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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둥이 남매에게 보내는 아빠의 Time Capsule.

by 글쓰는 범고래

* 이 글은 2014년 쌍둥이들이 태어난 해 적어 놓은 편지를 옮겨놓은 것입니다.




너희들이 태어난 지 48일째인 지금은 월요일이며,

날씨는 여름이지만 그리 견딜 수 없을 만큼

더운 날씨는 아니었어.


이제 곧 가을이 올 것 같이

하늘이 매일같이 높아지는 느낌이야.

이렇게 2014년의 여름이 간다고 생각하니,

무척이나 아쉬운 마음이란다.


2049년 오늘은 어때?


지금 아빠가 지내는 것처럼

계절의 변화를 느끼고 있는지,

아니면 기후변화로 전혀 다른 계절이 되었는지

궁금하구나.


오늘 하루는 어땠니?


부디 어제와 같은 오늘을

하릴없이 살면서 지내고 있지 않았으면 해.


몸은 건강하지?


비록 너희들이 살아가는 오늘의 의학 기술이

아빠가 살아가는 지금은 상상할 수 없다 해도,

몸을 돌보는 것에 게을리하는 일은 없었으면 해.


의료의 수준과 상관없이 옛 어른들의 말처럼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 하는 것'임을 잊지 마.


너희들이 살아가는 세상이 어떤 세상일지

도무지 상상조차 하기 힘들어

아빠의 잔소리가 점점 길어지는 듯하니,

이쯤에서 멈추도록 할게.


대신 지금 너희들 모습에 대해 이야기해 줄게.


너희들은 처음 태어난 모습은 찾기 힘들 만큼

많이 자랐고, 또 포동포동 살도 쪘단다.

아빠와 엄마가 너희들을 안고 분유를 먹일 때

한 손으로 받치는 것이 이제는 제법 힘들 만큼

건강하게 무럭무럭 자라주고 있단다.


항상 감사한 마음이야.


그리고 요즘엔 제법 오랫동안

눈을 뜬 채 놀기도 한단다.

'타이니 러브(tiny love)' 모빌의 음악을 틀어주면,

너희들은 움직임을 멈추고 그 맑고 깊은,

그리고 초롱초롱한 눈을 깜빡깜빡거리며

모빌을 쳐다보곤 한단다.


그 모습이 마치 음악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모빌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집중하는 것처럼 보여.


'국민 모빌'이라 불리는 타이니 러브의 힘인지,

새로운 세상의 소리를 듣고자 하는

너희들의 자연스러운 힘인지,

조금씩 매일 다른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단다.


가끔 너희들의 앙증맞은 손과 발을 만질 때면,

그저 감탄에 감탄을 한단다.


아빠의 손가락 크기만 한 너희들의 손안에

생명선도 있고, 두뇌선도 있으며, 감정선 등

모든 손금들이 하나하나 선명하게 새겨져 있고,

도톰하게 튀어나온 발등과 발뒤꿈치에도

발금이 세세히 그어져 있으며,

그 위에는 보드랍기 그지없어 만지면 마치

비누와 같이 매끄러워

아빠의 기분을 상쾌하게 해주기까지 하는

부드러운 피부로 덮여 있단다.


아빠의 그것들은 전혀 놀랍지 않은데,

너희들의 모든 것들은 어쩜 그리도 하나하나

신기하고 놀라운지...


더욱 놀라운 것은 너희들의 모습에서

아빠, 엄마의 모습을 그대로 발견할 때란다.

똘똘이는 아빠의 쌍꺼풀을 그대로 닮았고,

심지어 왼쪽 쌍꺼풀이 더 깊은 것까지

닮은 것을 알았을 때는 신기하면서도

묘한 기분이었단다.


그리고 똘망이의 이마는 어찌나 엄마를 닮았는지,

귀엽기 그지없는 얼굴과 한없이 깊고

고요한 눈빛을 보여주고 있단다.

똘똘이의 눈이 별같이 반짝거린다면,

똘망이의 눈은 잔잔한 호수같이

고요하고 깊은 느낌이란다.


당연한 것이지만 이런 모습들을 발견할 때면

'정말 내 아기들이구나'라는 생각이 드는데,

너희들의 아들, 딸은 어떠할지 벌써 궁금하구나.

(그런데, 너희들 지금 결혼은 했니?)


비록 새벽에 두어 번 깨어서 너희들에게

분유를 먹이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너희들의 빛나고 고요한 눈빛을 마주할 때면,

지금 이 순간이 아빠의 인생에서

가장 큰 행복한 순간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단다.


'4살까지 평생 할 효도 다한다'는 어른들의 말처럼

지금 너희들의 모습은 아빠와 엄마에게

그 어떠한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다란 기쁨과 행복을 주고 있단다.


아빠의 시간은 이처럼 행복한데,

너희들은 어떤 행복과 기쁨으로 살아가고 있니?


지금 아빠가 행복한 것처럼, 오늘 너희들도

행복한 날들을 보내고 있었으면 좋겠구나.


그리고 지금 너희들의 모습이 어여쁜 것처럼,

오늘 너희들의 모습도

여전히 어여쁜 모습이었으면 해.


이 글을 읽게 될 너희들의 나이가 2014년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아빠의 나이와 같은데,

너희들의 35살은 어떨지 궁금하구나.


만약 너희들이 아빠와 멀리 떨어져 있다면,

오늘 하루는 아빠에게 전화해서

너희들의 하루가 어떠했는지

온갖 수다를 떨어주지 않겠니?


그리고 혹여나 가까운 곳에 있다면,

아빠가 좋아하는 피자를 주문해서 함께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눠보는 건 어떨까?


그때쯤이면 아빠랑 엄마가 조금은 더 외롭고,

너희들이 그립지 않을까?


혹여나 너희들이 살아가는 오늘 아빠의 모습이

조금 밉다 하더라도, 혹은 밉게 변했다 해도

오늘만큼은 너희들과 같은 나이의,

지금 이 편지 속의 35살 아빠와 이야기해 보자.


아빠가 어떠한 모습으로 변한다 하더라도,

너희들을 사랑하는 마음은

지금과 결코 변함없을 테니까.


아빠의 이 마음이 오늘 너희들의 마음속 깊이

온전히 닿을 수 있길 바라며,

이제 아빠는 잠을 자기 위해 눈을 붙여야겠구나.


그럼 잘 자렴, 귀염둥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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