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된다는 것
팔순의 언니가 몸이 좋지 않아서 모두 긴장했었다. 다행히 큰일은 아니어서 무사히 넘어가는 것 같다. 이제는 나이들이 있다 보니 밤새 안녕이라는 인사가 가슴에 와닿는다. 지금 이 시점에서 생각해 보면 그렇게도 많은 세월을 뭣하며 보냈는지 아쉽고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내게 주어진 시간도 그리 길지 않을지도 모른다. 60이 넘으면 무슨 일이 벌어져도 다 수용할만한 나이다. 이 안타깝도록 아쉬운 시간을 잘 보내야 할 것 같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그냥 늙어 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며 성숙한 어른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껏 넓은 의미에서 진리와 사랑의 길을 추구하며 살아왔는데 지금 나는 어디쯤 있는가? 내 존재가 사랑과 진리와 생명으로 차 있는가? 솔직히 아직 갈 길이 멀다. 그래, 끝나는 날까지 이 길은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부지런히 해가며 열심히 정진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임종이라는 순간에 서서 뒤돌아보게 된다.
아마도 그땐 미움이나 분노 같은 감정은 아무 의미가 없을 것이다. 모두에게 감사와 축복만 보낼 것 같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모두와 감사와 축복만 나누도록 하자. 미워하고 싫어하며 낭비한 시간을 후회할 것 같다. 그러니 미워하지 말고 아무도 싫어하지 말자. 정 싫으면 약간의 거리감을 유지하며 나의 품위를 지켜나가자.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힘과 용기를 줄 수 있는 일이라면 놓치지 말자. 마음으로 그리고 물질로도 많이 베풀고 많이 나누며 이 세상길에 함께 해 준 것에 대한 고마움을 나누고 전하자. 이 땅에 함께 살며 가까이 알고 지낸 것에 대해 특별히 감사하며 선한 영향력을 서로에게 미치자.
어른답게 성숙한 자세로 여유를 가지고 인내심을 발휘하며 서로 위로하고 지지하며 감싸 안자. 어른다운 노년과 인생 선배가 되는 길은 성숙함과 바른길을 말이 아닌 삶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 모두보다 먼저 내 존재에 대한 책임을 전적으로 수용하자. 어떤 상황 속에서도 나의 중심을 유지하며 내가 할 일을 해나가고 삶의 바른 자세를 보여주자. 삶에서 결국은 생명과 진리와 사랑만이 가치 있다는 것을 생활 속에서 적절하게 분화된 모습으로 표현하고 드러내자. 그것이 쉽지 않기에 인생을 더 많이 산 사람이 먼저 드러내고 표현해줌으로써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자. 쉽다면 누가 못하겠는가? 그러니 나이 든 사람이 성숙함의 본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화를 내는 것이 당연할 것 같은 순간에도 웃으며 조용히 일러주고받아주는 여유와 관용은 인생을 잘 살아온 사람에게만 가능할 것이다. 작은 순간에도 사랑과 진리의 표현이 무엇인지 드러내며 비춰주는 것이 어른이 할 일이다.
내 삶을 낭비하지 않고 후회 없이 살기 위해서 내가 누구이며 우리 모두의 진정한 본성과 특성이 어떤 것인지를 모범적으로 드러내야 할 것이다. 진정한 영향력은 봄비에 적셔지듯이 조용히 스며들며 향기처럼 은은하게 배어날 것이다.
사람에 대한 예를 다하며 서로에게 극진히 대하자. 공자의 가르침이나 고전에서 보여주는 예가 단지 형식적인 겉치레가 아니라 진정으로 서로를 대하는 참다운 방법으로 만들어진 것 같다. 그러나 가슴에서 우러난 마음으로 행하기보다는 형식이었기에 이중적이었고 모두에게 짐이 되었던 것이다.
어른의 면모는 마음가짐과 행동거지 모두에서 성숙하고 여유로운 품위를 드러내며 어린 사람들에게 삶의 길과 사람의 길인 하늘의 품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예수나 몇몇 성자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그런 품성을 지녔고 그런 특성을 드러내며 살 수 있다는 것을 각자의 상황 속에서 표현해냄으로써 가능할 것이다.
우리 어머니들이 자식들의 가슴에서 떠나지 않는 것은 그 어떤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가족을 지켜내는 사랑을 실천했기 때문이다. 비록 그 표현이 거칠고 투박했다 할지라도 그 정신만은 한량없는 사랑으로 채워져 있었기에 모두의 가슴에 각인된 것이다. 그러나 편협하고 이기적인 내 자식과 가족만이 아니라 모든 생명체에게 보편타당성을 지닌 사랑으로 펼쳐져야 할 것이다.
그렇게 사랑과 진리와 생명을 보여주는 삶이 나에게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숙제로 남아 있다. 순간순간을 이렇게 본질적인 사랑과 진실과 생명으로 채워가는 삶은 진정 아름답고 보람 있는 일이 될 것이다.
나이 들어간다는 것이 삶이라는 정류소에서 대기 번호를 받고 막차가 오길 기다리는 맥 빠진 연명이 아니라 진정으로 생명을 누리며 활짝 꽃 피우는 것이, 사는 것 같이 사는 삶이 될 것이다. 이런 삶은 각시 기마다 다 가능하지만, 특히 나이 들어 인생의 긴 행로를 거쳐온 사람에게는 더 주저할 것도 없고 걸릴 것도 없이 나아갈 수 있는 영광스러운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