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 늦은 후회

by 최선화

때 늦은 후회

평소,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잘한 일 중 하나가 장애인을 도운 일이라 생각했다. 왜냐하면 장애인과 함께 한 일은 내게는 가장 힘든 일이었고 평소 못해 본 온갖 생고생 다 해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상과 사람에 대한 다양한 경험들을 통해서 내 좁은 식견을 조금이나마 넓힐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상당한 가시적 성과와 성취도 이루었다. 사회복지 전공자로서 편하고 우아한 교수질만 한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발로 뛰면서 수많은 사회복지사들이 현장에서 매일 겪는 고초와 애환을 몸소 겪었기에 체면이 설만큼은 실천했다고 여기며 자부심도 가지게 되었다.

더욱이 내가 주 대상으로 일한 사람들은 중도장애인으로 장애인의 인권을 유린하고 장애를 빙자해서 자신들의 잇속을 챙기는 사람들이었다. 정의롭지 못한 검은 고리가 있다는 것을 알고부터 그야말로 전쟁을 벌였고 마침내 장애인들에게 국가가 부여한 정당한 권리를 되찾아주는 것에 성공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상식적인 일이기에 성공이 아니라 당연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상식이 상식화되고 상식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도 알게 되었다.

말이야 쉽지만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히고설킨 구조를 새롭게 만들어 나가는 것은 경험이 부족한 사람에게는 목숨을 건 투쟁이었다. 내가 뭘 모르는 사람이고 철없는 여자다 보니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덤벼들어 벌린 일이었다. 그래도 상식과 정의를 바로 세우는 일이기에 주변 모두의 협조로 그나마 잘 마무리될 수 있었다는 것은 천만다행이라 여겨진다.

많은 변화에도 불구하고 그 과정은 엄청난 소음과 스트레스 그리고 전쟁을 방불케 하는 무모한 일로, 주변에서도 극구 말리는 일이었다. 그러다 보니 스스로 많이 상했고 엄청난 스트레스를 나와 함께 우리 직원 모두가 견뎌내야만 했다. 지금 생각하면 잘한 일이기도 하지만 다시는 되풀이하고 싶지 않은 일이다. 한참의 여유를 가지고 난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참 무모하고 멋모르는 시도였다는 생각조차 든다. 못생긴 나무가 산을 지키듯이 약간 모자라는 사람이 뭘 모르고 겁 없이 덤벼들었던 일이었다.

그렇게 평소 도와 영적 표현에 관심이 많은 내가 벌인 일이라고 믿기지도 않고 뭘 모르는 여자라서 사람들 특히 남자들의 은밀한 거래와 먹이사슬에 감히 손을 댄 간 큰 짓을 한 것이다. 아마 내가 이 정도로 정리할 수 있었던 것은 신의 가호가 있었기 때문이라 믿는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순간들이 참 많았었다. 덕분에 내 속에 그렇게 큰 대담성과 용기가 있는 줄은 나도 미처 몰랐다. 말이 좋아 대담성이지 무모함이고 어리석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는 생각도 든다.

일반적인 수준에서 보면 그만한 변화도 드문 일이고 잘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진리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어둠이나 악과 맞서 싸우는 일은 어리석으며 그렇게 한다고 악과 어둠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인류가 지구 상에 도래한 이후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왔고 그런 속에서 나처럼 나선 사람도 많았겠지만 근본적으로 달라진 것은 별로 없다.

그래도 진정한 영향력을 미친 사람은 예수나 부처 등의 성인들이다. 그들은 접근 방식부터 달랐다. 그들은 어둠과 싸웠다기보다는 빛을 비춰주었다. 어둠에 대한 분노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어리석음에 대한 연민과 자비심으로 출발했기에 근본 출발점이 달랐다. 그래서 전쟁을 벌이며 상처를 주고받기보다는 평화와 선한 영향력이 물결처럼 천년을 넘어 번져나갈 수 있었다.

어떤 경우에도 맞서서 싸운다면 결국은 같아지게 되며 같은 수준에서 노는 꼴이 된다. 그보다는 한 차원 넘어서서 여유롭게 보고 지혜롭게 대처해 나가야 하는데 그렇게 할 만큼 성숙하지 못했기에 스스로 다치고 여러 사람 상하게 한 것이다. 그러니 저 나쁜 누구 다른 사람 탓할 일이 못 되며 내가 스스로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가 같이 휘말려 버린 꼴이다. 그래도 내 속에 장애인들에 대한 순수한 애정과 연민이 많았고 그들을 진심으로 대하며 너그러운 태도로 포용했기에 그들이 나의 진정성을 알고 이해하며 많이 봐준 것이다. 도저히 감당치 못할 만큼 눈치조차 없고 철없는 여자라며 무시해버려 더 험한 꼴 당하지 않았던 것이다.

섣부른 정의감과 지혜롭지 못한 도전은 무모하기 짝이 없고 어리석기 끝이 없다. 지금에 와서 혼자 생각해 봐도 헛웃음이 나온다. 젊고 뭘 몰랐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때는 그것이 가치 있는 일로 사명감마저 지녔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사명감을 넘어서 오만과 오기였다. 뭘 모르던 피 끓는 시절에나 할 일을 쉰내 나는 나이에 분수도 모르고 저질렀으니...

그래도 가끔은 잘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때가 아니라면 다시는 못해 보았을 일이기에. 때로는 어리석고 무모한 자가 새 역사를 만들며 강물의 흐름을 바꾸기도 하니까... 모두가 약게 굴고 보신만 한다면 세상은 더 어려워졌을지도 모른다. 몇몇 사람들 간의 밀약과 비밀스러운 거래를 깨트리는 건,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 아이나 여자들이 하는 행동이니까. 그래서 역사가 한 발짝 나아가게 되니까. 남자들은 그런 여자를 못 믿는다고 하지만 내가 보기엔 신의 장난기 어린 조화로 여겨진다.

중요한 것은 세상에 반응하며 같은 수준에서 뒹굴다 함께 상처 받을 것인가? 아니면 다른 차원에서 지혜롭게 길을 열어줄 것인가?이다.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무모한 허영심과 근거 없는 집착에서 벗어나서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길을 터주고 모두를 부드럽게 포용하며 함께 나아갈 길을 찾아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이제 와서야 겨우 깨닫게 된다. 내가 늦둥이라는 게 여기서도 표가 난다. 처음부터 나에게 그런 경지는 가능하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이제라도 알고 깨달을 수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 여기며 스스로를 다독이게 된다.

그러니 이제는 다 잊어버리고 털어버리며 편히 쉬며 주어진 지금의 삶을 살아가자. 나보다 훨씬 더 유능한 사람들이 사회적 약자들을 잘 돌보며 도와주고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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