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아리 만드는 노인
라마는 칸다나타 스승의 말대로 연어처럼 강과 더불어 자신을 낳아준 땅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다만 거슬러 간 것이 아니라 흐름을 따라간 것이 연어와 차이라면 차이였다. 강을 보며 자라온 그에게 강만 한 안식처는 없었다. 매일 강을 따라 걸었고 저물녘이면 강가의 사원에 머물렀다. 강가의 가트 근처에는 어김없이 사원이 있었기에.
칸푸르에 도착했을 때였다. 그곳 사원에서 만난 구도자에게서 근처 러크나우에 있는 푼자라는 스승에 대해 이야기 들었다. 그는 젊은 시절 라마나 마하리쉬에게 감화를 받은 인물이라고 했다. 라마는 라마나 마하리쉬라는 말에 귀가 뜨이며 옛 기억이 떠올랐다.
라마는 예전에 크리슈나무르티의 아쉬람에 갔을 때 근방의 티루반나말라이에 있던 라마나 마하리쉬의 아쉬람에도 들른 적이 있었다. 근방이라고는 하나 버스로 네댓 시간 거리는 족히 되었다. 허나 넓을뿐더러 도로 사정도 좋지 않은 이 나라에서 그 정도면 근방이라고 말한다 해도 토 달지 못하리라.
정말 소박하기 이를 데 없는 외관을 지닌 아쉬람에는 꾸준히 방문자들이 드나들었고 외국인들도 상당수 눈에 띄었다. 아쉬람 뒤편에는 아루나찰라라는 야산이 있었고 그곳에 라마나 마하리쉬가 수행했다는 바위 동굴이 있었다.
바위 동굴에는 주황색 가사를 걸친 수행자 한 사람이 동굴의 수호자처럼 앉아 있었다. 라마가 몇 마디 나눠보려고 했지만 애석하게도 그는 묵언 중이었다. 라마는 아루나찰라의 꼭대기로 올라가서 산 아래에 소담스레 드러누워 있는 아쉬람을 조망했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그 너머에는 동서남북으로 거대한 고푸람을 거느린 사원이 웅장하게 서 있었는데, 그곳이 바로 인도에서도 손꼽히는 아루나찰레슈와라 사원이었다.
아루나찰라를 한 바퀴 돌아 다시 아쉬람에 들어서니 마당에서 한 무리의 원숭이들이 분주히 설쳤다. 그중 대장 원숭이로 보이는 녀석이 라마의 눈앞에서 암컷 원숭이와 순식간에 애정행각을 벌였다. 이 신성한 아쉬람이 그 녀석들의 성(性)스러운 놀이터로 돌변한 것이었다. 라마는 그 광경을 덤덤히 지켜보았다. 한데 생뚱맞게 라즈니쉬가 했던 ‘성은 삶의 문이자 신이 만든 통로다’라는 말이 떠오른 건 왤까.
또 하나 이 아쉬람에서 인상적이었던 건 식사였다. 주로 다녔던 북부와 중부의 아쉬람과는 달리, 바나나 잎을 식당 맨바닥에 펼쳐놓고 그 위에다 이곳에서 봉사하는 수행자들이 각자에게 배당된 음식 양동이와 국자를 들고 다니며 방문자들에게 음식을 나눠줬다. 밀이 아닌 쌀 문화권인 남인도답게 자파티 없이 쌀밥에 자극적인 향신료나 양념을 사용하지 않는 서너 가지의 아쉬람식 커리와 요구르트, 바나나를 제공했는데, 식탐이 없던 라마에게도 감탄할 만한 것이었다.
바나나 잎이 식판이 되어준 까닭에 설거지도 필요가 없어 소중한 물도 아낄 수 있어서 일거양득이었다. 다채로운 열대과일과 곡식, 채소가 지천인 남인도의 풍요로운 자연환경이 빗어낸 생태적인 선순환을 확인하곤 라마는 흐뭇했다.
당시 라마나 마하리쉬는 이미 입적(入寂)한 지가 오래였었기에 라마에게 아쉬움이 조금 남았었다. 그 아쉬움을 이제 털어버리라는 뜻일까. 라마나 마하리쉬의 제자임을 자처하는 푼자가 있는 러크나우로 라마의 발길이 향하고 있었다.
이 무렵 푼자 스승은 오랜 여행을 끝내고 인생의 막바지를 가족들과 보내고 있었다. 그럼에도 ‘오는 것은 오게 하고 가는 것은 가게 하라’는 그의 가르침처럼 그의 집은 항상 구도자들에게 열려 있었고, 그에게 길을 묻는 사람들이 철새처럼 자유롭게 드나들었다. 라마도 그런 철새들 중 하나였다.
