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그리고

소풍

by 최선화


마틴이 오자 우리는 함께 템즈강으로 소풍을 갔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그는 보이지 않고 사람들은 모두 즐거워하며 들떠 있었다. 과민성 대장을 가진 사람은 야외에서는 참 불편했다. 멀리 떨어진 화장실까지 가야 하는 불편을 감내해야 하니까. 볼일을 마치고 나오며 시원함에 기지개를 켜다 보니 작은 체구의 한 할아버지가 내 앞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아무것도 유별나지 않은 한 평범한 노인이 따뜻한 미소를 지었다. 예의로 상투적인 미소를 보내며 고개를 돌리려다 뭔가 이상했다.

다시 보니 비디오에서 보던 ‘마틴’이었다. 순간적으로 놀라 달려간 나를 그는 친절하고 따뜻하게 맞아 주었지만 약간의 실망을 감출 수 없었다. 비디오를 통해서 볼 때 느낀 그 엄청난 힘과 권위는 다 어디 가고 아무도 알아볼 것 같지 않은 보통의 인상 좋은 노인이었다.

난 사실 마틴을 만나는 것에 대해서 많은 기대를 하고 있었다. 그의 존재만으로, 한번 가까이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굉장한 영감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예수가 그랬던 것처럼, 옷깃만 스쳐도 병이 다 낫는 그런 기적은 아닐지라도 그래도 어떤 감동의 전율을 느껴보고 싶었다. 그런데 그는 이웃집의 마음씨 좋은 아주 평범한 아무것도 특별난 것이 없는 보통의 할아버지 같았다.

소풍과 뱃놀이 후에 사진도 찍고, 얘기를 나누며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나도 마틴에게 다가가서 사진을 함께 찍기로 했다. 마틴을 만난 것이 나에게는 소중한 특별한 사건으로 기념으로 남기고 싶었다.

마틴의 눈빛은 마치 사람을 꿰뚫어 보는 듯이 강열했고 그에게서는 엄청난 자력이 흘러 감염되는 것 같았다. 마틴과 나 그리고 부인인 릴리언이 함께 앉아 포즈를 취하며 카메라의 렌즈를 바라보는 순간 엄청난 일이 일어났다.

물리적인 나라는 존재는 사라지고 커다란 힘과 에너지에 용해되어 함께 움직이고 있었다. 마치 사진에서 본 태풍의 눈과 소용돌이처럼 그렇게, 모든 것을 초월해서 나라는 몸도, 주위의 모든 현상적 세계에서 벗어나서 하나의 거대한 에너지로 변하여 함께 움직이고 있었다.

찰깍하는 셔터 소리에 깨어나 물질세계로 되돌아와서 보니 본래의 나로 돌아와 있었다. 어느 것이 본래의 나인지는 모르겠지만 물질세계에 살아가고 있던 내 모습으로 돌아온 것이었다. 카메라 렌즈를 바라본 불과 몇 초간의 일이었지만 나에게는 굉장히 특별한 경험이었다.

나도 모르게 빨려 들었던 그 힘은 무엇인가? 그 에너지와 역동성은 무엇인가? 우주적 기운인가? 창조적 에너지인가? 아무튼 처음 경험한 초자연적 힘과 현상에 대해서 내 머리로는 다 알 수 없는 어떤 신비와 경이로움을 체험한 것이다.

어른들에게 이런 일에 대해서 물어보고 싶었지만, 신비하거나 이상한 체험에 대해서 그리 큰 무게와 의미를 두기보다는, 초자연적인 경험과 체험을 당연한 것처럼 담담히 수용하며 묵묵히 들어줄 뿐이었다. 이런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 알지 못하는 것은 그대로 받아들이면 그만이지 무슨 대단한 일인 것처럼 호들갑을 떨고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도리어 사기성이 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이 다 알지 못하는 얼마나 많은 신비가 존재하는데....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고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정직한 태도일 뿐 아니라, 실제 인간이 아는 것은 모르는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데...

소위 말하는 영적 지도자로 자칭하는 사람이나 도를 닦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에는 별 기이한 이야기들이 많다. 그런 이야기들이 처음에는 약간의 진실이 있었다고 해도 나중에는 엉뚱하게 왜곡되거나 초자연적인 힘을 이용해서 개인적인 목적에 이용하는 듯한 일들이 곳곳에서 벌어지는 것을 보아왔다.

인간의 머리로 설명할 수 있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더 많으며, 일어난 일은 일어난 일로 받아들이며 이해가 생길 때까지 소중히 간직하며 의미를 찾아가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단지 육신만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 빛의 존재라는 본질이 분명 해지며 성령이라는 것도 모호한 어떤 기운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실체라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미클튼으로 다시 돌아와 매일 모임이 이루어졌다. 대부분은 우리끼리 모여서 여러 가지 주제에 대해서 논의했다. 그 내용은 삶의 새로운 태도로서 본인이 느끼고 깨우치고 경험한 것들을 나누는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우리 각자는 자기 경험의 범위라는 좁은 세계에 살고 있다.

본인의 인간적 크기에 꼭 맞는 각자의 신을 섬기며 각자가 만든 우주에서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여러 사람의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서 조금씩 넓어지고 커나갈 수 있었다. 먼저 경험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를 나누는 것도 좋았고 영국 특유의 연극적 방법으로 희화화한 것도 재미있었다. 인간들 모두의 미련하고 바보스러운 모습을 보며 웃어버릴 수 있고 털어버릴 수 있다는 것이 바로 예술이 전해줄 수 있는 치유와 해탈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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