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강언 Dec 02. 2021

인문학적 요가 수업

스프링롤과 산스끄리뜨 발음의 추억

산스끄리뜨 어문법 강좌 하려고 이 글을 쓰고 있는 건 아닙니다만, 조금 더 설명하겠습니다. 산스끄리뜨는 20세기 들어 히타이트 어가 발견되기 전까지 인도유럽어족 중 가장 오래된 언어의 지위를 누렸습니다. 게다가 문법적으로 가장 복잡하고 정교한 체계를 갖췄고, 음성학적으로도 가장 완전한 체계를 갖춘 언어로 평가받습니다. 문자로는 한글이 단연 으뜸이지만요(국뽕 아닙니다). 

먼저 음성학적 관점에서 살펴보자면, 산스끄리뜨 자음 체계는 발성 위치에 따라 후음, 구개음, 권설음, 치음, 순음으로 나눕니다. 그리고 발성 방식에 따라 파열음, 비음, 접근음, 마찰음, 무성음, 유성음, 대기음, 무기음으로 나누지요. 모음은 단모음과 장모음 그리고 복모음으로 구성되어 있고, 다 유성음에 속합니다. 기본 문자는 47자(33자의 자음과 14자의 모음)이며 다양한 조합으로 수많은 문자를 만든답니다. 문자를 익히다 보면 세종대왕께 감사하게 됩니다. 

물론 세상의 모든 문자에서 한자(漢字)는 논외입니다. 오죽하면 1949년 중국 전체 문맹률이 80%였고, 문화혁명(1966년) 직전인 1964년 청년 문맹률이 60%였겠습니까. 높은 문맹률을 낮추고자 개발된 게 지금의 간자체입니다. 문자든 문법이든 너무 어려우면 대중에게선 멀어지지요.  


표를 보면 데와나가리의 라틴화 표기와 우리말 표기를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라틴표기는 국제적 기준입니다만, 우리말 표기는 아직 공식 표기법이 확립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최대한 발음 규칙에 맞춰 표기했으니 참고 바랍니다. 이런 건 실제 발음을 들려주며 직강 해야 이해가 더 빠를 텐데 글로 설명하자니 운동화 신고 가려운 발가락을 끍는 느낌입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우리말에 없는 발음인 유성 대기음(gh, jh, ḍh, dh, bh)은 가독성을 높이고 우리 귀에 들리는 소리를 반영해서 실제 문장에서는 ㅎ 발음을 생략하고 표기한 점 양해 바랍니다. 발음이 다르다는 사실을 안다는 전제 하에 자세히 들으면 구분이 됩니다만, 그냥 들으면 구별 안 됩니다. 영어 처음 접할 때 v 발음이랑 b 발음이랑 듣고 구별 못 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 뇌에는 v 발음을 인식하는 회로가 없는데, 이는 모국어에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실제로 경험한 사례를 하나 말씀드리자면, 인도 수도는 델리지요. 구시가지랑 구분해서 뉴델리라고도 합니다. 제 인도인 친구에게 델리라고 했더니 델리가 아니라고 하더군요. 그러면 뭐냐고 하니까 델리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그래, 델리라고. 맞잖아!”라고 했더니 델리가 아니라 델리라고 하더군요. 여러분들도 이게 무슨 소린가 싶지요? 저도 한참을 그 친구와 실랑이를 했습니다. 

눈썰미가 좋은 분이라면 델리의 영어 표기를 아실 겁니다. Delhi라고 씁니다. 그 친구가 천천히 입모양을 보여주면서 발음하니까 h 발음이 들리더군요. 그래서 “아, 델히”라고 하니까 꼬렉뜨(correct, 인도인들이 맞다고 할 때 주로 쓰는 영어 표현입니다)라고 하더군요.  

권설음도 마찬가지로 표기 불가입니다. 영어 r 발음하듯이 혀를 말아서 따, 타, 다, 다, 나 하면 됩니다. 권설음 하니까 떠오르는 추억이 하나 있네요. 인도에서 살 때였습니다. 2년 좀 넘게 살았더랬지요. 인도의 중급 이상 레스토랑에 가면 대체로 인도 음식 외에 중국 음식도 몇 가지 취급합니다. 대표적인 음식이 스프링롤이랑 초면입니다. 스프링롤은 각종 채소를 밀전병에 말아서 튀긴 음식이고 초면은 채소에 간장 소스를 뿌려 볶은 국수입니다. 

메뉴판은 영어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스프링롤은 spring roll입니다. 이걸 보고 생각했습니다. '용수철 말이'라고? 이게 왜 용수철 말이지? 용수철이랑 아무 관련이 없어 보이는데… 먹으면 입 안에서 뭔가가 톡 터지려나? 다 먹을 때까지 아무것도 터지지는 않더군요. 의문을 안은 채로 카레 향을 벗어나고 싶을 때마다 한 번씩 사 먹었더랬습니다. 

이 의문이 풀린 건 몇 년이 지나섭니다. 홍콩에 갔을 때였지요. 길에서 지나가는 사람 붙잡고 채식 식당이 이 근처에 있냐고 하니까 마침 유명한 채식 식당이 있다고 알려주더군요. 거기서 메뉴판을 펼치니 반가운 음식이 눈에 띄었습니다. 다름 아닌 스프링롤이었지요. 인도와 달랐다면 메뉴판에 한자가 영어와 병기되어있었다는 점이었지요. spring roll 옆에 이렇게 쓰여 있더군요. 春捲(춘권). 

뭔가를 깨달았을 때의 감탄사와 함께 의문은 다소 허망하게 풀렸습니다. 스프링롤은 춘권을 그냥 그대로 영어로 풀어쓴 거더군요. 스프링은 용수철이 아니라 봄이었습니다. 말다는 뜻의 권(捲)을 롤로 번역해서 봄말이였던 겁니다. 아, 그런데 의문이 완전히 풀린 게 아니었나 봅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걸 왜 봄말이라고 했을까라는 의문이 드네요. 혹시 아시는 분 안 계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