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성 너머에서 나눈 대화들
2026년 새해 첫 철인삼목은 프랑수아 줄리앙의 저서 『문화적 정체성은 없다』로 진행되었고, 그 내용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이번 모임에서는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왔던 ‘정체성’이라는 견고한 성벽을 허물고, 그 자리에 ‘간극’이라는 유연한 탐색의 길을 내는 과정을 함께했습니다. 저자가 제시한 철학적 개념들을 한국 사회의 구체적인 현상들과 연결하면서 보다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차이’와 ‘간극’의 미묘한 구별에서 통찰이 시작됩니다. 차이가 대상을 분류하고 정적으로 규정하며 타자와의 사이에 칸막이를 세우는 도구라면, 간극은 두 대상 사이의 거리를 유지한 채 서로를 마주 보게 하는 동적인 개념입니다. 저자는 차이가 묘사와 분류에 머무르는 반면, 간극은 어디까지 다른 길이 열릴 수 있는지를 조망하는 탐사에 착수한다고 말합니다. 간극은 단순한 단절이나 ‘틈’이 아니라, 분리된 것들을 긴장 속에 놓아 서로를 바라보게 만드는 ‘사이’를 창출합니다. 이러한 간극의 개념은 타자를 나와 동일시하려는 폭력을 막고, 서로의 다름을 창조적 긴장으로 유지하게 합니다.
저자는 ‘문화적 정체성’이라는 개념이 본질적으로 불변성과 귀속성을 전제로 하는, 애초에 성립하기 어려운 가짜 논쟁이라고 비판합니다. 한국 사회에는 유독 ‘K-정체성’이나 유교적 정체성처럼 고정된 틀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러한 강조는 집단적 안도감을 주는 동시에 타자를 배척하는 배타성을 낳기도 합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된 ‘자원’ 개념이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문화는 고착된 정체성이 아니라, 누구나 가져다 쓸 수 있는 유동적인 자원이라는 것입니다. 예컨대 짜장면이 중국의 문화적 자원을 빌려 한국에서 새롭게 변형·탄생한 것처럼, 문화는 끊임없이 이동하고 변용되며 서로 교집합을 형성합니다. 정체성이라는 감옥에서 벗어나 문화를 자유롭게 활용 가능한 자원으로 바라볼 때, 비로소 진정한 문화적 풍요가 가능해진다고 생각합니다.
또 다른 중요한 화두는 ‘번역’이었습니다. 번역은 단순히 단어를 옮기는 작업이 아니라, 두 언어 사이의 간극을 탐색하고 활성화하여 서로를 비춰보게 하는 행위입니다. 우리는 번역이 원문의 의미를 잃어버리는 ‘손실’이 아니라, 오히려 각 언어가 지닌 표현의 가능성을 새롭게 열어가는 ‘창조’의 영역이라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특히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을 떠올리며, 한국어 특유의 정서가 다른 문화권으로 전달되는 과정에서 번역이 얼마나 역동적인 창작의 역할을 수행하는지에 대해서도 여러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번역은 서로 다른 문화가 각자의 경계에 머무르지 않고, 타자에게 열리도록 이끄는 마중물과도 같습니다.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자연스럽게 한국 사회에 대한 성찰로 대화가 확장되었습니다. 우리는 한국 사회가 개인의 개별성을 인정하기보다 집단의 일부로 함몰시켜 온 이유를 ‘효율성’ 중심의 근대화 과정에서 찾았습니다. 교육 현장에서도 스스로 사유하기보다는 이미 정해진 정체성을 몸에 익히도록 요구받아왔고, 이는 결국 사유의 빈곤과 타자에 대한 냉담으로 이어졌습니다. 이제는 효율성이라는 이름 아래 개별적인 간극을 지워버리는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소 비효율적이고 더 많은 에너지가 들더라도, 각자의 간극을 인정하고 그 사이에서 발생하는 대화에 귀 기울이는 것이야말로 인간다움을 회복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안이한 보편주의’와 ‘태만한 상대주의’를 모두 경계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보편주의는 자기 민족 중심주의를 보편성으로 포장함으로써 또 다른 형태의 배타성을 낳을 위험이 있고, 상대주의는 “너는 너, 나는 나”라는 태도로 대화를 단절시키며 방관하는 비겁함으로 흐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문제가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젠더 갈등, 국뽕, 혐오 정서 등과 뒤섞여 나타나는 양상을 우려스럽게 바라보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상대주의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간극을 유지한 채 끊임없이 서로를 향해 말을 건네고 응답하는 ‘다이얼로그(Dia-logue)’의 긴장감을 잃지 않는 일입니다.
모임일시 : 2026. 1. 15(목) 오후 7시 30분
참석인원 : 6명
소원책담 27번째 철인삼목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