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붉은 불길 속에서 길을 잃다
죽음의 붉은 불길 속에서 길을 잃다
라마가 14세가 되던 해에 신심이 깊은 아버지의 인도로 한 스승을 알게 되었다. 그 스승의 이름은 니란자나였는데, 엄격한 금욕주의자였다. 라마는 가끔 아버지를 따라 그 스승을 찾았지만 제 뜻에 따른 것은 아니었다. 니란자나 스승은 라마에게 세상의 즐거움을 포기하고 욕망을 극복해야 신에게 다다를 수 있다고 이야기했지만 어린 라마의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당시 라마의 관심사는 영적인 구원이나 깨달음이 아니었다. 또래의 여느 소년들과 다를 바 없이 백합 한 송이를 건넬 어여쁜 여자 친구와 청라언덕 같은 꿈을 좇고 있었고, 크리켓 공을 던지며 즐거움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
이후 라마는 크리켓(인도, 파키스탄, 영국, 호주 등지에서 인기 있는 야구 비슷한 스포츠) 선수가 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과 함께 특별히 기록할만한 것이 없는 고만고만한 즐거움과 괴로움을 맞닥뜨리며 인생의 2년을 보냈다. 변한 것이 있다면 굵어진 목소리와 약간 더 자란 키 그리고 학년이 몇 단계 높아졌다는 것 정도였다.
찜통 같은 와산타(인도의 계절 중 대략 3월 중순부터 5월 중순까지 제일 무더운 시기)의 무더위가 절정으로 치달았다. 이럴 때면 차라리 몬순의 장대비가 그리울 지경이었다. 하지만 무더위보다 더 지긋지긋한 건 학기였다. 다만 그게 끝나가고 있다는 것이 최대의 위안이자 행복이었다는 점이, 중세의 스토아 철학자처럼 그저 견디며 가만히 있어야만 하는 이 시기의 아이들의 암울한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애석하게도 그것은 라마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방학을 이틀 앞둔 날, 라마는 이유 없는 약간의 불길함 속에 학교를 향했다. 가장 절친한 친구인 나라얀이 보이지 않았다. 수업이 시작될 때까지 나라얀은 오지 않았다. 담임선생님이 침울한 표정을 하고 들어와서는 나라얀이 어제 밤새 갑작스러운 열병으로 죽었다고 했다. 그 순간 라마의 가슴에서 천둥이 휘몰아쳤다. 라마는 그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어제만 해도 함께 공을 던지며 뛰어놀던 나라얀이 아니던가. 그날 수업이 어떻게 끝났는지도 모를 만큼 라마는 혼란스러웠다.
며칠 뒤 꽃으로 곱게 단장한 친구의 주검이 갠지스강 강가의 붉은 불길 속에서 한 줌의 재가 되었다. 라마는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삶과 변하지 않을 것 같던 청춘이 한순간 허공의 연기처럼 사라져 버림에 큰 충격을 받았다. 라마는 한동안 흐르는 눈물과 함께 갠지스강이 되고 하늘이 된 친구를 멍하니 바라보며 앉아 있었다.
라마는 강을 따라 하염없이 걸었다. 상감에 이르러서야 걸음을 멈췄다. 상감은 검푸른 갠지스강과 회녹색의 야무나강이 만나는 두물머리였다. 거기다 신화에 따라 이 두 강 사이로 천상의 강인 사라스와티가 흐른다고 사람들은 믿고 있기에, 이 땅은 세 개의 신성한 강이 만나는 장소라 최고의 성지로 꼽혔다. 삶의 강 갠지스와 죽음의 강 야무나…. 하지만 그 사이로 흐른다는 영원의 강 사라스와티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친구를 잃은 고통은 점점 더 큰 불길이 되어 라마를 태우기 시작했다. 라마는 걷잡을 수 없는 고통의 불길 속에서 이상하게도 자신의 길이 아주 분명해짐을 느꼈다. 라마는 한숨을 깊이 들이쉬며 고개를 들었다.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마침 흰 구름 하나가 파란 하늘을 느릿느릿 걷고 있었다.
영원한 집을 찾아 헤매다
라마는 흰 구름을 따라 다시금 니란자나 스승을 찾았다. 라마는 여전히 어린 나이였지만 더는 꿈을 좇는 소년이 아니었다. 삶이 그에게 부과한 고통을 묵과할 수 없었다. 그의 비장함을 알아차린 니란자나 스승은 라마에게 이렇게 물었다.
“라마야, 그 고통이 어디에서 왔느냐?”
라마가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이 미간을 약간 찌푸리며 대답했다.
“친구의 죽음으로부터 왔습니다.”
그러자 니란자나 스승이 다시 물었다.
“그럼, 그 고통은 어디로 가느냐?”
라마는 그 물음에 답할 수가 없었다.
잠시 후 니란자나 스승이 말했다.
“이제 그것을 찾아보아라.”
