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라마나, 집 떠나면 개고생
아힝사에 얽힌 이야기를 조금 더 하자면, 인도의 채식주의는 여기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고통을 느끼는 존재를 죽여서 먹는 게 윤리적으로 타당하지 않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기원전 6세기경 붓다를 따르던 수행승들이 여기에 대해 논쟁한 적이 있지요. 당시 브라흐만교에 반대해 카스트의 굴레를 집어던지고 출가해서 새로운 사상을 주창하며 수행에 전념하던 사람들을 슈라마나(śramaṇa)라고 불렀습니다. 불교 한역본에서는 사문(沙門)으로 음역해서 출가 사문이라고들 하지요. 마하위라와 붓다는 당대 최고의 슈라마나였답니다. 슈라마나는 ‘고생하는 사람’ 즉, 고행자를 뜻합니다. √śram(피로해지다/고생하다)에서 온 말입니다. 노동을 뜻하는 말이기도 하지요. 예나 지금이나 집 떠나면 개고생인가 봅니다.
붓다는 따르던 남자 수행승들을 빆슈(bhikṣu)라고 불렀습니다. 음역한 비구(比丘)의 원어입니다. 거지라는 뜻이지요. √bhikṣ(빆쉬; 구걸하다)에서 온 말입니다. 흔히 아는 그런 거지는 아니니까 걸승(乞僧)으로 의역합니다. 여자 수행승들은 빆슈니(bhikṣuṇī) 즉, 비구니(比丘尼)라고 하지요. 호칭에서도 드러나듯이 걸식하며 생활했음을 알 수 있겠지요?
여기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음식 제공자가 고기를 주면 먹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로 설전이 오갑니다. ‘수행자가 고기를 먹어선 안 되니까 받지도 말고 먹지도 말아야 한다.’ 파와 ‘가릴 처지가 아니니까 그냥 주는 대로 먹자.’ 파로 나뉩니다. 쉽게 결론이 나지 않겠지요? 이런 유의 논쟁은 결론이 나지 않는 법이니까요. 이에 붓다에게 보고가 올라갑니다. 대놓고 먹으라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먹지 말라고 할 수도 없는 진퇴양난에서 고심하던 붓다는 결론을 이렇게 내립니다. “자신이 도축 현장을 직접 보거나 자신을 위해 도축했다고 들었거나 그런 정황이 있는 고기는 먹지 말라.”
아주 현답(賢答)이 아닐 수 없습니다. 걸식하는 상황을 고려해서 주는 대로 먹되 최소한의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한 겁니다. 수행자가 살생에 연루되지 않으면서 골라 먹을 수 있는 여지도 차단하는 거지요. 기본적으로 수행승들이 존경받는 사회 분위기에서 공공연히 수행승이 취향을 밝히거나 은근히 까탈을 부린다면 음식 제공자로선 여간 골치 아픈 일이 아닐 수 없지요. 그날그날 일상의 식단에서 한주먹 떼어주면 감사히 받아서 먹고 열심히 수행할 수 있어야 진정 수행자겠지요. 그래야 음식 제공자도 속 편하지 않겠습니까?
불교에서 음식을 제공받는 걸 삔다빠따(piṇḍapāta)라고 합니다. 삔다는 √piṇḍ(뭉쳐서 덩어리 만들다)에 온 말로, 손으로 주먹밥 만들 듯이 조물조물 뭉쳐서 만든 ‘덩어리’를 뜻하고 빠따는 √pat(떨어지다)에서 온 말로 ‘떨어짐’을 뜻하는 말입니다. 문자적으로 ‘한 덩어리 떨굼’이라는 말인데, 수행승이 탁발 나가면 발우에 음식 한 덩어리 뭉쳐서 담아주기에 생긴 말이지요. 위에서 “한주먹(piṇḍa) 떼어주면(pāta)”이라고 쓴 이유입니다. 발우(鉢盂)에 대해서도 한마디 하자면, 사발을 뜻하는 빠뜨라(pātra)의 음역인 발다라(鉢多羅)의 발(鉢)과 사발을 뜻하는 한자어 우(盂)가 기묘하게 합쳐진 말입니다. 불경 한역본(漢譯本)엔 이런 기묘한 번역어가 많답니다.
더군다나 재가 신도가 아힝사를 실천해야 할 승려를 위해 의도적으로 도축해서 고기를 대접하고 그걸 먹는다면 본의 아니게 살생을 장려한 꼴이 됩니다. 명망이 있는 수행승을 초대해서 법문이나 덕담을 요청하는 일이 드물지 않은 사회 환경에서 접대에 대한 명확한 기준선 설정은 수행자의 본분도 최대한 지키고, 재가 신도의 번거로움도 해소하고 더불어 살생의 업에서 조금이나마 더 자유로울 수 있도록 해준 겁니다.
그날 이후로 이렇게 되었습니다. “저 초대해놓고 고기 주시면 안 먹습니다. 하지만 제가 우연히 탁발하러 갔는데, 마침 귀댁에서 이미 닭고기 카레를 했고 그걸 주신다면 먹겠습니다.”
*추신: 사찰에 정착해서 생활하는 수행승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다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하지만 이런 중재안을 끝내 받아들일 수 없었던 수행자들도 있었습니다. 대표적 인물이 데와닷따(devadatta)입니다. 한역본에서 제바달다(提婆達多)라고 음역 되었습니다. 붓다의 사촌 동생이자 유력한 수행자입니다만 무슨 이유에선지 불경에는 빌런으로 나오지요. 여전히 고행자 정신이 충만했던 데와닷따는 엄격한 수행 생활을 위해 채식을 비롯한 몇몇 가지를 계율로 확립하자는 주장이 관철되지 않자 자신의 추종자들을 이끌고 붓다를 떠나 새로운 교단을 세우지요. 계율에 충실하고자 했던 데와닷따가 붓다를 살해하려고 몇 차례 시도했다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 억설로 보입니다. 아마도 교단 이탈 사건을 벌인 데 대한 반감이 나중에 그런 캐릭터로 그리진 게 아닌가 추측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