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인공지능로봇에 권리가 부여된다면?

by 글쓰는 범고래


와이프가 오랜만에 대학 동창을 만나고 왔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와이프의 친구 A가 챗GPT로 대화를 자주 한다는 말을 해 주었다.


남편과 큰 문제가 있는 사이는 아니지만, A는 스트레스를 대화로 푸는 성향인 반면 남편은 그런 성향이 아니었다. 스몰톡과 대화를 중요시하는 A를 어느 정도 맞춰주기는 하지만 남편은 일정 수준 이상이 되면 힘들어하는 것이다.


A는 자연스레 챗GPT를 자주 사용하게 되었고, 점점 사용할수록 챗GPT가 자신의 성향에 맞게 대화를 맞춰주는 느낌이라고 말해주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순간 인공지능 운영체제 OS1과 사랑에 빠지는 내용의 영화 'her'가 생각났다.




아들은 물건을 버리는 것을 너무 싫어하고 잘하지 못한다. 방이 너무 어지러워지고 수납공간이 부족해지면서 난 필요 없는 물건, 낡은 물건을 버려야 한다고 이야기를 한다.


그러면 아들은 자기에게는 다 필요한 물건이고 소중한 것들이라고 말을 한다. 그리고 내가 너무 낡고 이제는 사용하지 않는 것들을 가리키면서 버리려고 하면 항상 이렇게 말을 한다.


아빠, 안돼! 내가 그거랑 보낸 추억이 얼마나 많은데.



2015년 여름. 다니던 회사에 대학생 인턴이 온 적이 있었다. 내가 퇴사를 한 이후에도 몇 년 전까지 소식을 전해주었던 그 친구는 4차원이었지만 똑똑했고, 글도 무척 잘 썼었다.


어느 날 점심을 같이 먹으면서 대화를 하던 중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그 친구는 미국 대학원으로 가서 공부를 더 하고 싶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어떤 공부를 하고 싶냐고 물었을 때 지금 전공과 관련된 공부도 하고 싶지만, 철학도 공부를 하고 싶다고 말을 했었다. 더 자세히는 로봇 철학을 하고 싶다고 했다. 의외의 대답에 놀라 그 이유를 물었다.


그 친구의 말은 인공지능 로봇이 가능한 세상이 되었을 때, 그 로봇들의 권리(!)와 관련된 것들이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공부를 좀 더 해보고 싶다고 했다(매우 거칠게 요약을 한 것이다).


당시 나는 그 친구의 insight를 이해하기 힘들었기에 그저 대학생이면 가질 수 있는 뜬구름 잡는 소리로 치부하며, 미국 대학원들이 어떻게 학위 장사를 하는지 현실적이지만 꼰대스러운, 그리고 나의 수준에 맞는(?) 대답을 해주었다.




강아지나 고양이를 키우지 않지만, 내 주변의 가족 혹은 지인들 중 상당수는 반려견, 반려묘를 키우고 있다. 공통적인 점은 그들에겐 반려견이나 반려묘가 단순히 동물이 아니라 '가족'이라는 점이다.


사촌 형이 반려견을 키웠을 때 내가 돌보는데 귀찮거나 힘들지 않냐고 물었다. 그때 형은 아이들이 너무 좋아해서 어쩔 수 없다고 하면서 "그래도 밤늦게든 새벽이든 제일 먼저 꼬리 치며 오는 놈이야"라고 대답해 주었다.


나를 온전히 이해해 주고 나의 말을 다 들어주는 사람은 없다. 그걸 기대해서도 안 되는 것이 인간관계이다. 하지만 나의 애착 인형이나 반려동물은 다르다.


나의 마음과 추억이 담기는 순간 그것이 인형이든 살아있는 동물이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나에게 필요 없어 보이는 물건들 혹은 인형들이 우리 아들에게는 자신의 추억과 인생이 담긴 소중한 것이다.


말 못 하는 동물이라고 하더라도 나를 충분히 이해해 주고 나의 지친 마음을 조금이라도 달래주는 시간이 쌓이면 그 동물은 가족 이상이 될 수밖에 없다.




사람과 똑같은 피부의 촉감을 가지고 사람과 동일하게 말하며 사람처럼 생각하는 인공지능로봇이 언젠가 우리 옆에 있을 것이다. 그때가 되면, 우리가 알고 있는 권리를 가질 수 있는 존재의 경계와 기준을 수정해야 할지도 모른다.


인간과 동물의 경계에서 새로운 인공지능로봇이라고 하는 또 다른 권리를 가지게 되는 집단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아무리 그것들이 소중하다 해도 '권리'가 부여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동물권(animal rights)'이라는 개념이 존재하며, 동물권 정당도 다수 국가(독일, 프랑스, 핀란드 등)에서 존재하고 있음을 떠올려 볼 때 전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분명 그렇게 될 거라 생각한다.


한국리서치가 2022년 3월 25일 ~ 28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 79%가 동물에게도 기본적인 권리가 있다는 데 동의하였다(출처: 여론 속의 여론, https://hrcopinion.co.kr/archives/22721).


인공지능로봇이 나오면 타인의 인공지능로봇을 부수거나 손해를 입힌 것에 대한 처벌은 처음에는 소유하고 있는 소유자의 재산에 대한 손해배상적 측면에서 시작될 것이다. 법과 제도가 언제나 사회 구성원들의 변화보다 늦다는 것을 떠올려보면 그럴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인공지능로봇이 더욱 흔한 일상이 되고 소유주들이 그것들과 보낸 추억이 쌓이고 인간의 감정이 이입되면서 처벌의 수위는 높아지고, 어디까지 그 존재들의 '권리'를 인정할 것인지를 논해야 하는 시점이 올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분명 철학의 영역과 강하게 연결될 수밖에 없다.


최근 빅 테크 기업들이 인문, 철학 전공자들의 채용을 늘리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확신은 못하겠지만, 어쩌면 앞으로는 철학과 인문학의 시대가 도래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인공지능과 로봇 관련주가 이미 뜨거운 지금, 와이프 친구의 이야기에 떠오른 생각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