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반들
자신의 존재 가치와 의미를 찾아가는 일은 어느 누구도 아닌 스스로의 힘으로 찾아가며 밝혀 나가야만 한다. 삶이 본인에게 던진 질문이며 숙제이기 때문에, 스스로 혼자만이 삶으로 풀어내고 증명해 내야 하는 실존의 문제이기 때문에. 오랫동안 미루어 오던 숙제를 해가는 심정으로 나는 존재론적 의미와 본질적 문제들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몰두했다.
내가 그렇게도 열심히 찾아 헤매던 문제들에 대한 답이 주어지는 것 같은 조짐에 더 깊이깊이 몰두해 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자서 면벽하고 호흡을 가다듬고 앉아 있거나 만행을 하는 것도 좋지만, 그들처럼 아는 만큼 실천하고 실천한 만큼 내 삶을 통해서 표현해 내며, 올라오는 생각들을 나누고 정리하는 과정을 함께 할 수 있는 도반들을 찾아 나섰다.
옥스퍼드에는 동서양 간의 교류와 도에 관심 있는 사람들의 모임이 있었다. 그가 주도하는 모임이었다. 그래서 주말마다 옥스퍼드를 열심히 드나들며 모임에 참가했다. 비디오를 통해서 ‘마틴 할아버지’의 연설문을 같이 듣거나 읽고 토론했다. 모임에는 예일대학 럭비 주장이었던 마이클과 런던 경제학교를 다니는 미 동부 출신의 유태인 빌, 잘생긴 부르스와 인도에서 온 산제이, 독일 킬 출신의 볼커, 영국 명문 귀족 출신의 케이티, 스톡홀름에서 온 어린 헬레나, 그리고 흑진주 케런 등이 모였다. 대부분이 영연방 출신의 로드 장학생들로 각자의 분야에서 내놓으라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에게는 한국의 많은 젊은이들이 젊음을 반납해 가며 피를 흘려야 하는 희생 없이, 각자의 일에 몰두하고 추구해 나갈 수 있는 자유와 여유로움이 제공되었다는 사실이 부러웠다. 이 모두가 우리 젊은이들이 바라고 희망하는 꿈이 아니던가? 그렇게도 소중한 기회를 가진 그들의 꿈과 소망은 무엇인가?
마이클은 힘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그는 아마도 미국 대통령이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인 것 같았다. 그 사람이라면 충분히 도전해 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힘과 카리스마로 리더십도 있고 부드러운 감성도 있는 것 같았다. 빌은 미 동부의 전형적인 유태인 사업가의 아들로 아버지와 갈등을 겪고 있었다. 유태인 아버지가 빌에게 기대하는 것은 의사나 변호사가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빌은 가슴의 소리에 더 귀 기울이고자 했다. 부르스는 순수한 마음과 강한 열정 그리고 성실성을 가진 사람이었다. 산제이는 뉴델리 대학 최우수 졸업생으로 경제학을 공부하는, 사려 깊은 사람이었다. 볼커는 딱딱한 외형과는 달리 동양적인 것에 관심이 많았다. 케이티는 귀족 출신의 물리학도로 별로 말이 없었다. 헬레나는 어린 나이로 옥스퍼드로 유학 와서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나이는 어리지만 키는 제일 컸고 부드러운 마음과 열정이 넘쳤다. 케런은 미국 흑인 여성 최초로 로드 장학생이 된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케런은 힘과 자신감이 넘치고 머리가 좋아, 두려울 것이 없는 듯했다. 보스턴 마라톤에서도 풀코스를 완주할 정도로 지칠 줄 모르는 체력을 지녔다.
우리 모두가 모임을 통해서 추구하는 바가 다르겠지만 나에게는 진정한 ‘자아 정체성 찾기와 삶에 대한 바른 방향성 추구’라는 말로 요약될 수 있었다. 진정으로 나는 누구인가? 왜 지금 이 땅에 살고 있는가? 내 삶의 의미와 가치는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가 우리 토론의 핵심으로 ‘진리와 참삶의 길’에 대한 진지한 토론이 계속되었다. 우리 각자가 살아온 인생행로와 처해있는 상황은 다를지라도 본질적으로는 비슷한 길을 걸어온 것이다.
생명현상이라는 본질에서 본다면 더더욱 그랬다. 각자는 다른 토양과 풍토에서 키워진 나무이자 꽃들로 하나의 근원에서 출발해서 자신이 뿌리내린 땅에서 일궈낸 생명현상으로 겉모습은 달라도 같은 길을 가고 있는 지구촌의 이웃들이었다.
그래서 각자의 삶에서 건져낸 경험의 알갱이들이 마치 조각조각의 퍼즐과도 같이 한자리에 모여졌을 때 그림의 완성도가 높아지는 것 같았다. 서로를 통해서 자신의 모습을 비춰주는 거울이 되어주며 함께 가는 길동무들이자 좋은 도반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