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 18 삿포로

난생 처음 혼자 떠난 해외여행

by 전달래

공항에서 다른 사람이 내 캐리어를 가지고 떠나버린 대참사와 겨우 캐리어 돌려받고 공항버스에 탔는데 출발 직전 뛰어내려야 했던 비극을 겪고 지쳐있던 찰나 눈 앞에 연예인들이 우르르 지나가는 걸 멍하니 바라본 3일 같은 인천공항에서의 3시간을 보내고 차분한 마음으로 정리하는 처음으로 혼자 떠났던 해외 여행 소감문


이번 여행에서 나 스스로에게 가장 칭찬해주고 싶은 점은 여행 첫 날, 도착한지 반나절도 안돼서 삼각대를 부러뜨린 일이다. 그날 밤 삼각대를 고쳐보겠다고 편의점에서 테이프와 가위를 사와서 끙끙댔지만 삼각대는 이미 소생 불가 상태였다. 호로요이 한 캔을 거하게(?) 들이붓고 사진에 대한 미련을 버리려 했으나 다음 날 간 비에이가 너무 아름다워서 그 때부터 주변 사람들에게 사진을 부탁하기 시작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완전한 타인이 찍어준 그 순간들과 그렇게 남겨진 사진은 여행에서의 가장 큰 추억이 되었다. 여행이 끝나는 시점에 찍었던 사진들을 하나하나 훑어보는데 이 사진을 찍어준 사람은 누구였고, 어느 나라 사람이었고, 무슨 말을 하며 사진을 찍어줬는지 하나하나 다 생각이 났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찍어줬는데 신기하게도 생생하게 다 기억이 나는 것이었다.


닝구르테라스에서 눈사람과 함께 사진을 찍어줬던 아저씨는 한국분이셨는데 사진을 한 장 찍고 휴대폰을 나에게 돌려주려다가 옆에 서 계시던 아주머니께 혼이 나셨다. 옆으로 돌려서 한 장 더 찍어줘야지 뭐하느냐고. 정방형으로 설정 되어있어 옆으로 돌려도 똑같지만 굳이 말하지는 않았다. 머쓱해하면서 휴대폰을 옆으로 돌리는 아저씨와 즐거워하는 아주머니를 보는데 그게 참 재밌었다. 그래서인지 아저씨가 두번째 찍어준 그 사진은 이번 여행에서 찍은 사진 중 가장 환하고 자연스럽게 웃는 모습이 담겨있다. 이것 말고도 나를 스쳐간 많은 사람들은 제각각의 환한 웃음과 개성 넘치는 사진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한국인들은 사진을 정말 잘 찍고 사진에 대한 열정이 남다르다. 외국인들은 3장을 찍어줄 때 한국인은 7장씩, 어떨 때는 본인이 마음에 들 때까지 끈질기게 사진을 찍어준다. 한국에서 가족 단위로 여행 온 아저씨, 아줌마에게 사진을 부탁하면 어디선가 딸들이 달려와 아빠, 엄마 손에서 내 휴대폰을 빼앗아 신중하게 구도와 각도를 재어 정성껏 사진을 찍어준다. 중국인, 일본인들은 사진을 잘 찍는다고는 할 수 없지만 나름의 최선을 다해 작품을 만들듯 찍어준다. 그래서 그들이 찍어준 웰시코기처럼 나온 사진이라던가, 내가 면봉처럼 보이는 사진 같은 것들을 지울 수가 없다.


수십번의 사진 요청 중에 거절한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모두가 너무나 환하게 웃으며 추운 날씨에 장갑까지 벗어가며 사진을 찍어줬다. 그런 그들에게 혹시 민폐가 되는 건 아닐까 생각하다가 문득 언젠가 내가 누군가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나는 여행에서 모르는 사람들 사진 찍어주는게 좋다고, 내가 찍어주는 사진을 보고 좋아하고 즐겁게 포즈 취하는 걸 보는게 재밌다고 했던 그 말이. 아마 내 사진을 찍어준 모든 이들의 마음 역시 똑같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만약 내가 삼각대를 부러뜨리지 않았다면, 만약 내가 혼자 여행을 오지 않았다면 이렇게 많은 이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을까. 30초 후면 스쳐지나가 다시는 볼 일 없는 사람들과 웃으며 '즐거운 여행 하세요!'를 주고 받던 기억은 아주 소중한 순간으로 오래 기억될 것 같다.


더 많은 것들을 적고 이야기하고 싶지만 인스타그램에 얼마나 긴 글을 쓸 수 있을지 모르겠어서 남은 이야기는 따로 일기장에 쓰고자 한다. 혼자였지만 외롭지 않았던, 손은 차가웠지만 마음은 훈기로 가득했던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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