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마찐의 '우리들'을 읽고
우주의 크기를 말할 때 '관측 가능한 우주'의 크기라고 말한다. 우주의 나이가 138억 년이므로 관측 가능한 우주는 사방으로 138광년이라고 얘기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관측 가능하지도 않은 그 우주 밖은 어떠할까? 여러 가지 가설들이 있지만 관측이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알 수 없다. 이처럼 우리는 무한한 우주에서도 유한한 테두리 안의 지식을 추구한다. 물론 그 안의 것도 아직 모르는 것이 많다.
예브게니 자마찐의 '우리들'은 조지 오웰의 '1984'과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에 영향을 많이 준 작품으로 알려져 있고 '우리들', '1984', '멋진 신세계'이 세 작품을 3대 디스토피아 작품이라고 한다. 3대 디스토피아 작품으로 선정한 이유는 모르지만 '우리들'을 읽고 보니 '1984'가 영향을 많이 받은 것은 느껴졌다. 그것도 아주 많이. '우리들'은 독재자 '은혜로운 분'과 보안 요원이라는 통제그룹이 있고 그 아래 개인이 말살되는 사회를 그렸다. '1984'의 구도는 '우리들'과 많이 흡사했고 거의 비슷했다.
'우리들'에서 나에게 다가온 단어는 '유한'과 '무한'였다. 그리고 '유한'과 '무한'의 큰 차이점은 '마지막' 존재 유무일 것이다.
“어리석어요. 왜냐하면 혁명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에요. 왜냐하면 우리의 - 당신이 말하는 우리가 아니고 나의 우리 - 혁명이 마지막 혁명이었기 때문이에요. 그러니까 그 이후에는 어떤 혁명도 있을 수 없어요. 그건 누구나 다 아는 일이죠......”
조롱하는 듯한 날카로운 삼각형의 눈썹.
“사랑스러운 분! 당신은 수학자죠. 아니, 그 이상이죠. 철학자며 수학자예요. 그러면 제게 마지막 숫자를 불러보세요.”
“그게 무슨 얘기죠? 나...... 나는 이해를 못 하겠어요. 마지막이라니 그게 어떤 숫자죠?”
“음. 마지막의, 가장 높은, 가장 큰 숫자 말이에요.”
“그렇지만 I, 그건 말이 안 돼요. 숫자란 무한한 거예요. 도대체 어떤 마지막 수를 원하는 겁니까?”
“당신은 그럼 도대체 어떤 마지막 혁명을 원하는 거죠? 마지막이란 없어요. 혁명이란 무한한 거예요. 마지막 혁명이란 어린아이들을 위한 얘기죠. 아이들은 무한성에 겁을 집어먹죠. 따라서 그 애들이 밤에 편히 자도록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p.220-221)
D는 마지막 혁명이라고 하지만 I는 숫자에 빗대어 마지막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허구적인 것인지 밝혀준다. 역사는 유구히 흘러가기에 마지막이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혁명에도 마지막이 없다는 I의 말이 옳다. 독재국가인 '단일한 제국'이 일으켰던 혁명이 마지막 혁명이라면 역사는 유한하다는 의미가 된다. 그래서 '단일한 제국'은 무한을 통제한다. 그리고 유한성 안에서 오만해진다. 급기야 세뇌당한 주민은 무한이 없음을 증명했다고 선언한다.
"중요한 것은 모든 사람들이 나의 발견을 인지해야 하는 거죠. 당신에게 처음으로 말해 주는 겁니다. 나는 무한이란 없다는 것을 계산해 냈어요!" (p.290)
통제를 위해 유한한 울타리에 가두는 것은 소설 속 이야기만은 아니었다. 아이들이 커서 내 울타리 밖에 갈 수 있음에도 여전히 통제하고 울타리 밖 세상은 위험한다고 이야기하는 것과 비슷하다. 처음엔 가능해 보일 수 있으나 결국 울타리는 와해된다. 유한한 내가 무한을 유한한 울타리에 가두는 것은 불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