사트상 시간이 정해져 있었기에 라마는 미리 와있던 십여 명의 사람들과 함께 꽃으로 장식된 라마나 마하리쉬의 초상이 걸려 있는 명상실 같은 곳의 바닥에 앉아서 기다렸다. 잠시 후 푼자 스승이 나타났다. 푼자 스승은 푸근한 풍채와 얼굴로 자주 활짝 웃었는데 그 모습이 매우 인자해 보였다. 푼자 스승은 질문을 미리 글로 받은 후 그 질문을 읽고 질문자를 불러서 대화를 나눴다.
몇 가지 질문들에 대한 문답이 있은 후 라마의 차례가 되었다. 푼자 스승은 라마의 질문을 읽은 후 질문자가 누구인지 물었다. 라마가 손을 들자 푼자 스승은 가까이 오라고 했다.
“진정한 집을 찾고 있다고?”
“네, 저는 진정한 집을 찾고 있습니다.”
“찾는 그대는 누구인가?”
마치 선문답 같은 그 단순한 질문에 라마는 딱히 대답할 말이 없었다.
그러자 푼자 스승의 질문이 다시 이어졌다.
“그대의 모든 질문과 노력이 어디로 귀결되는가?”
라마는 또 한 번 머뭇거렸다.
“그건...”
“그것은 모두 그대 자신에게로 되돌아간다. 그렇지 않은가? 그러니 차라리 그 찾는 ‘나’가 누구인지 물어라. 마음에서 어떤 것이 일어날 때마다 나는 누구인가 하고 물어라. 그것이 그대를 진정한 집으로 인도할 것이다.”
푼자 스승은 라마의 질문을 라마에게 되돌려 보냈다. 아울러 라마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그대는 이곳에 머물 필요가 없다. 다시 와야 할 필요도 없다. 그러니 집으로 돌아가라.”
푼자 스승이 돌아가라고 한 집이 단순히 이것이었는지는 몰라도, 라마는 마침내 고향 알라하바드에 도착했고, 사원보다는 부모님이 계신 집에서 머물기로 했다. 어린 시절의 추억이 가득 담긴 앨범처럼 고향 집은 라마에게 많은 옛날얘기를 들려주고 있었다. 라마 또한 반기는 부모님께 지난 얘기를 들려드렸다.
라마의 아버지가 말했다.
“이제 집에 돌아온 것이냐?”
“글쎄요. 아직 확신이 없습니다.”
“그래, 알았다. 라마야! 우린 언제나 널 믿고 사랑한다. 그러니 언제든 네가 원하는 대로 하거라.”
니란자나 스승 시절 이후를 잠시 제외하곤, 수행을 핑계로 쪽지 하나 남기고 훌쩍 떠난 후 지난 몇 년간 제대로 안부도 전해드리지 못했는데…. 라마는 언제나 자신의 결정을 이해하고 지지해주는 이런 부모님이 참으로 고마웠다.
라마는 며칠을 쥐 죽은 듯이 방에 틀어박혀 있었다. 떠돌아다닐 때는 몰랐는데 집에 와서 휴식을 취하니 집이 주는 속 깊은 안도감이란 게 있는 것처럼, 그간 육신에 쌓였던 피로가 물밀듯이 밀려왔다. 그렇게 휴식을 취한 라마는 모처럼 강바람이나 좀 쏘이기로 했다. 가트로 갔다. 그곳은 친구 나랴얀을 보낸 곳이었고, 이 여정의 시발점이 된 늙은 사두를 만난 곳이기도 했다. 그곳 화장터에선 여전히 붉은 불길이 인생의 슬픔을 태우며 치솟고 있었다.
라마는 타는 불길을 보며 이 여정이 완전히 종결되지 않았음을 느꼈다. 가트를 벗어나 다시 강을 따라 하류로 걸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아마도 한 시간 이상은 걸었을 것이다. 작은 가트가 나왔다. 가트의 규모로 봐선 그리 크지 않은 시골 마을이 근처에 있음을 라마는 직감했다. 시장에서 코코넛이나 한 통 들이킬 요량으로 마을로 난 길을 따랐다. 오랜 여행의 경험으로, 갈증을 풀어주는 데는 코코넛만 한 것이 없다고 라마는 믿고 있었다.
