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그리고

유채꽃

by 최선화

유채꽃

영국 중부의 초가집들은 동화책에 나오는 숲 속 요정들의 집처럼, 고향과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정겨운 풍경이었다. 중부지방 특유의 노란 벽돌과 초가지붕을 한 작은 집들은 따스함과 정겨움으로 많은 사람에게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영국의 중부는 셰익스피어 기념관과 함께 영국의 심장으로 불리며 전 지역이 중요 관광상품이 되었다.

미클튼은 바로 영국의 심장부에 있었다. 봄이면 관광객들이 끊이질 않는 아름다운 곳이어서 호텔 운영으로 생계를 해결하고 있다. 부활절 휴가로 영국과 유럽 전체가 움직였고 나도 덩달아 부활절 휴가에 다시 미클튼을 찾았다.

영국의 봄은 정말 아름답다. 넓은 밭과 장원의 영지들이 노란 유채꽃으로 뒤덮이어 봄의 향연을 벌인다. 이른 봄의 크로커스를 시작으로 튤립, 수선화들이 경쟁적으로 피어난다. 회색의 긴 겨울에 대한 기억을 떨쳐 버리려는 듯이. 기차 여행을 하다 보면 유채꽃의 노란색과 조팝나무의 흰색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어 봄의 들녘이 더욱 풍성하게 느껴졌다.

조팝나무를 보면 친근감과 함께 아린 느낌이 든다. 춘궁기 가난한 사람들이 흰쌀밥을 그리며 하야케 빼곡히 붙어 있는 모습이 쌀밥 같다고 해서 이팝나무라고도 한다. 얼마나 배가 고프고 밥이 그리웠기에 그랬을까, 내 가슴은 아리지만 흐드러진 꽃들은 무심하게 피어있었다.

갑자기 의문이 들었다, 꽃들은 어떻게 봄이 왔다는 것을 알까? 어떤 힘에 의해서 저렇게 많은 꽃이 봄이면 피어나는 것일까? 땅에 떨어진 씨앗이 싹을 틔워서 자라난 것이다. 그러면 그 씨앗은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어떻게 때를 알고 잊지 않고 피어나는 것일까? 누가 돌보고 가꾼단 말인가? 봄기운이 그들을 자극해서 피어났다면 그 봄기운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봄의 생기와 죽은 듯한 언 땅에서 아름다운 꽃들을 피워내는 그 힘은 무엇일까? 생명의 기운, 생명을 관장하는 어떤 섭리나 도가 이미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내 능력으로는 그 이상은 알 수 없다. 이미 존재하고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고마울 따름이다.

그렇다면 인간도 그 힘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며 부모는 나를 낳아준 통로일 뿐이다. 진짜로 나를 만들어준 부모는 우주를 채우고 있는 생명의 기운이며 그 힘으로부터 모든 생명이 유래한 것이다. 그 힘이 바로 신이라고 부르는 존재의 실체가 아닐까?

그것이 무엇이든, 무엇이라고 부르든 간에 인간도 다른 생명체처럼 생명의 기운에 따라서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작은 씨앗도 생명의 힘에 의해 저렇게 아름답게 피어나는데, 인간도 그 기운을 따라 자연스러운 과정을 밟으며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성경에도 분명 돌보고 가꾸는 이가 있다고 했거늘....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공중의 나는 새를 보라....’

내가 즐기는 성경의 시편이 생각났다. 시편에서의 구절들이 의미하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이렇게 생명이 주어지고 신의 돌봄에 따라서 자연스럽게 살아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법칙을 따르기보다는 스스로 일구고 가꾸며 수고하는 인간의 모습이 바로 아버지의 집을 벗어나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탕자의 모습 아닌가? 인간의 자기 작동적 의지와 노력, 이것이 바로 애덴 동산에서 쫓겨난 인간의 모습 아닌가?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인간의 작위적 노력을 포기하고 탕자처럼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면 되는 것 아닐까? 그런데 사람들은 그렇게 하기보다는 자기 작동적 노력을 계속하면서 신에게 그런 자신을 도와달라고 매달리고 간구하고 있다.

신앙이라는 것이 그런 자신을 더 잘 유지하기 위해서 빌고 애걸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믿음은 바로 근원적인 모습으로 돌아가서 창조주의 기본 의도를 알고 받아들이며 순종하는 것 아닌가? 그러기 위해서는 스스로 원하고 선택한 근원에서 벗어난 이기적인 삶을 포기하고 근원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 그래서 저렇게 피어나는 꽃처럼 자연의 순리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신이 멀리 있고 알 수 없는 존재라고 하지만, 바로 저런 들꽃의 모습으로 우리 삶에 지금 바로 여기에서 역사하고 있지 않는가? 이런 신의 역사가 바로 성령으로 우리를 통해서 드러나며 새로운 인식을 가능케 하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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