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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강언 Aug 30. 2023

인문학적 요가수업

#진실하고 또 진실하라

오계의 두 번째는 사띠야(satya)입니다. 간디의 사띠야 아그라하 운동에서 한번 설명했지요. 진실을 뜻합니다. √as(있다)의 현재 분사 sat(있는/존재하는)에서 온 말입니다. 존재하는 거니까 진짜인 거지요. 그래서 참됨, 진실, 진리가 되었습니다. 여기선 정직하라는 의미입니다. 달리 말하면 ‘거짓말하지 말라’가 되겠지요. 그래서 불망어(不妄語)라고 번역하기도 한답니다. 거짓말로 남을 속여 이익을 취하거나 이간질해서 분쟁을 일으키면 그 화가 결국엔 자신에게 돌아오겠지요. 자기 잘못을 덮으려고 거짓말을 하면 그 순간은 모면해도 언제 탄로가 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마음 한쪽에 남게 됩니다. 자신을 돋보이게 하려고 허위 학력이나 경력을 기재하고 그것으로 부당하게 사회적 지위를 획득하고 부를 축적하면 내심 부끄럽겠지요. 그런데 이건 부끄러움으로 끝날 문제가 아닙니다. 다른 사람의 정당한 노력을 침해하는 부당하고 불공정한 행위니까요. 또한 자신은 별생각 없이 장난으로 농담으로 던진 말이 다른 사람에게 큰 상처를 남기기도 하지요. 허물이 있다면 거짓으로 덮으려 하지 말고, 진실의 힘을 믿고 있는 그대로 마주할 용기가 필요합니다. 


세 번째는 아스떼야(asteya)입니다. √stai(스따이; 훔치다)에서 왔지요. 도둑질을 뜻하는 스떼야(steya)에 부정 접두어 a를 붙여 ‘도둑질 안 하기’가 되었습니다. 영어의 steal이 생각나지 않나요? 불투도(不偸盜)로 번역합니다. 투도(偸盜)는 도둑질이란 뜻입니다. 일상에서 잘 쓰지 않는 말이라 낯설지만 이미 불교 오계에도 있는 말이고 번역의 결도 맞추려다 보니 이리되었다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부를 축적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 도둑질입니다. 인류 초기의 전쟁이 옆 마을 이웃 부족 약탈에서 비롯되었지요. 이웃 부족의 땅이 비옥하고 잘 산다 싶으면 단체로 몰려가서 대놓고 힘으로 빼앗습니다. 약탈 전쟁은 정복 전쟁으로 비화하여 결국 국가가 형성됩니다. 동물의 세계에서도 다른 동물이 기껏 공들여 사냥한 먹이를 가로채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미디어가 발달한 오늘날에는 지적 재산의 표절도 또 다른 차원의 도둑질입니다. 타인의 노력을 날로 먹으려는 심보에서 비롯되었으니까요. 

도둑질의 문제는 너무나 뿌리 깊어서 주요 우빠니샤드 중 하나로 꼽히는 이샤 우빠니샤드(īśopaṇiṣad)의 서두에도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물론 도둑질을 직접 언급한 건 아닙니다. 아무튼 이걸로 아스떼야를 마무리하겠습니다.


포기하므로 즐거워하고누군가의 어떤 재물도 탐하지 말라.

tena tyaktena bhuñjīthā mā gṛdhaḥ kasya sviddhanam 

떼나 띠약떼나 분지타 마 그리다하 까시야 스윗다남


네 번째는 브라흐마짜랴(brahmacarya)입니다. 브라흐마를 뜻하는 한자 범(梵)과 √car(짜르; 가다/걷다)에서 온 carya(짜랴)의 의역인 행(行)을 합쳐 범행(梵行)으로 번역됩니다. 어감이 좀 그렇긴 해도 사전에 등재된 공식 번역어 중 하나입니다. 불사음(不邪婬)으로 의역되지요. 원래 인도의 인생 네 주기에서 첫 번째 주기인데, 부모를 떠나 스승의 집(구루꿀라; gurukula)에 기거하며 학습하는 시기를 말합니다. 인생 네 주기, 이걸 아슈라마(āśrama)라고 하는데 이런 건 아무래도 브라흐만 계급이 만들었겠지요. 따라서 브라흐만 사제가 되기 위한 모든 소양을 몸소 배우고 익히는 기간이라 브라흐마짜랴라고 한 겁니다. 이 시기의 문하생을 브라흐마짜린(brahmacarin)이라고 부르지요. 짜린은 행하는 사람을 뜻합니다. 기억나시나요? 접미어 인(in; 영어 아닙니다)이 붙으면 주로 행위주 명사로 사용된다고 했었지요. ‘브라흐마 행자’ 정도 되겠지요. 그럼 범행자가 되나요? 어감이 더 난감해지네요.

