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스키 상념

-어떤 위스키를 제일 좋아하세요?

by 가야


“어떤 위스키를 제일 좋아하세요?”


질문을 받은 사람 절반 이상은 ‘발렌타인 30년산’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간혹 ‘조니워커 블루’라고 대답한 사람도 있었다. 두 가지의 술을 제외한 다른 위스키를 말했던 사람은 거의 없었다.


왜 발렌타인과 조니워커라고 물었더니 돌아오는 답변은 비슷했다. 향이 깊다 또는 목넘김이 좋다. 좋은 위스키의 향이 깊은 이유는 숙성 년도가 높을 수록 바늘과 실처럼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사실이기 때문에 쉽게 납득이 간다. 하지만 목넘김이 좋은 술의 기준이라고 위스키 마니아에게 설명을 한다면 상당수는 머리속에 ‘물음표’를 그릴 것이고, 위스키 본고장인 스코틀랜드에서는 밤새도록 엎치락 뒤치락 설전을 벌일지도 모른다.


사실 발렌타인과 조니워커가 위스키의 본 고장인 스카치(스코틀랜드) 위스키의 대표성을 띈다고 말하긴 어렵다. 발렌타인과 조니워커는 스카치 위스키 중 블렌디드에 해당한다. 블렌디드 위스키는 보리를 증류해 만든 싱글몰트 위스키와 옥수수 또는 호밀을 증류한 그레인 위스키의 혼합이다. 블렌디드 위스키는 다른 위스키보다 상대적으로 부드럽고 가격이 저렴한 것이 특징이다. 한국에서는 발렌타인을 위시한 블렌디드 위스키가 ‘말아먹기 좋다’는 이유로 유독 선호받지만, 다양한 위스키를 인정하지 않는 술 문화이기도 하다.


최근 싱글몰트 위스키 전문점에 취재를 다녀오면서 20여 종류의 싱글몰트 위스키를 원없이 마셨다. 처음 싱글몰트를 접했을 때 신세계가 펼쳐졌다. 위스키마다 독특한 향을 가지고 있었다. 한국으로 치면 지역 가문별 전통소주와 가깝다. 마시는 방법도 달랐다. 바텐더의 말을 빌리자면 싱글몰트 위스키를 얼음과 함께 먹는 ‘온더락’으로 마신다면 스코클랜드 사람들은 눈에 띄게 불편해 할 것이고, 맥주에 섞는다면 아무리 신사적인 스코틀랜드 인이더라도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버릴 것이라고 한다.


그 중 매력적이었던 싱글몰트 위스키는 라가불린 16년 산이었다. 게일어로 ‘방앗간이 있는 분지’를 뜻하는 이 술은 해풍(海風)을 맞은 오크통에서 숙성되면서 강한 ‘바다향’을 내는 것이 특징이다. 라가불린은 세계적으로 위스키 계의 왕자로 꼽히지만 한국에서는 구하기조차 어려웠다. 서울 시내 주류백화점을 찾아다녔지만 “손님들이 폭탄주로 만들어 먹기 어려워 들이질 않는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라가불린 뿐만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명성을 날리는 싱글몰트 위스키인 라프로익, 발베니, 달위니, 더 글렌리벳 등도 한국에서는 목넘김이라는 획일적인 기준으로 평가절하되고 있었다.


근래 있었던 술 자리에서 만났던 L은 내게 좋은 술이 있다며 위스키 한 병을 꺼내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역시나 발렌타인. L은 발렌타인을 가열차게 맥주와 섞어버린 뒤 원샷을 하고 “술은 이렇게 먹는거야”라고 말했다. 확실히 목넘김은 부드러웠지만 어딘가 입맛이 씁슬했다. 위스키의 향을 느낄 기회는 없었다. 목넘김은 선호도의 기준이 될 수 있어도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도 목넘김이라는 획일성 아래에 다양한 가치가 실종되는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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