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찌 유감

-게찌란 재수없는 소리를 하다, 트집 잡다는 뜻이다

by 가야


기자로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특종을 했을 때의 짜릿함, 프레스센터에서 상패를 받아들 때의 희열, 거친 사건현장에서 트렌치코트를 휘날리며 움직이는 모습. 많이 비뚤어질 경우 출입처에서 좋은 대접을 받으며 무리한 요구를하는 '갑질' 역시 기자의 모습 중 하나일지도 모르겠다. 비뚤어진 경우를 제외하고 이같은 한달에 한 번, 어쩌면 일 년에 한 번 있을지도 모르는 감정이 기자의 일반적인 삶을 말하긴 어렵다고 생각한다. 좀 더 일상적인 기자의 삶을 이야기 하면 '게찌'에 시달리는 모습을 꼽고 싶다.

게찌, 일반인에게는 다소 생소한 단어다. 언론계의 은어이기 때문에 거의 쓰이지 않는 단어임에는 틀림없다. 게찌란 일본어로 '인색함', '비열함' 등을 뜻하고 보통 '게찌붙다'라고 쓰이면서 '재수없는 소리를 하다', '트집 잡다'는 뜻이다. 언론계에서는 기사를 보도하기 전 후에 취재원으로부터 트집 잡히는 것을 말한다. 말 그대로 트집이다. 기사가 명백한 오보일 경우에는 언론사 스스로가 정정을 하거나 언론중재위 또는 법원을 통해 패소하게 된다. 반면에 게찌는 취재원이 일방적으로 오보라고 '주장'하면서 작게는 항의부터 크게는 욕설, 겁박 등을 한다.

실제로 기자들은 많으면 하루에도 수 십차례 게찌가 붙는다. 아침 또는 밤 늦게 모르는 번호로 걸려오는 전화나 문자는 90% 게찌라고 보면 된다. 게찌붙는 시간이 밤 또는 아침인 이유는 따로 있다. 일반인이라면 밤에 인터넷으로 보도된 기사를 보고 곧 바로 기자에게 전화를 한다. 때로는 기자가 연락처도 알려주지 않았는데 귀신같이 어쩌면 기자보다 더 빠르게 휴대전화 연락처를 알아내 전화를 한다. 아침에 걸려오는 항의전화는 보통 공공기관이나 기업이 대부분이다. 아침에 신문을 보고 전화하는 것이다.

설명이 길었다. 이제부터 기억나는 게찌 붙었던 사례를 이야기 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게찌는 '진격의 군인'이었다. 진격의 군인은 그 사람 이름조차 부르기 싫어 당시 유행하던 일본 애니메이션을 착안해 붙인 애칭(?)이다. 그는 모 퇴역군인 단체의 지부 회장이었다. 과거 군 복무를 했을 때 최종계급은 소장이었다. 소장(투스타)이라니, 내가 현역병사 시절에 만났다면 거대한 산처럼 어마어마한 위압감을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단순한 취재원에 불과했다.

진격의 군인은 지부 회장에 있으면서 공금을 사적으로 사용한 의혹이 있었다. 물밑 작업을 통해 단체 내부고발자에게 진격의 군인 공금사용 내역과 법인카드 내역, 징계건의서 등을 받았다. 반론 취재도 잊지 않았다. 당시 나는 진격의 군인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해명을 요구했고, 진격의 군인은 철저히 부인했다. 전화를 끊기 전에 "확인하지 않고 보도하면 큰 일을 치르게 될 것이야, 으하하하하"라는 말도 들었다. "음하하하 그렇습니까"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진격의 군인 공금 횡령 의혹이라는 제목으로 기사가 보도됐다. 이미 내부 자료를 확보했기 때문에 팩트는 정확했다.

다음날 상상을 초월한 게찌가 붙었다. 진격의 군인은 아침에 내게 전화해 "회사에 꼼짝말고 기다려라!"라고 외쳤다. "취재하러 나가야 합니다"라고 내가 말하자 "멱 따버리기 전에 가만 있어라"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에라이, 한 번 기다려보자. 정확히 15분 뒤 천둥소리인지 계절이 바뀔 때 들려오는 소리인지 문을 박차며 고함을 지르는 진격의 군인을 볼 수 있었다. 70대 노인이건만 정정하신게 분명하다. 얼마나 화가 났는 지 축 처진 볼살이 파르르 흔들렸고 얼굴색은 대낮부터 약주를 하셨는지 붉었다.

진격의 군인에게 기사보도한 경위를 설명했다. 내부자로부터 제출받은 문건도 보여줬다. 하지만 진격의 군인은 인정하지 않았다. 편집국을 들쑤시는 것도 모자라 사장에게도 찾아갔다. 미리 첩보를 들은 경찰서 정보관 2명이 진격의 군인을 말리기 위해 찾아오기까지 했다. 회담 결렬. 곧바로 언론중재위원회 2번과 7000만원 손해배상 민사소송으로 넘어갔다. 1년 동안 언론중재위와 법원에 불려다니면서 싸웠다. 결론은 여지없이 모두 진격의 군인이 패소했다. 게다가 진격의 군인은 기사보도로 인해 공금 사적 유용 혐의로 벌금형에 처해졌다.