소년기에서 청소년기를 거쳐 성인으로 성장하기까지 욕망(이 욕망이 어떤 욕망을 말하는 건지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을 잘 절제하면서 학업에 매진해야 합니다. 당연히 이성 교제는 안 되겠지요. 우리도 옛날에 “어디서 학생이 연애질이야.” 하던 때가 있었지요. 그리 먼 옛날도 아닙니다. 이게 계율에도 그대로 적용되어서 범행이라고 쓰고 불사음이라고 읽게 된 겁니다. 불사음이란 혼외 관계를 맺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인도 전통에서 브라흐만 사제는 반드시 결혼해서 자식을 낳아 가계를 계승해야 합니다. 아들만 계승할 수 있습니다. 지독한 남아 선호의 원조 격이지요. 게다가 브라흐만 계급은 최고의 기득권자들인데 출가할 리가 없겠지요? 그리고 웨다(veda)의 교리도 출가를 허용하지 않습니다. 한때 유행했던 “그럼, 소는 누가 키우냐?” 이런 상황인 거지요. 

하나 브라흐마짜랴가 출가승에게 적용되면 불사음이 아니라 불음(不婬)이 됩니다. 아예 안 된다는 얘기지요. 출가는 안티 브라흐만을 외치며 거리로 뛰쳐나온(데모하러 나온 걸로 오해하지는 마시고요) 신흥 사상가들인 슈라마나로부터 비롯된 수행 문화입니다. 이렇게 출가한 수행자 집단이 교단으로 자리 잡자 교단의 질서유지를 위해 계율을 확립하게 되는데, 그중 뭐니 뭐니 해도 성이 가장 큰 사회 문제가 될 게 뻔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출가승은 불음인 걸로 결정됩니다. 이후 출가승들을 위한 많은 계율이 생겨납니다. 참고로, 불교 율장에 보면 남성 출가승이 지켜야 할 계율이 250개나 됩니다. 여성 출가승은 348개나 되고요. 


마지막이 아빠리그라하(aparigraha)입니다. √gṛh(꽉 붙잡다)에서 왔습니다. 사띠야아그라하에서 봤지요? 여기에 ‘완전히’를 뜻하는 접두어 pari(빠리)를 더해 완전히 꽉 붙잡았으니 소유(parigraha)를 뜻하는 말이 되었습니다. 거기에 부정 접두어 a를 붙이니 무소유가 되었습니다. “이건 내 꺼야.”라고 하는 순간 집착이 생깁니다. 무소유는 이런 여지조차 주지 않겠다는 선언인 셈이지요. 이 극단에 이른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이나교 수행승 중에 디감바라(digambara)라고 부르는 나체 수행승들이지요. “하늘을 이불 삼아…”가 아니라 ‘하늘을 옷 삼은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난 옷도 가지지 않겠어!” 우리 너무 극단적으로 가진 말아요. 

우리는 옆집이 무엇을 소유했는지, 친구가 무엇을 소유했는지 끊임없이 살피며 자신과 비교함으로 불행을 만듭니다. 이웃이나 친구가 소유한 뭔가를 확인한 후 불행감을 느꼈다면 이건 불필요한 불행이겠지요? 이걸 가지면 행복할 거라고 부추기는 자본주의 행복론을 부지불식간에 믿으며 마음이 온통 소유하는 데 팔려 탐심을 키우면 불만족이 커질 뿐입니다. 그저 깊이 호흡하면서 조금 더 존재하므로 행복해질 수 있다면 한 번 해볼 만하지 않을까요? 

이 존재함의 기술이 바로 바와나(bhāvana)이고 √bhū(있다/존재하다)에서 온 말로 문자적으로 존재함을 뜻하며 명상의 원어 중 하나랍니다. 요가의 핵심이지요. 요즘 좀 대중화한 명상 중에 자애명상이라고 있지요? 처음 듣는다고요? “내가 행복하기를, 괴로움에서 벗어나기를. 당신이 행복하기를, 괴로움에서 벗어나기를, 모든 존재가 행복하기를, 괴로움에서 벗어나기를.” 이런 식으로 하는 명상인데…. 아무튼 좋습니다. 자애명상은 metta bhāvana의 번역어라는 말씀을 드리려고요. 멧따(metta)는 빨리(pāli)어로 친밀함, 우호감, 친절함 등을 뜻합니다. 산스끄리뜨 마이뜨리(maitrī)에 해당합니다. 앞에서 만나면 친해지고 어쩌고 했었는데…. 이제 기억나신다고요? 맞습니다. 네 가지 한량없는 마음 즉, 사무량심의 첫 번째였지요.

아 참, 불교 용어 중에 열반, 반열반이라고 들어보셨나요? 반열반이 반만 열반한 걸로 아는 분들이 좀 있어서…. 열반은 ‘불어서 꺼짐’을 뜻하는 니르와나(nirvāṇa)의 음역입니다. 빨리(pāli)로 닙바나(nibbana)라고 하지요. 반열반(般涅槃)에서 반은 절반(折半)이 아니라 pari의 음역이랍니다. 따라서 반열반은 완전한 열반을 뜻합니다. 

이렇게 다섯 가지 위대한 서약이 끝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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