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이 라마와의 만남
알 바스타미의 노래가 귀에서 식기도 전에, 사막을 빠져나온 라마는 마날리로 갔다. 이곳 사막처럼 몬순의 손아귀에서 자유로운 몇 안 되는 곳 중 하나인 레로 가기 위함이었다. 마날리에서 버스를 타지 않으면 레로 갈 다른 방도가 없었다. 물론 비행기가 있긴 했지만 가난한 수행자에게는 언감생심인지라!
레는 티베트와 똑같은 환경 속에서 티베트인들이 자신들의 불교 전통을 꿋꿋이 지키며 살아가는 척박한 터전이었다. 라마가 레로 향한 건 티베트불교에 대해 궁금함도 있었지만, 굳이 비를 맞으며 우중충한 여행을 하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이었다.
버스에는 대부분 외국인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들로 채워졌다. 그중 절반은 서양인들이었다. 뭐, 더는 낯설지도 않았다. 1박 2일 동안 가야 한다고 했다. ‘레는 대체 어디에 붙어있는 동네이기에 1박 2일이나 가야 한다는 것인가? 분명 마날리는 레의 턱밑이 아니던가!’
이건 라마의 불평이 아니라 흥미진진해서 그냥 웃으며 해본 생각이었다.
버스는 그나마 길 같은 도로를 벗어나자 절벽에 걸친 아슬아슬한 길 위로 꼬불꼬불 비틀거리며 달렸다. 중간에 천막 따위로 대충 지은 휴게소에서 점심이나 드시라고 한참을 멈췄다가 다시 내달렸다. 올라갈수록 초록은 저만치 멀어졌고 사막과는 또 다른 황량함이 설산에 가로막혀 오도 가도 못한 채 억류되어 있었다.
하늘이 검붉게 물들어 갈 즈음에 버스는 산 중턱의 텐트촌에 멈춰 섰다. 어두워서 오늘은 더 운행하지 않고 여기서 야영한다고 했다. ‘옳거니! 바로 이거였구나. 이게 바로 1박 2일의 비밀이었어.’ 라마는 해묵은 수수께끼의 해답을 발견한 것처럼 묘한 희열과 야영에 대한 설렘을 동시에 느꼈다.
히말라야 중턱에서 낯선 이들과 옹기종기 모닥불 주변에 모여 앉아 뜨거운 차 한 잔으로 몸을 녹이는 기분은 명상의 기쁨과는 사뭇 색다른 즐거움을 느끼게 해주었다. 머리와 수염을 기르고 주황색 옷에 담요 같은 주황색 숄을 둘둘 걸친 모습이 특이해 보였는지 주변의 몇몇 서양인들이 라마에게 흥미를 보였다.
그중 한 남자가 라마에게 물었다.
“레엔 무슨 일로 갑니까?”
“글쎄요. 비를 피해서….”
마땅히 대답할 말이 생각이 나지 않았기에 이런 말이 나오고 말았지만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다. 헌데 여기저기서 깔깔깔 웃음이 터져 나왔다. 라마의 농담 정도로 이해했는지 그다지 조롱 조는 아니었다. 라마는 자신도 겨우 비를 피하려고 1박 2일씩이나 걸리는 험준한 히말라야로 간다는 게 쉽게 납득이 되는 행동은 아닐 거로 생각했다.
더 진지한 대답을 촉구하는 눈빛들이 라마를 에워쌌다. 라마는 이대로 그냥 넘어갈 순 없겠다는 직관이 들었다.
“아, 거기 티베트 사원에 가서 잠시 머물면서 수행하려고요.”
이 말을 듣고서야 진지한 답변을 촉구하던 눈빛들이 그럼 그렇지 하는 안도의 표정으로 바뀌었다. 사실 그들이 안도하고 말고 할 일은 아닌데도, 마치 당신은 그런 식의 얼굴로 그렇고 그런 옷을 입고 있으니 수행하러 가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처럼 말이다.
