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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베이킹랩 이성규 Aug 18. 2020

빵집의 심장, 오븐을 들이다

빵을 만드는데 가장 중요한 설비는 무얼까? 나는 오븐이라고 생각한다.


오븐의 성능은 빵의 부피, 크러스트의 색과 식감, 내상의 특성 등 빵의 품질을 결정하는 대부분의 요소들에 큰 영향을 준다. 오븐의 성능은 열적 특성과 스팀 생성기의 특성에 좌우된다. 내부 온도의 균일성, 정확한 온도 조절, 열 저장능력이 뛰어난 돌바닥,  높은 단열성, 미세한 스팀 생성 등의 특성을 가진 오븐이 좋은 오븐이다.  성능이 좋은 오븐은 당연히 비싸다. 조그만 동네 빵집으로선 부담되는 가격이었지만 좋은 빵을 위해 좋은 오븐에 투자하기로 했다.


빵집에 들여놓을 오븐은 일찌감치 정해 놓았었다. 위쪽에 빨간색 로고가 선명하게 박혀있는 스페인산 살바 데크 오븐이다. 12월에 열린 베이커리 페어에 출품된 수많은 오븐 중에 유독 눈길을 끈 오븐이다. 오븐 선택에 가장 영향을 준건 그 오븐으로 오븐을 굽는 베이커였다. 베이커리 페어에 참가한 오븐 업체들은 회사의 베이커들이 전시장에 와서 반죽해서 빵을 굽는다. 살바 오븐 앞에선 맘씨 좋게 생긴 Salva Group의 헤드 베이커 Javier가 두툼한 손으로 빵을 굽고 있었다.


서너 가지 빵을 굽고 있는 그의 옆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오븐 뿐만 아니라 빵 만들기에 대해 이런저런 질문을 하고, 오븐에서 멋지게 구워져 나온 빵도 같이 맛보면서.


좁은 빵집에 4매 3단의 커다란 오븐을 들여놓으니 그 존재감이 남달랐다. 빵집을 찾은 손님들의 눈길을 끌기에 손색이 없었다. 베이커리 페어에서 이 오븐으로 구운 멋진 빵들을 이미 보았기 때문에 나도 당연히 멋진 빵을 구울 수 있으리라는데 한치의 의심도 없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베이커리 페어에서 Javier가 구워냈던 그런 빵은 나의 오븐에서 쉽게 나오질 않았다.  

살바 데크 오븐은 다른 회사의 오븐과는 다른 독특한 시스템을 사용한다. 오븐의 윗불과 아랫 불을 조절하는 시스템이 바로 그것인데 윗불 240도, 아랫 불 230도 등과 같은 설정이 아닌 온도 240도 윗불 **%, 입구 **%, 아랫 불 **% 식으로 설정하게 되어 있다. 문제는 모든 빵의 레시피가 윗불 240도, 아랫 불 230도 식으로 되어 있기에 살바 오븐에서는 어떤 식으로 설정해야 할지 막막했다. 누구도 이에 대한 올바른 설정 방법을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었다. 심지어 이 오븐을 파는 국내 총판의 엔지니어도 온도 설정 방법에 대한 데이터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결국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스스로 설정값을 알아내는 수밖에 없다.


바게트, 뤼스틱, 사워도우 등 유럽빵은 바삭한 크러스트가 생명인데 좀처럼 바삭한 크러스트의 빵을 구워낼 수가 없었다. 크러스트가 바삭해지면 색이 너무 진하게 나고 색이 적절하게 나면 크러스트가 금세 눅눅해지는 현상이 반복되었다. 적절한 오븐 설정을 찾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Javier가 다시 한국에 오기만을 기다렸다. 베이커리 페어는 12월에 열린다. 빵집은 1월에 오픈했으니 11개월 동안 오븐 문제를 껴안고 빵집을 운영했던 것이다.


베이커리 페어 기간 이틀 동안 그를 찾았다. 바게트, 치아바타, 깡빠뉴, 브리오슈를 시연하는 그의 옆에서 오븐 설정에 대해 하나하나 물어보았다. 수많은 질문에 귀찮아하지 않고 성심껏 답변해주었다. 나는 그의 답변 하나하나를 노트에 소중하게 적었다. 그가 구운 투박하나 향기롭고 먹음직스러운 치아바타와 깡빠뉴를 한 덩어리씩 얻어왔다. 그의 빵은 유럽에서 먹던 바로 그 빵 맛이다.


다음 영업일, 그의 조언에 따라 오븐 온도 설정을 바꾸었다. 할렐루야! 오븐에서 나오는 빵은 내가 원하던 바로 그런 빵들이었다.



*4매 3단: 오븐 크기 기준. 600mm*400mm 빵 팬이 4장 들어가는 챔버가 3단이 있다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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