최근에는 여행 다단계 회원들로부터 심하게 게찌에 시달렸다. 여행 다단계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자면 하부회원을 유치하면 수당을 받고 저렴하기 해외여행을 갈 수 있다는 전형적인 피라미드 방식이다. 하지만 국내법 상 다단계 영업을 하려면 공제조합에 가입하고 수당과 가입비 등의 요건을 의무적으로 지켜야 한다. 해당 여행 다단계 업체는 애초에 공제조합에 가입도 하지 않은 불법 업체였다. 국내에서 벌어진 영업활동은 불법영업에 해당되며 그로부터 발생한 수익은 부당 이득에 해당된다.

여행 다단계의 문제를 보도한 직후 그날 밤, 동시간대 최대 게찌를 받아봤다. 전화만 10여건, 문자 14건 등이 같은시간에 걸려왔다. 아마 내 전화번호를 귀신같이 알아내 다단계 회원 그룹에 뿌린 것 같았다. 자칭 변호사라는 다단계 회원은 합법성에 대해 설명했다. 내가 국내법을 설명하자 답변을 하지 않고 내게 "멍청하게 기사를 썼다"라고 했다. 전화상이더라도 모욕죄에 해당될 소지가 있는 부분이다. 내가 주의를 요구했지만 아랑곳 하지 않고 자칭 변호사는 다시 '멍청하다'는 것을 강조했다. 더 이상 들어볼 필요가 없었다.

또 다른 다단계 회원은 어떻게 내 페이스북을 알아냈는지 기사와 전혀 상관이 없는, 혼자서 술마시면서 공보가주인지 공부가주인지 만담하는, 글에 "오보를 내 피해가 발생한다"는 식으로 댓글을 남겼다. 정확하게 확인해서 쓴 기사인데 오보라고 폄하하는 것 역시 명예훼손 소지가 있어서 경고했다. 하지만 그 다단계 회원은 "네 기사 때문에 우리 업체가 명예훼손 당한다"는 피장파장의 오류를 범하기 시작했다. 내가 친절하게 아마 20여명에게 말했던 여행 다단계의 불법적인 면을 설명했다. 바둑으로 치면 대마가 잡히고, 명제로 치면 전제가 깨졌다는 말과 함께. 그러더니 그는 메일로 나를 혼쭐 내주겠다면서 현재까지 아무 소식이 없다.

기억나는 게찌를 더 말하자면 자신의 학교에서 학생이 체육코치에게 구타를 당했는데 이를 방관한 교감선생은 목소리 데시빌이 참 높았다. '교육자면 자신의 명예보다 폭력 피해를 당한 학생들을 한 번 더 생각하라'고 말하니 잠잠해졌다. 자신이 돌보는 유치원생을 체벌했던 유치원 교사. 그 교사는 내가 아무 말도 안했는데 당연스럽게 '정정보도'가 왜 안나오냐고 따졌다. 심지어 당시 데스크 2명에게 내 욕을 해댔다. 도심 한복판에서 카지노바를 차렸던 업주. 보도가 나간 당일 법적대응을 할 것이라고 날 겁박했지만, 일주일 뒤 경찰의 단속을 맞고 폐업했다.

그 밖에도 수많은 게찌가 있었지만 그걸 다 적으면 너무 구구절절하다랄까. 기자들끼리 술을 마시면 때때로 서로 강하게 붙었던 게찌 배틀을 벌인다. 내가 들었던 최고의 게찌는 K선배였다. 역시 퇴역군인 단체에 대해 쓴 기사인데 다음날 취재원이 K선배를 찾아와 자신의 눈깔(의안)을 뽑아 던졌단다.

게찌는 비판적인 기사를 주로 쓰는 기자에게 있어 숙명적이지만, 붙을 때 마다 항상 달갑지 않다. 자신이 변태가 아닌 이상 즐기는 기자는 없을 것이다.

최근에는 게찌 양상이 변하기 시작했다. 사실 앞서 언급했던 게찌 사례는 충분히 이해할 법 하다. 본인의 잘못이지만 기사로 인해 징계 또는 처벌을 받거나 금전적인 손실이 있었기 때문이다. 요즘은 비판적인 기사가 아니라 관점을 나타내는 기사에도 게찌가 붙는다. 자신의 관점과 다르면 모두 '오보'고 기자를 '기레기'로 몰아간다. 흔들리지 않는 절대적인 팩트가 있고, 관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는 팩트가 있다. 자신과 다른 관점이 있다는 정도로만 생각해주면 되는데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틀렸다'고 주장하며 기레기로 몰아가는 경우가 있다. 이럴때는 사실 어떻게 대응 해야할지도 모른다. 그저 무대응만이 답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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