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바람의 길을 가다

욕망을 두려워 한다는 것은 삶을 두려워 한다는 것

by 이강언

진정한 내 집은 어디인가?


세상의 모든 때와 먼지를 씻어내려는 듯이 주야장천 내리던 빗줄기가 잦아들며 기나긴 몬순이 끝나가고 있음을 묵시(黙示)했다. 모처럼 만에 갠 이른 샤라다(인도의 계절 중 대략 9월 중순에서 11월 중순까지의 가을 건기)의 하늘이 몬순의 끝물과 포개지며 파란 얼굴을 드러냈다.

노을이 질 무렵 라마는 갠지스강 강가의 화장터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곳에서는 여전히 살아있는 붉은 불길들이 죽음들을 검게 태우고 있었다. 강 둔덕에 홀로 앉아 있노라니 불현듯 십여 년 전의 일이 떠올랐다. 삶과 죽음, 만남과 이별의 교차로 그리고 그것을 가로지르는 영원에의 다리. 라마는 가슴이 다시 뜨거워짐을 느꼈다.

라마는 다시 발길을 옮겼다. 그 순간 뒤에서 어떤 목소리가 들렸다.

“어디로 가시오?”

라마가 뒤를 돌아보니 남루한 복장을 한 늙은 사두(인도의 수행자를 지칭하는 말 중 하나)가 서 있었다.

“집으로 갑니다만….”

“정말 집으로 가는 것이오? 젊은인 집이 어딘지 모르는 것 같소만….”


라마는 그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 사두가 말한 집은 라마의 육신이 거하는 집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을 간파한 라마가 그 사두에게 다급히 물었다.

“저는 신에게 다다르기 위해 엄격한 금욕 수행을 했지만, 그것이 저를 신에게 데려다주지는 못했습니다. 제가 어떻게 해야 신에게 이를 수 있겠습니까?”

잠시 침묵하던 늙은 사두는 라마의 눈을 부드럽게 응시하며 말했다.

“집과 감옥의 차이는 문이 열리냐 열리지 않느냐의 차이요. 자신을 어디에도 가둬두지 마시오. 그 어디에도!”

라마는 계율과 금욕이라는 엄격한 틀 안에 자신을 가둬뒀음을 깨달았다. 그 늙은 사두는 이런 말을 남기고 홀연히 사라졌다.

“마음속에서 그 무엇이 오고 가더라도 내버려 두시오. 그저 문을 활짝 열고 기다리시오. 그러면 신이 먼저 그대를 찾을 것이오.”


라마는 마치 꿈을 꾼 것처럼 아련했지만 왠지 마음을 옥죄던 족쇄 하나가 헐렁해진 느낌이었다. 집으로 가는 걸음이 훨씬 가벼웠다. 비록 육신의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긴 했지만.



푸른 바람의 길을 따라가다


계절은 바야흐로 헤만타(인도의 계절 중 대략 11월 중순부터 1월 중순까지 초겨울 건기)에 접어들었다. 구름 한 점 없이 푸른 하늘은 저 너머 공간의 광대함을 짐작케 해주었다. 가끔 점점이 흰 새들이 삼삼오오 공간을 가로지르고 있었지만, 그 어떤 새도 흔적을 남기지는 않았다. 인간은 표시도 나지 않을 이 삶의 무한한 공간에서 무엇을 남기기 위해 애쓰고 있는가?


오랜 잿빛 나날들을 푸른 바람이 걷어 가듯, 마음을 억눌렀던 가장 무거운 돌 하나를 덜어내니 라마의 얼굴에도 새롭게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건기는 수행자에게 더없이 좋은 계절이다. 걸음이 이끄는 대로 떠돌면 그것이 곧 길이 되고, 발길이 닿는 곳에 머물면 그곳이 곧 집이 된다. 사막의 낙타처럼 하늘을 천장 삼는다고 해도 그리 나쁠 건 없다.


라마는 다시 여정을 시작하고 싶었다. 자신의 영원한 집을 찾고 싶었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서 십여 년 전 첫 스승을 찾아갈 때와 같은 비장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대신 설렘을 머금은 빛나는 눈망울이 그의 부푼 기대를 드러내고 있었다.


라마는 지난 몬순 끝 무렵에 우연히 만났던 늙은 사두가 떠올랐다. 마치 내 마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는 듯, 아니 차라리 내 마음속에 들어와 나를 보고 있는 듯한 표정으로 말을 건넸던 그를 다시 만나고 싶었다. 어쩌면 이번 여정은 그를 만나기 위한 순례일지도 몰랐다.


라마는 갠지스강을 따라 걷다 그 옛날 붓다의 발자취가 흐릿하게 남아있는 코샴비라는 도시에 다다랐다. 허기를 달래줄 약간의 먹을거리를 구하기 위해 라마는 사원을 찾았다. 그 도시에는 오래된 하누만 사원이 하나 있었다. 라마는 사원에 머물면서 오가는 구도자들이 주고받는 경험담을 들을 수 있었다. 주로 어떤 아쉬람(인도의 수행처로 수도원과 비슷하다)에서 얼마간 머물렀으며 그곳에서 무엇을 배우고 체험했는지에 대한 그런 것이었다. 물론 가끔은 아쉬람의 음식과 처우에 대한 품평도 있었지만.