오랜 여행의 경험으로, 라마의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얼마 안 가 시골 장터가 나왔다. 라마는 가판대에서 코코넛을 하나 사서 마셨다. 그 주위에 라마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인지는 몰라도 꽤 모여, 서로 아는 사이인 듯 코코넛을 마시며 두런거렸다. 라마는 거기에서 우연히 항아리 파는 노인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 노인은 이따금 저자에 나타나 몇 개의 항아리를 길 한편에 놓고 말없이 앉아 있기만 하다가 저녁 땀에 돌아가곤 한다고 했다. 항아리를 사려는 사람은 돈을 놓고 가져가면 그만이란다. 항아리엔 딱히 가격이 매겨져 있지도 않아 사고 싶은 사람이 알아서 형편껏 돈을 내고 가면 된단다. 가끔 짓궂은 사람이 그냥 가져가도 노인은 별다른 말 없이 앉아 있을 뿐 화내거나 뒤쫓아 가지도 않는단다.
라마는 이 노인이 몹시 궁금해졌다. 사람들에게 이 노인을 어떻게 만날 수 있냐고 물었지만, 그가 언제 저자에 나타날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했다. 다만 가끔 나타나는 걸로 봐서 그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으리란 확신 어린 추측만 할 뿐이었다. 라마의 마음속에서는 이미 이 노인을 만나야 한다고 요동치고 있었다.
라마는 몇 날 며칠을 노인이 나타난다는 저자의 길을 서성였지만 만나지 못했다. 하지만 단 하나만을 원한다면 그것은 꼭 이루어지고야 마는 법! 라마는 수소문 끝에 노인이 마을을 벗어나 외딴 길로 가는 걸 봤다는 사람을 만났다. 그 길은 다른 마을로 이어지는 길도 아니기에 노인이 그 길 어딘가에 살지도 모른다고 했다. 라마는 곧바로 항아리를 만드는 노인을 찾아보기로 했다.
라마는 마을 사람이 알려준 외딴 길을 따라 걸었다. 라마의 방문을 반기듯 길의 좌우에 야생 망고나무가 향기롭게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었다. 이것은 건기의 한 가운데에 서 있음을 뜻했다. 라마가 땀을 삐질삐질 비 오듯 흘리는 가운데 길은 점점 한가로운 숲으로 가늘게 이어졌다. 숲에 가려 어른거리던 하늘이 동그란 얼굴을 드러낼 때쯤 소박한 흙집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아마도 노인의 공방이리라. 사람들의 추측대로 그곳은 마을에서 꽤 떨어져 있었지만 아주 멀지는 않았다.
라마는 잠시 망설이듯 멈춰 섰다가 이내 문을 향해 걸어갔다. 마치 라마가 오는 걸 알기라도 한 것처럼 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열린 문은 때론 방문자를 당혹스럽게 한다. 차라리 닫혀 있었으면 두드리는 편이 나았을 거란 생각이 순간 라마의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라마는 마음이 만들어 놓은 닫힌 문 앞에 멀뚱히 서 있었다.
그때 공방 안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디에도 자신을 가둬두지 말라는 말을 잊었구나!”
라마는 정신이 퍼뜩 들었다. 그것은 그때 그 늙은 사두의 목소리가 틀림없었다. 그 순간 라마의 가슴에서 형언할 수 없는 뜨거운 파도가 일었다.
다시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너라. 여기가 이제부터 네가 살 곳이다.”
라마는 무언가에 끌린 듯 공방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노인은 하던 일을 멈추고 천천히 고개를 들어 라마를 바라보았다. 라마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라마는 저도 모르게 이런 말을 내뱉고 있었다.
“왜 그때 저를 곧장 데리고 가지 않으셨습니까?”
노인의 손길은 어느새 항아리를 다시 빚고 있었다. 노인은 태연하게 말했다.
“그땐 망고나무가 아직 꽃을 피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말에 라마는 아무 대꾸도 할 수 없었다. 눈물이 미소와 뒤섞여 라마의 얼굴을 적시고 있었다.
노인의 이름은 사띠야였다. 라마는 사띠야 스승에게 항아리 빚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더불어 인생의 비밀과 깨달음의 신비까지도.
다음 날 이른 아침부터 사띠야 스승은 라마를 공방으로 불렀다. 사띠야는 항아리 만드는 법을 보여주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손수 흙을 이기기 시작했다. 흙은 차츰 찰진 밀가루 반죽이 되어가고 있었다.
사띠야 스승이 라마에게 물었다.
“라마야! 항아리가 뭔 줄 아느냐?”
라마가 말끝을 흐리며 대답했다.
“그야… 물이나 음식 같은 걸 담아두는….”
