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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달래 Jun 16. 2020

내 영혼은 구겨진 깡통이야.

너 누구니, 홍영철


 어디 있니? 시커멓고 꾀죄죄하고 앞니가 비틀어진 채로 활짝 웃던- 이제는 널 찾을 수가 없구나. 이제야 네가 좋아하던 쫀득이, 달고나, 오징어 모두 사 줄 수 있는데 말이야. 남들보다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빨리 늙어버린 너에겐 고독이 유일한 친구였고 불면이 최고의 자장가였지. 정리되지 않는 숱 많고 곱실거리는 단발머리에 단추 하나가 뜯어진 교복을 입고 두꺼운 안경이 책에 닿을 만치 책상에 고개를 박고 있던- 이제는 널 찾을 수 없구나. 이제야 너에게 그렇게 열심히 살 필요 없다고 말해 줄 수 있는데 말이야. 그렇게 치열하게 산다고 세상이 변하는 건 아니더라고 말해 줄 수 있는데 나는 이제 널 찾을 수 없어. 남들보다 낮은 곳에서 시작한 삶이었고 살기 위해서 순응하는 법을 배웠지. 하루 종일 앉아만 있어 이제 체하는 건 일상이라며 웃어넘기던 너. 얹혀 내려가지 않았던 지독했던 체기, 그놈의 정체가 좌절이고 절망이고 불안이었다는 걸 이제야 안다.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네가 그리워져. 누구라도 좋으니 널 만난다면 너에게 잠깐의 휴식을 줬으면 좋겠어. 말해줬으면 좋겠어. 절박은 절박을 불러오고 절박에서 이어진 절박은 결국 널 잡아버릴지도 모른다고 그러니 조금이라도 쉬어가라고. 먹고 싶어. 배우고 싶어. 하고 싶어. 가지고 싶어. 네가 가장 많이 해야 하는 말은 이런 것들이었어. 내 영혼은 구겨진 깡통이야. 두드리면 깡-깡- 울기만 해. 넌 그래도 구겨지지는 않았었잖아. 나중에 내가 널 기억하지 못하는 날이 오면 어쩌지? 내가 찾지 않으면 누가 널 찾아주지? 너의 처절함을 누가 알아주지? 너의 외로움은, 고통은, 눈물은. 내 말이 들린다면 대답해. 네가 한 번이라도 대답해 준다면 나 평생 널 기억할게. 나 여기 있다고, 한 번만 말해준다면 나 그걸로 한평생을 살게. 깡-깡-


그리고 2020. 6. 16

+ 이 글을 언제 썼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대략 2016년 쯔음이었을까. 의사에게 나는 자기 연민이 너무 싫다고 말했다. 자기 연민만큼 자기 자신을 갉아먹는 일은 없다고. 나는 그런 거 하고 싶지 않다고. 그런데... 과거의 글들을 하나씩 정리하는 요즘, 글을 썼던 당시의 내가 너무 불쌍하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그때와 지금이 크게 달라진 것 같지 않아서... 그게 참 마음이 아파서. 아무도 불쌍하게 봐주지 않는데, 나 하나쯤은 나를 가엾게 여겨도 괜찮지 않을까. 그 정도는 괜찮은 거 아닐까 합리화를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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