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을 바라보며

한 해 동안 책장이 품은 이야기

by 소원책담


아르헨티나 국립도서관장을 지낸 알베르토 망구엘의 『서재를 떠나보내며』는, 15년간 살던 프랑스를 떠나 캐나다로 이주하며 자신의 개인 도서관을 정리하는 과정에서의 감회를 담은 에세이입니다. 3만 5천 권에 달하는 장서를 하나하나 박스에 담으며, 비어 가는 책장과 박스 속에 갇힌 책들을 바라보는 그의 심정은 마치 입관 절차를 지켜보는 것 같았다고 합니다. 그 대목에서 망구엘의 책에 대한 깊은 애정이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망구엘은 종이사전에 대한 추억도 이야기합니다. 어떤 단어 하나를 찾기 위해 책장을 넘기다 보면, 그 주변의 단어들까지 함께 읽게 되었고, 그 과정 자체가 공부였다는 기억입니다. 이처럼 책은 홀로 존재하지 않고, 늘 곁의 책들과 함께 의미를 만들어냅니다. 책장 속에서 책은 서로를 비추며 다르게 보이기도 하지요. 그래서 책장은 자연스럽게 주인의 모습을 닮아갑니다.


그런 의미에서 책방의 책장은 그 책방의 색깔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는 공간일 것입니다. 특히 우리 책방처럼 조그마한 공간이라면, 책장이 풍기는 내음은 더 진할 수밖에 없겠지요. 우리 책방의 책장은 절반 이상이 모임 책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그래서 이곳의 색깔을 가장 짙게 내뿜는 책장은 다름 아닌 ‘모임 책장’입니다.

조만간 함께 읽을 책들, 지금 읽고 있을 책들, 그리고 이미 모임을 마친 책들이 한자리에 모여 과거와 현재, 미래를 이루고 있습니다. 장르도 다양하고, 신간과 구간이 적절히 섞여 있습니다. 책마다 붙은 모임 이름표를 따라가다 보면, 모임의 결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시간 순으로 진열된 책들은 그 자체로 세월의 흔적을 품고 있기도 하지요. 무엇보다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이 모든 책이 각 모임의 정원사님들이 깊이 고민해 고른 책들이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어떤 책을 집어 들어도, 이미 그 안에는 이야기가 가득 담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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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이야기를 품고 있으니, 책을 담아내는 책장이 풍성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모임에는 사람도 더해집니다. 그러다보니 매번 모임은 새롭습니다. 같은 분들이 오셔도 책이 달라지면서 이야기도 달라지고, 새로운 분이 오시면 그분의 결에 따라 모임의 색깔 또한 자연스레 변합니다. 여러 모임이 공존하지만, 모임마다 다른 향기를 지니는 이유입니다.


올해도 많은 분들이 책방을 찾아주셨고, 그만큼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감사했습니다. 지나간 모임의 책들을 다시 둘러보면, 각 책이 그날의 대화를 조용히 풀어놓는 듯합니다. 비록 제가 모든 모임에 함께하지는 못했지만, 그 울림만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소원책담의 향기는 책방지기나 정원사들만이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이 공간을 함께 채워주신 여러분과 함께 빚어지는 것이겠지요.


내년에도 또 다른 이야기들로 이 책방을 채워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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