빤한 대답을 기대한 것이 아니었다는 듯 사띠야 스승은 라마의 흐릿한 대답을 뒤로 하고 말했다.
“항아리는 오대(五大)의 결정체지.”
흙을 치대며 잠시 뜸을 들이던 사띠야 스승이 말을 이었다.
“흙의 질과 물의 양 그리고 불과 바람의 세기가 항아리의 운명을 결정한단다.”
사띠야 스승은 어느새 항아리의 모양을 잡아가고 있었다. 라마는 스승의 솜씨와 의도에 따라 순식간에 흙 반죽이 항아리로 변한 모습이 마냥 신기하기만 했다. 사띠야 스승은 이런 라마를 따뜻하게 응시하며 말했다.
“사람들은 항아리의 겉모습만을 본단다. 그리고 거기에 무엇을 담을지를 생각하지. 하지만 중요한 건 항아리의 공간이란다. 이 공간이야말로 항아리의 영혼이지.”
라마는 항아리가 지수화풍공 즉 오대의 결정체란 스승의 말이 이해되었다.
사띠야 스승이 다시 말했다.
“사람들도 이와 같다. 사람들은 몸이라는 항아리에 마음이라는 내용물을 채우려 애쓰고 있지.”
라마가 긍정의 표시로 고개를 끄덕였다.
사띠야 스승이 물었다.
“라마야! 지금 너의 공간에는 무엇이 담겨있느냐?”
사띠야 스승은 라마가 대답하기도 전에 다시 말했다.
“마음이라고 부르는 생각과 감정 그리고 소위 영적인 지식이 무수히 담겨있겠지. 그리고 더 좋은 것을 담으려고 애쓰겠지.”
그리고는 또 물었다.
“그런데 라마야! 넌 생각해본 적이 있느냐? 정작 이 모든 걸 담고 있는 것이 뭔지를!”
“이 모든 걸 담고 있는 거라 하시면….”
“라마야! 내용물을 더 담거나 바꾸려 하지 말고 공간을 보아라. 단지 사람들로부터 성자로 칭송받기를 원한다면 내용물을 더 좋은 걸로 채우고 바꿔야겠지만, 신을 알고 참된 나를 알기를 원한다면 내용물에 대해서 완전히 잊어야 한다. 지금까지 너를 괴롭혀 왔던 것이 마음의 내용물들이 아니더냐? 바꾸려는 것은 어디에 있으며 바꾸려는 자는 또 어디에 있느냐?”
라마는 사띠야 스승의 말을 묵묵히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욕망하는 자와 그것을 억누르는 자는 똑같이 마음의 내용물일 뿐이다. 깨달은 성자가 되고자 하는 자와 죄인 취급하는 자 또한 다르지 않다.”
라마는 예전에 라즈니쉬 스승이 했던 성자의 삶에 대해서는 잊으라는 말이 생각났다. 거친 욕망과 싸우는 일은 끝냈지만, 그의 마음 깊숙한 곳에서는 수행자라는 아상과 깨달은 성자가 되려는 미묘한 노력이 아직 남아있었다. 그것은 은밀한 유혹과도 같아서 잘 보이지도 않았다. 거친 욕망이 보이는 적이었다면 이것은 보이지 않은 적이었다. 따라서 놓아버리기가 되레 쉽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아직 그것을 놓아버리고 싶은 마음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것을 놓아버리면 지금까지의 자신의 삶이 공중분해 되어버릴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그를 사띠야 스승은 뿌리부터 뒤흔들고 있었다.
“네가 공간을 이해했다면 항아리에 무엇이 담기든 상관하지 않을 게다. 심지어 항아리가 깨진다고 해도 말이다.”
라마는 갠지스강 강가에서 스승을 처음 만났을 때 ‘마음속에서 그 무엇이 오고 가더라도 내버려 두라’던 말씀이 가슴 깊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언젠가 항아리는 깨질 테고 그 속에 담긴 내용물도 세월에 따라 흩어지겠지. 하지만 항아리의 공간은 영원하단다. 네가 항아리 안의 공간과 밖의 공간이 같다는 걸 안다면 말이다. 항아리와 그 속에 담긴 내용물은 조건에 따라 생성되고 파괴될 뿐이다. 공간은 이것이 일어나는 영원한 기반이다. 너의 몸과 마음은 항아리와 거기에 담긴 내용물 같은 것이다. 너 자신을 몸과 마음에 동일시하지 않는다면 깨달은 성자가 되기 위한 모든 노력이 너와는 무관하다는 걸 알게 될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