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득의 3대 요소 - 에토스, 파토스, 로고스
종종 창업을 꿈꾸는 후배들이 대표는 어떤 역량을 갖춰야 하는지 물어보는데, 그때마다 머뭇거려질 때가 많다. 당연히 경영이나 회계에 대한 지식이 있으면 도움이 될 테고, 개발도 못하는 것보다는 잘하면 좋고, 인맥도 넓어서 나쁠 건 없겠지만 필수는 아니다. 역설적으로 회사의 모든 영역에 관여하기에 아무것도 몰라도 되는 게 대표라는 자리이다. 스타트업이란 사람들의 작은 기대감을 모으고 모아 하나의 담론을 만들고 이를 멈출 수 없는 크기의 스노볼로 굴리는 과정이다. 그리고 대표는 아주 작지만 단단한 최초의 핵을 만들어 숨결을 불어넣는 사람이다.
그런 의미에서 대표에게 가장 필수적인 역량은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다. 똑똑해서든, 존경스러워서든, 잘생겨서든, 때로는 공포심이나 경외로움이든 '이 사람과 함께라면 뭔가 할 수 있을 것 같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모을 수 있는 그 에너지가 필요하다. 마치 해적왕이 되기 위해 홀로 돛단배를 타고 시작해 동료를 하나둘씩 모아가는 원피스 주인공 루피의 여정이나, 돌 하나로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국을 끓이는 유럽 동화 돌국(stone soup) 이야기와 같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설득의 3대 요소로 에토스, 파토스, 로고스를 꼽았다. 에토스는 사회적 지위, 성품, 매력도, 카리스마 등 그 사람의 메시지 외적으로 존재하는 모든 것이다. 파토스는 듣는 사람의 심리 상태를 뜻하는 단어로 감정이나 욕구 등에 호소하는 방식이다. 마지막으로 로고스는 논리적이고 이성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설득하는 방법이다. 흥미롭게도 셋 중 가장 중요한 건 에토스이다. 그다음이 파토스, 그리고 로고스 순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로고스로 파토스를 이길 수 없고, 파토스로 에토스를 이길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로고스는 약자의 언어로 불리기도 한다.
대표의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다. 스타트업 대표에게 요구되는 많은 것들이 결국 에토스로 귀결된다. 대표의 학벌이 중요한 이유, 대표가 말을 잘해야 하는 이유, 연쇄 창업가 대표가 사업 초기부터 큰 투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이유 등이 그렇다. 심지어 대표가 똑똑해야 하는 이유도 본인이 회사의 모든 문제를 풀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똑똑한 사람을 움직이기 위해서이다. 개발을 잘 알아야 하는 이유도 팀의 신뢰를 얻기 위한 과정이다. 만약 이 모든 게 없어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면, 가장 뛰어난 재능을 갖춘 대표이다. 그런 대표에게 학벌도, 회계 지식도, 개발 역량도, 똑똑함도 필요 없다.
사업이 로고스로만 이루어졌다면 가장 완성도 높은 사업계획서를 가진 대표가 성공하겠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그렇지 않다. 스타트업이란 설득의 연속이기에 회사의 비전과 대표의 에토스 사이의 상관관계가 매우 중요하다. 즉 그 대표만이 할 수 있는 사업이 존재하고, 동시에 어떤 대표는 절대 할 수 없는 아이템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대형 로펌 출신의 대표가 변호사 시장을 개혁하겠다는 메시지는 설득력이 있지만, 50대로 이루어진 창업 팀이 Z세대 대상의 서비스를 만든다고 하면 아무리 기획안이 좋아도 설득이 안 되는 이유이다. 매력적인 대표와 그와 함께 하는 팀원들 그리고 모두의 에토스를 극대화시킬 수 있는 비전, 이 삼박자가 합쳐졌을 때 스노볼은 구르기 시작한다.
그렇기에 팀과 비전을 때 놓고 대표로서 어떤 역량이 필요한지 묻는 질문에 머뭇거려지는 이유이다. 창업을 하려면 서울대를 나와야 하나요? 네 아무래도 서울대인 게 유리하겠죠. 창업을 하려면 코딩을 배워야 하나요? 네 아무래도 배우는 게 낫겠죠. 경영학은 창업에 도움이 안 되나요? 아뇨 아무래도 도움이 되겠죠. 마치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 마냥 창업 전략을 찾는다면 정답은 없다. 물론 마음은 충분히 이해한다. 나 역시 지난 20년을 로고스의 세상에서 살아온 사람이다. 항상 답이 정해져 있는 문제를 풀어왔고, 정보를 습득하고 지식을 익히고 구조를 파악하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었다. 그러다 세상에서 로고스만으로 풀 수 있는 문제는 매우 제한적이란 사실을 깨닫고, 약간의 좌절도 겪었다. 하지만 이겨내고 나니, 오히려 내 힘으로는 아무리 노력해도 할 수 없는 일을 팀원들과 함께 꿈꿀 수 있기에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