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아니고 전시회 관람 후기
비틀즈에 대한 나의 첫 기억은 초등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비틀즈가 과자인지 가수인지도 몰랐던 그 때의 나는 비틀즈의 yesterday의 가사를 모두 외워야하는 시련을 겪었다. 학예회 무대에서 불러야 한다며 선생님께서 복사해주신 악보에는 영어 가사와 영어 발음을 한글로 쓴 글자가 한가득이었다. 그 글자들은 모두 선생님께서 직접 쓰셨던 것 같다. 선생님은 우리에게 뜻을 알려줄 필요를 느끼지 못하신 것 같았고 우리 반 그 누구도 그 뜻을 물어보지 않았다. 그저 예스터데이- 올마이트러블심소팔어웨이를 중얼대며 정직하게 한글을 외웠을 뿐이다.
2절을 부를 차례가 되면 등장하는 'suddenly' 단어를 썩은 이라고 발음하며 킥킥대던 철 없던 시절을 지나 비틀즈가 다시 한 번 나에게 크게 각인이 된 건 고등학생 때다. 제라드와 토레스에 미쳐서 축구팀 리버풀도 모자라 영국의 리버풀까지 사랑하게 되었던 그 때의 나는 비틀즈가 리버풀 출신이라는 것에 크게 감명 받았던 것 같다. 한때는 성인이 되면 꼭 리버풀에 여행을 가서 안필드에서 축구 경기를 보고 캐번 클럽에서 비틀즈 노래를 듣겠다며 열정을 불 태우기도 했으니까.
그 시간을 넘어 오늘 비틀즈는 다시 한 번 나에게 크게 한 발짝 다가왔다. 좀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존 레논이지만 그의 인생을 이야기하려면 비틀즈를 함께 느낄 수 밖에 없으니까.
-존레논 전시회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비틀즈가 아닌 오노요코이다. 오노요코가 비틀즈 해체의 이유가 되었건 어쨌건 오노요코를 향한 존 레논의 사랑이 얼마나 깊었고 절절했는지 알게된 지금은 그녀에 대한 억측은 하고 싶지 않아졌다. 존 레논은 자신의 생을 한 줄로 표현했다. 태어났노라, 살았노라, 요코를 만났노라.
-지금까지 나에게 존 레논은 비틀즈의 멤버였다. 그리고 앞으로의 나에게 존 레논은 누구보다 열정적이었던 평화주의자로 기억될 것이다. 부끄러워 누구에게도 못했던 이야기지만 나는 이매진만 들으면 운다. 노래만으로 그가 얼마나 평화를 원했는지가 느껴져서, 그런 세상이 영영 오지 않을 거라는 슬픔에, 실재할 수 없는 평화를 음악으로라도 느낄 수 있다는게 감동스러워서 그 멜로디만 흘러나와도 눈물이 고인다. 전시회의 마지막에는 존레논의 이매진을 감상할 수 있다. 그 자리에 앉아 듣고 또 들었다. 이매진의 가사와 함께 화면에 나오는 바닷물에 휩쓸려 온 난민 아이의 시체, 광화문 촛불 시위, 유럽에 가고 싶지 않다며 전쟁을 멈춰달라는 시리아 아이의 인터뷰. 그가 원했던 세상과 점점 멀어지는 듯한 세상은 나에게 많은 생각거리를 남겼다. 그가 느꼈던 '살아남는 자의 슬픔'을 그가 죽은 후 살아남은 내가 똑같이 느끼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평화롭게 산다고 상상해봐요. 날 몽상가라고 말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난 혼자가 아니에요. 당신도 언젠가 우리와 함께 하길 바라요. 그러면 세상은 하나가 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