그중에 라마의 흥미를 끈 것은 푸네의 아쉬람에 관한 이야기였다. 푸네는 중서부의 대도시인 뭄바이와 가까운 거리에 있는 꽤 큰 도시였다. 그곳 아쉬람에는 라즈니쉬라는 독특한 스승이 있는데, 그의 명상법이나 가르침이 전통적인 방식과는 거리가 있지만, 인간의 심리를 꿰뚫는 날카로운 통찰과 깨달음에 대한 깊은 안목을, 세련되고 명징한 언어로 풀어내는 그의 강연은 감탄을 넘어 경이롭기까지 하다고 했다.


라마는 라즈니쉬 스승을 만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기차로 하루 이상 걸리는 거리이긴 했지만, 떠돌이 수행자에게 거리는 지도에 불과한 것! 다음 날 이른 아침 라마는 사원의 승려들에게 감사를 표시하고 푸네로 걸음을 옮겼다. 묘한 기대감과 설렘이 라마의 마음 사이를 두둥실 떠다녔다.


다음 날 정오가 지나서야 아쉬람에 도착했다. 라즈니쉬 아쉬람은 잘 가꾼 식물원을 갖춘 휴양지 같았다. 키가 큰 열대목 사이에서 옹기종기 작은 숲을 이루고 있는 관목과 질서정연한 꽃들의 모둠들, 한가로이 연못을 노니는 백조와 지붕 위의 하얀 공작 그리고 그 사이로 나 있는 맑은 대리석 길은 인도의 여느 아쉬람과 사뭇 다른 색채를 드리우고 있었다.



욕망을 두려워 한다는 것은 삶을 두려워 한다는 것


라마는 그날 저녁 라즈니쉬 스승과의 사트상(진리의 모임이라는 뜻으로 스승과 직접 대면하면서 가르침을 듣는 법회를 말한다)에 참여했다. 꽤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사람들의 질문에 대한 라즈니쉬의 대답은 파격적이며 거침이 없었다. 라마에게도 질문의 기회가 왔다.

“저는 신에게 이르기 위해 욕망을 억눌러왔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늘 그림자처럼 제 발목을 붙잡고 있습니다.”

라즈니쉬 스승은 불길같이 빛나는 눈으로 라마를 바라보며 물었다.

“너는 왜 너의 욕망을 두려워하는 것이냐?”

“욕망은 성자의 삶이 아니지 않습니까?”

“성자의 삶에 대해서는 잊어라. 신에 이르기 위해서는 삶으로 더 깊이 들어가야 한다. 욕망은 삶의 원동력이다. 욕망이 없다면 너는 한순간도 존재하지 못할 것이다. 무엇이 너를 여기까지 오게 했는가? 그것은 바로 그대의 욕망이다. 그대는 지금도 숨을 쉬고 있으며 목마르면 물을 마시고 배고프면 음식을 먹는다. 이런 것은 그대에게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그렇지 않은가? 그런데 왜 성(性)은 문제를 일으키는가?”

라마는 라즈니쉬의 직설적이며 대담한 화법에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말 그대로 충격이었다. 그리고 충격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라즈니쉬 스승은 라마에게 이야기 하나를 들려주었다.

“어떤 젊은 수행자가 있었다. 그는 깨달음을 얻고자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잘되지 않았다. 어느 날 아주 유명한 성자가 마을로 온다는 소문을 듣고 그에게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 그는 성자에게 자기가 언제쯤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지를 물었다. 그 성자는 그가 오늘 밤 안으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오늘 밤 안으로 깨달을 수 있다는 말에 너무 기뻤다. 그런데 조건이 있었다. 오늘 밤 명상을 할 때 절대 원숭이를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성자에게 절을 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날 밤 그는 결가부좌를 하고 명상을 시작했다. 원숭이만 생각하지 않으면 된다는 성자의 말이 떠올랐다. 그 순간 원숭이 생각을 하고 말았다. 그는 평소 한 번도 원숭이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그날은 밤새도록 원숭이 생각에 시달렸다. 그는 성자를 찾아가 괴로움을 호소했다. 성자는 마음을 억압한 결과가 어떤 건지를 보여줬다.”

라마는 이 이야기를 듣자 어린 시절의 자신이 떠올라 속마음을 들킨 듯 얼굴이 살짝 달아올랐다. 왜 그렇게 그 마음이 자신을 괴롭혔는지 알 것 같았다. 아니 확실히 알게 되었다.

라즈니쉬 스승이 다시 말문을 열었다.

“성은 삶의 문이자 신이 만든 통로다. 누구도 이 문을 통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이것을 부정하는 건 삶을 부정하는 것이고 사랑을 부정하는 것이고, 나아가서는 신을 부정하는 것이다. 살기도 전에 이미 죽은 것이다.”

“그럼 제가 이제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신이 너에게 성을 주었다면 그것은 옳다. 그러니 그저 ‘예’라고 말하라. 깊이 받아들이고 그것을 통해 사랑을 배우라. 다시 한번 말하는데, 성자의 삶에 대해서는 잊어라. 대신 너 자신이 되어라.”


라마는 새장에서 풀려난 새처럼 묘한 해방감을 느꼈다. 또 한편으로는 마음의 괴로움으로 인해, 그리고 그 괴로움을 넘어서기 위해 들어선 길에서 스스로 마음의 감옥에 가두며 또 다른 괴로움을 자초했던 자신의 어리석음에 몸서리를 쳤다. 지나간 시간의 목덜미를 물어뜯을 수만 있다면 그리하고 싶을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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