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아빠의 동화책
둥이들이 태어났던 2014년 6월. 둥이들을 위해 소리 냈을 때 좋은 의태어와 아이들과 스킨십할 수 있는 단어를 선택하여 짧은 동시 하나를 만들었다.
<아가야, 사랑해>
손가락 앙금앙금
발가락 꼬물꼬물
귓가에 살랑살랑
OO아, 사랑해.
눈동자 망울망울
엉덩이 옹글옹글
심장은 콩닥콩닥
OO아, 사랑해.
아이들의 손과 발, 그리고 몸을 만지면서 속삭여주는 그 감정이 너무 좋았던지라 아이들을 위해 소리와 그림에 집중된 짧은 책 하나를 만들어주고 싶어졌다. 그래서 둥이들의 100일 선물을 위한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아빠의 동화책'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문제는 그림이었다.
갓난 아가인 둥이들을 위한 책이니 그림이 중요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난 그림에는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그림을 그려줄 수 있는 일러스트레이터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인터넷에서 세 명의 일러스트레이터를 찾았고, 무작정 블로그 쪽지를 보냈다. 동화책을 만들고자 하는 이유와 동화책에 들어갈 그림이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기다리던 답장은 없었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개인에게 그림을 그려주는 것이 돈이 되지 않는 번거로운 일이었을 테고, 무엇보다 일러스트레이터의 경력에 도움이 될 만한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답이 없는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며칠이 지났고, 포기하려던 어느 날.
답장이 왔다.
미국 리즈디(RISD, Rhode Island School of Design)에 다니는 학부생이었다(참고로 리즈디는 미국의 아트 스쿨 중 탑으로 손꼽히는 유명한 학교이다). 비록 학부생이었지만 17살 때 아이튠즈에 동화책을 만들어 올린 경험도 있었다.
이미 그 친구에게 쪽지를 보내기 전 그 친구가 만든 동화책과 포트폴리오를 보았고, 내가 원하는 그림을 그려줄 수 있을 거라는 확신에서 쪽지를 보낸 것이었다. 그리고 답장이 온 것이었다.
그림을 그려줄 수 있다는 최종 답변을 받은 후, 본격적으로 내가 원하는 그림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았다. 미국에서 공부하는 유학생이었기에 이메일로만 의견을 교환해야 한다는 점, 그리고 학생이기에 학교 일정 및 시험 등으로 시간이 예상보다 지체될 수 있다는 점은 아쉬웠지만 충분히 감내할 수 있는 사소한 문제들이었다.
그렇게 여러 번 이메일을 통해 중간중간 그림들에 대한 피드백을 주고받으면서 그림들은 완성되어 갔다. 그리고 첫 장에 들어갈 아이들에게 보내는 Daddy's 1st Whisper (아빠의 첫 번째 속삭임)라는 짧은 편지도 적었다. 그렇게 생각보다 더 많은 시간이 지나서야 동화책은 완성되었다.
조금 아쉬웠던 건 훌륭한 그림에 비해 좀 더 짜임새 있는 책을 만들지 못했다는 것이다. 비록 짧은 동화책이지만 처음 책을 만들다 보니, 글씨 크기와 폰트 등 세심하게 디자인적 요소가 들어가야 하는 부분에서 완성도를 높이지 못한 것이었다. 전적으로 나의 경험 부족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아이들을 위한 동화책을 직접 만들어주었다는 의미에 만족하면서 완성된 책을 자주 아이들에게 읽어주곤 했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직접 책을 읽을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을 때야 그 책의 표지에 왜 아빠의 이름이 있는지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아이들의 책꽂이에는 여전히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아빠의 첫 동화책이 꽂혀있다.
Daddy's 1st Whisper
더없이 따스했던 봄바람,
찬란하게 부서지던 아침 햇살,
고요했던 장맛비.
풍경이 지나간 그 자리에
앙금거리던 작디작은 손가락,
쌔근거리는 소리와
사랑스러운 발가락.
아빠로 다시 태어나게 해 줘서,
너희들의 아빠여서,
한없이 감사한 나날들.
사랑해, 우리 천사들.
- 2014년 너희들을 기다리며, 그리고 너희들과 함께하며...
봄바람 산들산들 불어오니,
민들레꽃 한들한들 춤을 춰요.
그 모습 으쓱으쓱 우리 아가 같아
손뼉 치며 하하 호호,
우리 아가 너무 예뻐.
흰구름 뭉게뭉게 피어나니,
노랑나비 팔랑팔랑 노래해요.
그 모습 옹알옹알 우리 아가 같아
손뼉 치며 하하 호호,
우리 아가 너무 예뻐.
빗물이 토독토독 떨어지니,
오리가족 뒤뚱뒤뚱 도망가요.
그 모습 아장아장 우리 아가 같아
손뼉 치며 하하 호호,
우리 아가 너무 예뻐.
햇살이 생글생글 내리쬐니,
멍멍이는 꾸벅꾸벅 잠만 자요.
그 모습 쌔근쌔근 우리 아가 같아
손뼉 치며 하하 호호,
우리 아가 너무 예뻐.
P.S. 아이들의 동화책에 그림을 그려 준 학부생 친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지 궁금하여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름을 검색을 해 보니, 졸업 후 2017년 한국에서 자신의 스튜디오를 만들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https://www.behance.net/Juliettekim).
이미 10년이 넘었고, 이메일로만 주고받았기에 얼굴도 한 번 보지 못한 인연이지만, 너무 반가운 느낌이 들었다. 아이들에게 책을 만들어 주고자 했을 때 그 누구에게도 답장을 받지 못했기에 그 친구가 아니었다면 아이들을 위한 아빠의 책은 완성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닿지 못할 글이겠지만, 이 글을 통해서라도 감사의 마음을 전해본다. 진심을 담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