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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달래 Jun 04. 2020

회피형 글쓰기



 힘들 때면 글을 찾게 되는 비겁함은 버리지 못할 천성이다. 요즘은 일 하는 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글만 보고 글만 생각하면서 보내는 듯 하다. 사실 일을 할 때에도 정신의 절반은 다른 글을 보고있다. 글에 대한 집착증이 심해진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쯤은 이미 충분히 알고 있다. 매일을 나를 관찰하고 연구하며 살았는데 모를 수가 없었다. 몸이, 마음이 힘들어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일 년에 한 번씩 꼭 이런 시기가 찾아온다. 올해는 조금 일찍 온 탓인지 영 적응이 되질 않는다. 한 해를 빼먹지 않고 이리 규칙적으로 찾아오니 이제는 절로 기다려지기까지 한다. 이번에는 언제쯤 올까 하고.


 우울함이 나 자신에게서만 비롯하는 것은 아니다. 주변의 상황, 타인의 슬픔, 사회 문제, 나. 모든 것 복합적으로 섞여 다가온다. 나에게 매년 글에 집착하는 시기가 찾아온다는 건 매년 내 주변에는 상처 입고 슬퍼하는 사람이 있다는 뜻이요, 사회는 여전히 각박하다는 뜻이요, 나는 여전히 자라지 못하고 아이와 어른의 중간에 서서 떠돌고 있다는 뜻이었다


  요즘 언니가 자주 하는 말이 있는데 '세상에 모든 사람, 동물들이 다 행복했으면 좋겠다'가 그것이다. 유기묘에 부쩍 관심이 많아진 언니는 항상 가방에 사료와 물을 챙겨 다니며 길고양이를 챙긴다. 언니가 처음 저 말을 했을 때 내 대답이 생각난다. '그 말 내가 몇 년 전에 자주 했던 말인데.' 그 뒤로 경부고속도로에서 졸음운전으로 교통사고를 낸 버스기사에 대한 대화가 이루어졌다. 언니와 내가 내린 대화의 결론은 '살인자는 사회' 였다.


 언니와의 대화를 통해 깨달은 것은 내가 더이상 모두의 행복을 염원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몇 년 전만 해도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모두 행복했으면 좋겠다' 였는데 말이다. 하루하루가 지나면서 모두의 행복이라는 건 손에 잡히지 않는 신기루라는 걸 깨달았다. 나 하나의 행복만 생각하기에도 급급한 세상이라는 걸 알았다. 결국 매년 날 아프게 하고 병들게 하는 것은 나의 이런 검게 물든 생각들이라는 걸 안다. 그런데 원인은 찾았는데 해결방법이 없다. 아프지 않고 마냥 행복할 방법이 없다. 언젠가 우울함의 시기가 길고 길어져 1년을 뒤덮고 결국엔 내 남은 평생을 지배하게 되진 않을까. 그나마 내가 완전히 검게 변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글 뿐이라는 걸 알아서 비겁하지만 이렇게 글을, 글만 찾는다.


2017. 7.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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