수행을 왜 하냐는 둥, 명상이 뭐냐는 둥 진지함이 결여된, 단지 호기심에 찬 질문을 가볍게 받아넘기며 이 얘기 저 얘기 나누다 보니 어느새 텐트 식당에서 저녁을 알렸다. 저녁 식사가 끝나니 캄캄한 산중에서 잠자는 것 외에 달리 무엇을 할 수 있으랴. 아쉬람과는 다르게 인도인들의 저녁 식사 시간은 보통 9시를 전후로 전개되니 대충 잘 시간과도 잘 맞아떨어졌다.
각각의 텐트 안엔 철제침대를 두 개 붙여서 네 명이 잘 수 있게 되어 있었다. 공교롭게도 함께 온 일행들이 제각각 텐트를 차지하자 일행 없이 홀로 온 라마는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었다. 남은 자리는 버스 맨 뒷좌석에 나란히 앉았던 인연으로 몇 마디를 두런두런 주고받았던 한국인 여대생 2명과 30대 초반의 한국 여성이 꿰찬 텐트밖에 없었다.
꿔다 놓은 보릿자루 마냥 서 있던 라마가 할 수 없이 이 여성들에게 양해를 구하며, 괜찮겠냐고 물었더니 도리어 이 여성들이 당신이야말로 괜찮겠냐고 되묻는 게 아닌가. 아마도 라마가 수행자인 걸 알고 수행에 저촉되는 일이 아닌지를 묻는 것이리라. 라마는 당신들만 괜찮으면 자기도 괜찮다고 했다.
라마가 제일 가생이에 자리 잡고 누웠다. 더블 침대라고는 하나 두 사람이 누우면 어깨가 맞닿을 수밖에 없는 크기여서 네 사람이 죄다 어깨를 붙이고 미라처럼 자야만 했다. 가운데 누운 두 사람을 제외하곤 조금이라도 몸부림을 쳤다간 차가운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질 형편이었다.
이것은 히말라야에서의 첫날 밤임과 동시에 처음으로 낯선 여성과 나란히 누운 밤이기도 했다. 마냥 대놓고 편하지는 않았으나 딱히 좌불안석도 아니었다. 아무튼 라마는 죽은 듯이 자다가 여명에 토끼처럼 깨서 무사히 일출을 맞이했다. 설산을 배경으로 붉은 해가 솟으니 눈에 보이는 세계가 천상계 부럽지 않았다.
한편 지상에는 도착했을 땐 보지 못했던 뽀송뽀송 털옷을 입은 노란 에델바이스가 하얀 서리 밭에 피어있었다. 입김이 굴뚝 연기처럼 폴폴 나는 춥디추운 이른 아침에 찬 서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게다가 초목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히말라야 중턱에서 함초롬히 꽃잎을 펼친 이 작은 꽃의 기개에 라마는 경이로움마저 들었다.
텐트 식당에서 이른 아침 식사를 마치자마자 버스는 서둘러 하늘 도시를 향했다. 길은 갈수록 험난해졌고 고도 또한 차츰 높아지고 있었다. 점점 고산병 증세가 사람들 사이에 나타나고 있었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안타깝게도 창밖으로 토하는 사람도 하나둘씩 늘어났고 심한 두통에 몸서리치는 사람들도 늘어갔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높은 곳인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고개인 해발 5,328m의 타글랑라에 이르러서 아비규환은 절정을 이루었다.
버스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고개라고 자랑스럽게 소개하는 운전기사의 힘찬 목청과 함께 이곳에 정차했다. 그럴 정신이 있다면 기념 촬영도 해보라는 듯 제법 거기에 머물렀다. 거의 실신할 정도로 정신을 못 가누던 라마 옆자리의 한국 여성이 결국 버스에서 내리더니 토를 하고 말았다. 뭐랄까. 수행의 힘이라고 말해야 할지는 모르겠으나 라마는 그 와중에도 거의 멀쩡한, 아주 경미한 두통이 있었기에, 유일한 승객이었다.
