든 돌출간판도 동네빵집에선 별 필요 없는 것들이었다. 하나같이 E에 해당하는 요소들이었다.


하지만 나는 당시 그런 선택을 한 나를 이해할 수 있다.


자영업은 처음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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