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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베이킹랩 이성규 Aug 20. 2020

바게트는 베이커의 죽비

바게트는 베이커의 죽비다.


빵집 개업 준비에 많은 도움을 준 소울 브레드 권순석 베이커의 말이다. 바게트는 매일 똑같은 일의 반복에 나태해지거나 관성에 빠진 베이커의 어깨를 무섭게 내리쳐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죽비 같은 존재라는 뜻 이리라.


바게트는 아주 기본적인 빵이다. 밀가루, 물, 소금, 약간의 이스트만 있으면 구울 수 있다. 하지만 바게트를 제대로 굽는 것은 생각보다 간단하지 않다. 제대로 된 모양 만들기도 어렵거니와 기본 재료만으로 제대로 맛을 내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밥을 짓기가 쉽지 않은 것과 같은 이치이다.


매일같이 빵을 굽는 베이커들에게도 바게트는 언제나 큰 도전이다. 바게트를 만드는 모든 단계에서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어떤 단계에서라도 방심하거나 실수를 할라치면 그 날 바게트는 실패작이 된다. 바게트가 베이커의 죽비인 이유이다.


오븐을 들여놓고 빵집을 정식으로 열기까지 줄곧 테스트 베이킹을 했다. 빵집에서 판매할 빵에 대한 레시피를 미세 조정하는 작업이었다. 다른 빵은 금세 조건을 잡았지만 바게트가 말썽이었다. 한동안 단면이 동그란 통통하고 겉은 까맣게 탄 바게트가 구워져 나왔다. 어느 날은 모양이 심하게 뒤틀린 바게트가 나왔다.


환장할 노릇이었다. 예정된 개업일은 하루하루 다가오고 있었다. 여러 가지 원인을 상정하고 매일같이 시험을 했다. 물의 양을 적게도 많게도 해서 구워봤다. 하지만 여전히 해결책은 되지 못했다. 오븐에 적응하지 못한 탓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반죽을 해서 익숙한 오븐이 있는 곳에 가서 바게트를 구워 봤다. 옳거니! 익숙한 오븐에 구우니 바게트다운 바게트를 구울 수 있었다. 원인은 오븐의 온도 설정에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오븐 온도를 이리저리 조정하며 바게트를 구웠다. 한 번 언급한 것처럼 살바 오븐의 온도 설정 방식은 다른 오븐과는 큰 차이가 있다. 며칠간의 테스트 베이킹을 통해 원하는 것과 비슷한 수준까지는 이르렀지만 여전히 썩 만족스럽지 못했다.


성에 차지 않는 바게트로 거의 1년을  맘고생했다. 하지만 최적의 설정치는 고생한 것에 비해 아주  쉽게 얻어졌다. 12월에 베이커리 페어를 찾은 오븐 제조사 헤드 베이커의 한마디 조언이 해결책이 되었다. Javier가 가르쳐준 설정치로 맞추고 나니 내가 원하던 바로 그 바게트를 구울 수 있었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식사빵, 정신이 번쩍 들 만큼 찐한 에스프레소 한 잔과 함께 하면 간단하면서도 훌륭한 아침 식사가 되는 바게트. 하나에 1유로 정도밖에 하지 않는 바게트를 위해 19세기 파리의 베이커들은 밤을 새웠고, 21세기 그곳의 베이커들은 이른 새벽에 빵집에 나온다. 나도 그들처럼 새벽부터 바게트를 구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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