제일 높은 곳까지 꾸역꾸역 기어 올라왔으니 이제 내려갈 일만 남았다. 덜컹거리는 버스가 하산을 재촉하며 한참을 달려 내려가니 회색 물감을 풀어놓은 강이 나타났다. 인더스강이었다. 그 옛날 인더스 문명을 일궜던 비옥한 하류는 이제는 인도의 영토가 아니지만, 이 나라의 이름과 관련된 유서 깊은 강이 한 자락이나마 근근이 걸쳐 있다는 게 이 땅을 여전히 인도라고 불러야 하는 이유라면 이유였다.
라마는 강을 보며 곧 도시의 풍광이 펼쳐지리라 짐작했다. 이윽고 길다운 길이 나타나더니 라마의 예상대로 얼마 안 가서 하늘 도시 레가 모습을 드러냈다. 레는 인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 잡은 도시였다. 사막 도시처럼 온통 누런빛으로 물들긴 했으나 저 멀리 설산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어서 히말라야의 신들이 이 도시를 황막함으로부터 지켜주고 있는 것 같았다.
가까이서 본 레는 한결 다양한 모습을 보여줬다. 수호신처럼 곳곳에 자리 잡은 티베트 양식의 곰파(사원)와 소박한 토담 가옥들, 시내를 벗어나면 보리밭의 푸른 물결과 점점이 노란 물감을 찍어놓은 유채꽃밭이 어우러져 흙빛 도시에 생기를 더했다.
라마는 곰파를 찾았다. 마침 승려들이 둘러앉아 색색의 고운 모래로 만달라를 그리고 있었다. 만달라의 크기와 그림의 정교함 그리고 색상의 화려함이 라마의 입을 다물지 못하게 막았다. 이것을 정녕 모래로 만들었단 말인가! 보지 않았으면 분명 믿기 어려웠을 것이다.
라마는 방해하고 싶지 않았지만, 몸이 저절로 젊은 승려를 붙들고 이 불가사의한 것에 관해 묻고 있었다.
“지금 뭘 하고 있는 겁니까?”
“축제에 사용할 만달라를 만들고 있습니다. 오늘이 일주일짼데 사흘 뒤면 완성될 겁니다. 축제도 그때 시작되죠.”
라마는 대여섯 명의 승려가 열흘 내내 여기에 매진하는 것이 놀라웠다.
“이 만달라는 무엇을 상징하는 겁니까?”
“삼라만상이죠. 거기다 깨달음의 세계와 불교의 가르침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왜 힘들게 모래로 그려 넣는 겁니까?”
“그건 축제를 보시면 알게 될 겁니다.”
그 승려의 말대로 사흘 뒤에 축제가 열렸다. 사원의 마당에서 티베트불교의 세계관을 보여주는 다채로운 공연이 펼쳐졌다. 축제의 마지막에 이 만달라를 대중에 공개했다. 모여 있던 모든 사람이 만달라를 향해 기도인지 만트라인지 정확히 구분이 안 되는 소리로 웅얼거리며 합장한 채 연방 고개를 숙였다.
그때 모자를 쓴 연로한 승려가 나와 손에 들고 있던 몽당빗자루 같은 걸로 만달라를 쓸어버렸다. 그 아름답던 만달라가 순식간에 모래 먼지로 와해하였다. 그 순간 라마의 머리를 번뜩 스치는 것이 있었다. 라마는 축제가 끝난 후 다시 젊은 승려를 찾아가 물었다.
“왜 그렇게 하는 겁니까?”
“무상(無常)을 알게 하기 위함입니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으니 집착을 버리라는 불교의 가르침이죠.”
라마는 푸네의 아쉬람에 머물면서 근처 담마기리의 고엔카 아쉬람에서 붓다의 명상법으로 알려진 위빠사나를 수행했을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아니짜(무상을 뜻하는 빨리어). 숨이 드나드는 코언저리에 마음을 집중한 채로 호흡에 따라 매 순간 변화하는 감각을 관찰하며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는 만고의 진리를 자신의 몸을 통해 이해해본 적이 있었다.