라마의 영원한 집을 향한 지난(至難)한 여정의 한 걸음이 그렇게 시작되었다.
거센 마음의 파도와 맞서다
라마는 스승의 아쉬람에서 지내며 한동안 흙탕이 가라앉은 물처럼 평온한 날들을 보냈다. 얼마 전까지 용광로처럼 끓던 고통이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음이 실감 나지 않을 정도였다. 그러나 이것은 폭풍전야와 같은 잠깐의 휴가나 다름없었고, 앞으로의 고된 여정을 알리는 서막에 불과했다.
그렇게 한 달여가 지나자 니란자나 스승은 라마에게 계(戒)를 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라마야! 세상은 불타는 지옥과도 같고, 욕망은 영혼을 죽이는 칼날이다. 이제부터는 한 사람의 수행자로서 계율을 엄격히 지키고 철저히 금욕 수행을 해야 한다.”
계율과 함께 라마의 수행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계율을 받은 라마는 스승의 분부에 따라 정진했다. 그러나 어린 라마에게 계율을 지키며 욕망을 억제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라 할 수 없었다. 친구의 죽음을 경험한 이후로 라마에게 세상의 부귀영화는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청소년기에 독신 수행자로 살아가면서 이성(異性)에 대한 감정을 억누르는 것은 강한 용수철을 누르는 것과 같이 힘에 겨웠다. 어쩌다 또래의 여성을 마주치기라도 하면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본 것처럼 고개를 돌리고 긴장하기 일쑤였다.
또한 니란자나 스승은 라마에게 이렇게 말했다.
“오직 신만을 열망하고 만나는 모든 사람을 신처럼 여겨야 한다. 그래야 신께 다다를 수 있다.”
이러한 가르침은 오히려 라마에게 신에 대한 강박증만 일으켰다. 지켜야 할 계율과 해야 한다는 가르침은 마음에 돋은 가시와도 같이 거세게 라마를 찔렀다. 그럴수록 라마는 마치 오래된 사원 한구석에 덩그러니 남아있는 목이 잘린 신상(神像)처럼 정신이 반쯤 나간 채 앉아서 니란자나 스승이 가르쳐준 만트라를 염송했다.
파도가 거셀수록 만트라도 격해졌다. 신성한 만트라조차도 마음을 억누르는 도구가 되어버렸다. 라마는 머릿속을 가로지르는 생각과 가슴속을 헤집는 감정의 파도를 잠재우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하지만 가라앉았나 싶던 파도는 약간의 바람에도 다시 일렁였다.
태어나서 잠시 머물다 사라지는 것이 이 세계의 속성인 것을! 그런 이 세계에서, 라마는 영원한 어떤 것을 갈망하고 있었다. 영원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영원한 자아, 신, 진정한 집…. 이런 건 그저 말에 불과한 것일까? 라마는 영원한 것을 위해 영원하지 않은 것들과 싸웠다. 라마는 영원한 것을 얻기 위해서는 영원하지 않은 것들을 죄다 괴멸시켜야만 하는 줄 알았다. 라마는 오랜 시간 그것과 싸웠지만 만질수록 커지는 발가락의 티눈처럼 그를 점점 괴롭혔다. 그것과 싸울수록 그것이 더 강해진다는 걸 어린 라마는 몰랐다.
겉으로 보기에는 계율을 잘 지키며 청정한 수행자의 삶을 사는 것처럼 보였지만 속은 병들어가고 있었다. 라마는 차츰 내면의 자유를 잃어갔으며, 중과부적(衆寡不敵)의 상대 앞에 깊은 좌절을 맛보아야만 했다. 그러는 사이 몇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라마의 삶은 여전히 세탁기 속의 빨래였다. 게다가 그런 자신을 어느새 죄인 취급까지 하고 있었다.
라마는 신을 향한 길을 간다는 자부심과 작금의 어두운 골짜기를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은 참담함을 공평하게 주고받으며 어느덧 백척간두의 10년이 흘려보냈다. 라마는 청년이 되어 있었지만, 그의 수행은 여구히 위태로운 침묵과 몇 조각의 평온만을 주었을 뿐, 전적인 행복과 자유를 가져다주지는 못했다. 그 무렵 자신을 신에게로 인도해줄 것으로 믿었던 니란자나 스승은 라마를 비롯한 여러 제자의 마지막 배웅을 받으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
라마는 스승이 살아계시는 동안 그의 가르침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구도의 길을 포기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뜨거운 가마 속의 열기를 견디지 못하고 깨져버린 항아리의 아련한 꿈을 뒤로 하고 라마는 평범한 삶을 살아가기로 했다. 그동안 못한 세속의 공부를 하면서 생계를 위해 막노동, 가계 점원, 선반공, 식당 종업원 등의 일들을 닥치는 대로 하며 지냈다. 하지만 이것 또한 그다지 만족스럽지는 못했다. 포기했다고는 하나 결코 포기될 수 없는 어떤 것이 라마의 가슴에 남아있었기 때문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