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림동 곡성(哭聲)

-4월의 어느 맑은 아침이었다

by 가야


4월의 어느 맑은 아침 서울 신림동에 한 여성의 울음소리가 퍼져 갔다. 처절했고 절망감이 짙은 곡성(哭聲)이었다. 30살 전후로 보이는 여성은 골목길에 주저앉아 같은 말만 되풀이하고 있었다.


“엄마 죄송해요, 아빠 죄송해요.”


다른 말도 했지만 울음에 묻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여성의 부모는 굳은 표정으로 말없이 가재도구를 하나둘씩 차에 싣고 있었다. 무슨 일일까. 골목길 한쪽에 버려진 공무원 수험서가 울음의 사연을 짐작게 했다. 공무원 시험결과가 발표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날이었다.


5월의 어느날 밤에는 결이 다른 울음소리를 들었다. 좌절이나 절망과는 다른 애수 어린 것이었다. 서로의 손을 맞잡고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던 젊은 남녀는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다. 수험생활에 지친 몸과 마음을 서로에게 기대며 의지했지만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하는 현실 앞에서 마냥 사랑을 키워가기엔 역부족인 모양이었다. 여성은 “공부에 집중하기 위해 헤어지자”고 말했고 남성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따금 시험에 합격해 터져나오는 기쁨으로 가득찬 울음소리도 있다. 오랜 노력 끝에 얻은 결실 앞의 울음은 웃음보다 듣는 이의 마음을 더욱 흔든다. 다만 좌절과 절망 어린 눈물에 비해 턱없이 적다.


신림동에서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있으면 가지각색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다. 조선 후기 실학자 연암 박지원은 저서 ‘열하일기’에서 ‘호곡장’(好哭場·울기 좋은 곳)이라는 표현을 사용해 통곡은 인간의 감정을 드러낸다고 말했다. 연암의 말이 맞다면 신림동의 울음은 청춘들의 희로애락을 모두 담아내는 셈이다.


올해 청년실업률이 11.3%에 달한다. 체감 청년실업률은 20%를 넘는다고도 한다. 취업 절벽 앞에서 25만7000여명의 청년들이 공무원 시험에 매달리고 있다. 성인남녀의 절반 정도가 공무원 시험준비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설문조사가 나오기도 했다. ‘헬조선’에서 살아남기를 꿈꾸는, 또 보다 안정된 삶을 추구하는 공시족에게 신림동은 거쳐갈 수밖에 없는 ‘청춘의 대합실’이다. 그들은 대합실에서 언제 올지 모르지만 자신의 미래를 이끌어 줄 버스를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버스에는 자리가 너무 적다. 서울시 공무원 180명을 뽑기 위해 다음달 치러지는 시험에 8754명이 몰려 48.6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공무원만 바늘 구멍일까. 경쟁률이 31대 1이 넘는 취업관문도 마찬가지다.


극심한 진통 끝에 새로운 대통령을 맞았다. 좀 더 나은 내일에 대한 약속이 넘쳐나고 그것이 꼭 실현되기를 바라는 염원 또한 크다. 신림동 공시족들의 이목은 문재인 대통령의 공공부문 일자리 81만개 창출 공약에 쏠린다. 기대는 크지만 회의적인 시각도 적지 않다.


신림동의 한 공시족은 “81만개 일자리 중에서 안정적인 양질의 일자리는 몇개나 있을까”라며 “일자리 공약이 수험생과 취준생의 마음을 유혹하는 미끼만 아니면 좋겠다”고 바랐다.


신림동의 울음에 좌절과 절망보다는 행복과 기쁨이 더 많이 담기는 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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