라마는 티베트불교의 가르침에 대해 더 알고 싶었다. 그래서 그 승려에게 도움을 청했다. 자신은 가르침을 전할 자격이 아직 안 된다며 손사래 쳤지만, 라마의 거듭된 부탁을 더는 거절만 하기가 어려웠던 그 젊은 승려는 결국 일을 크게 벌이고 말았다. 하지만 라마에게는 의외의 선물이나 다름없었다. 그 젊은 승려는 이렇게 말하고 말았다.
“정 그러시면 제가 여기 린포체님께 부탁해서 달라이 라마님을 알현할 수 있도록 부탁드려보겠습니다.”
라마는 한편 비를 피해 이곳으로 온 것이기도 한데, 운명이 건네는 농담처럼 하필 인도에서 비가 많이 오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다람살라로 가게 생겼다. 달라이 라마가 그곳에 있기 때문이었다. 라마는 그곳 린포체의 편지 하나를 달랑 들고 다시 버스에 몸을 맡겼다.
아니나 다를까 다람살라에 도착하니 장대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레와 달리 다람살라는 지천이 초록이었다. 라마는 한동안 버스터미널에서 빗줄기가 잦아들기를 기다리며 서 있었다. 그 틈에 짜이 한 잔을 받아들고 약간의 허기를 달랬다. 몬순의 장맛비가 으레 그렇긴 하지만, 여기 산악도시에서는 훨씬 더 변화가 심한 것이 영락없이 ‘아니짜’였다.
‘기다린 보람’이라기보다 기다린 결과로 빗줄기가 잠시 잦아들었고 그 틈을 타 라마는 달라이 라마가 머문다는 산동네 맥로드간즈의 남걀 사원으로 향했다. 터미널에서 걷기에는 꽤 먼 거리였지만 라마는 이곳 풍광도 느껴볼 겸 작정하고 걷기로 했다. 사실 그 이면엔 또 한 분의 스승을 만나러 가는 설렘과 경건함이 묻어 있기도 했다.
터미널에서 비를 피했던 게 무색하게 중간에 다시 장대비가 내렸지만, 이럴 줄 전혀 몰랐던 건 아니었던 터라 태연자약 비를 맞으며 걷고 또 걸었다. 비라는 게 처음엔 맞기 싫어 요리조리 피하다가도 일단 맞고 나서 포기하면 뛰어다니는 아이나 강아지 같은 즐거움이 있다는 건 비를 흠뻑 맞아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리라. 물에 빠진 강아지 꼴로 남걀 사원에 도착한 라마는 린포체의 편지를 건네고 비를 쫄딱 맞은 사연을 얘기하니 친절하게도 숙소 하나를 내주었다. 기실 그 꼴로 달라이 라마를 만날 수는 없을 테니!
다음 날 라마는 달라이 라마를 만날 수 있었다. 소탈한 인상의 달라이 라마가 활짝 웃으며 라마를 환대했다. 라마도 합장하며 화답했다. 비록 중국에 패망하기는 했지만, 일국의 수장이며 티베트불교의 상징이기도 한 그에게서 한 점의 권위 의식도 발견할 수 없었다.
“저는 진정한 집을 찾아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큰 자비심으로 세상을 품으면 당신은 진정한 집에 도착한 것입니다.”
“어째서 그런 것입니까?”
“진정한 집이란 이원성이 없는 곳입니다.”
라마는 이원성이 없는 곳이라는 말에 어렴풋이 짐작되는 바가 없진 않았지만 그의 말을 더 듣고 싶었다.
“자세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당신과 내가 다르지 않다는 이해에서 이타심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라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이타심이 산처럼 흔들림이 없고 굳건하다면 모든 것을 품는 자비가 생길 겁니다. 자비는 모든 존재를 하나로 이어주는 힘이기에, 이원성을 넘어선 열반의 세계로 우리를 이끕니다. 그곳에 머물면 당신은 진정한 집에 도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