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밑그림
우리 생명 속에 삶의 밑그림인 의도와 섭리가 이미 존재하며, 근원적 힘이 우리의 의식과 무의식을 통해서 전달되고 작동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는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켰다. 창조적 과정은 보이지 않는 영역인 하늘이 인간이라는 연결고리를 통해서 보이는 영역인 땅에 나타나는 과정이다. 보이지 않는 섭리가 인간이라는 도구를 통해서 이 땅에 드러나는 과정이 창조다.
그렇지, 이 땅에서 신을 대행할 존재는 인간뿐이며 인간을 통해서 우주적 기운이 전달되어 더 큰 창조가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모든 생명체가 다 근원에서 나왔으며 창조적 과정에 동참하고 있지만, 인간은 그 모두와 더불어 해야 할 역할이 따로 있을 법하다. 예를 들면 모두를 돌보고 관장하는 청지기의 역할과 같은 특별한 소임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모든 사람에게는 주어진 소명이 있으며 그럼으로써 모두가 다 우주적 창조 과정에서 의미와 가치를 지니는 것이다.
낯선 이야기이면서도 한편에서는 아주 상식적이며 친숙한 내용이기도 하다. 보이지 않는 힘이 인간이라는 도구와 그릇을 통해서 말과 행동으로 드러나는 과정을 우리는 어느 정도 경험하고 있다. 우주적 창조 과정으로서의 인간의 역사, 성경이 바로 인간의 역사며 예수는 그 가운데 나타난 인간의 참모습인 신성을 온전하게 드러낸 사람으로, 인간 삶의 바른 본보기로서의 예수....
인간이라는 도구가 우주를 가득 채운 창조적 기운과 함께하며 순간순간에 충실하고 적절한 표현을 통해서 창조의 길이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존재의 집이 다시 지어질 것이라는 내 존재와 우주적 창조와 재창조에 대한 이야기가 나를 자극하며 구미를 당겼다.
그러나 이런 큰 그림과 근원적인 이야기는 머리나 이론으로만 이해해서 될 일이 아니라 직접 살아가며 실천을 통해서 깊이를 더해 나가야 할 일이다. 더구나 이런 삶과 그 체험의 깊이를 더하기 위해서는 내가 그만큼 살아내고 직접 실천해봄으로써 이해의 폭이 더 해 갈 것이라는 큰 숙제를 안겨주었다.
삶의 새로운 방식에 대한 인식은 내 삶의 기준에 대한 획기적인 방향 전환과 결단을 요구하고 있다. 그래, 그렇지 내가 직접 그렇게 살아보고 살아내지 않고서 어떻게 다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 내 삶에 전폭적인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이 두렵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막막하면서도 어느 정도는 친숙한 것 같기도 하고....
이런저런 복잡한 생각 속에서도 새로운 가능성을 본 출발점이라는 점에서는 희망적으로 다가왔다. 그보다 더 직접적으로는 이런 의식적인 것 위에 더해지는 창조적 분위기와 그러한 분위기를 담을 수 있는 그릇과 기운이 제공되어 내 영혼이 정화되고 치유되며 이미 그 길로 나도 모르게 나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세미나는 내가 그렇게도 찾아 헤매던 내 존재 의미와 가치를 찾는데 중요한 단초를 제공해 주었다. 내 삶의 길을 찾기 위한 그동안의 방황과 생각들을 정리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으며 의식적인 이해를 넓혀 주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왜 그들이 먼저 답을 줄 수 없었는지를. 생명의 흐름과 기운은 언어로 가두고 고정할 수 없는 살아 움직이는 역동적인 것으로 언제나 그때마다 순간적으로 드러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찾고 있던 해답은 나에게 주어진 창조적 영역으로 스스로 직접 창조해 나가야 할 과업이기 때문이다.
내 존재의 의미와 가치를 찾아가고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정작 중요한 것은 의식적인 이해만큼 가슴으로 전해지는 깊은 느낌들, 잔잔한 감동과 본보기들이 더 실질적이고 더 깊이 와닿았으며, 더 큰 치유를 가져왔다.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말이 아니라 태도며, 존재 자체이기 때문이다. 맑은 기운, 정화된 분위기와 영혼의 울림은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전해지며 언어와 논리를 넘어선 직관과 영감으로 더 쉽게 전해져, 그냥 아는 것이지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냥 아는 것,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스며들어 녹아나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경험한 작은 체험과 앎이 전부가 아니며 더 무한한 이해와 영적 경험으로 이어져 나갈 것이다. 그러기에 이러한 이해와 경험은 끝이 아니라 하나의 단초로 시작일 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난 이제 겨우 내 존재의 집을 개조해나갈 수 있는 정지작업을 한 것이며, 나라는 존재의 실체와 내 삶의 의미와 가치는 삶을 통해서 스스로 살아내야 하는 창조적 영역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내 삶을 통한 창조는 순간순간의 삶으로 증명해 내고 살아냄으로써 자연스럽게 드러날 것이다. 그리하여 더 큰 창조의 한 부분으로 연결될 것이라는 아름답고 거룩한 희망을 품게 되었다. 나를 통해서 창조적 기운이 드러날 수 있으며, 천지를 아우르는 연결고리가 되어 우주적 창조에 동참할 수 있다는 벅찬 꿈과 희망을 품게 되어 내 삶의 의미와 가치를 되새기게 되었다.
어릴 적 길가의 민들레를 보면서 느꼈던 감동이 되살아났다. 추운 겨울을 견디어 내고 제일 먼저 봄소식을 전하는 민들레의 의미를. 씨앗 속에 숨겨진 섭리대로 바람할매의 부름을 따라 피어남으로써, 봄 동산을 장식하고 나비를 불러내는 창조적 과정에 동참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샛노란 꽃으로 피어나 존재 그 자체로 움츠러든 가슴에 생명의 환희와 비밀을 전하기 위함인 것을. 왜 그리도 씨앗을 흩날리며 퍼트리는지, 짓밟아도 되살아나며 짓밟히기에 더 강해지는지를... 민들레라는 미물에게도 전해야 할 생명의 소명이 있기에 그렇게 끈질기게 피어나는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