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희망
그는 잠이 오질 않아 지난밤 산책을 나왔다가 이곳을 발견했고, 내가 좋아할 것 같아서 초대했다고 했다. 이보다 더 좋은 선물은 없다며 고마움을 전했다. 20대의 한창나이에 약혼녀와 가족을 두고 외로운 망명 생활을 하는 그에게 잠이 잘 오지 않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에게는 무슨 말도 그 무엇도 큰 힘이 되지 못할 것이다. 자신이 당하는 박해와 폭력에 더 이상 항거할 방법도 없이 무작정 기다리기만 하는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에 빠져 있었다. 이렇게 전혀 길이 보이질 않을 때는 차라리 절대적 힘에 의존하는 길을 택하는 것도 한 방법일 것 같았다. 그래서 우리 인간을 넘어선 또 다른 질서와 힘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 자체가 큰 희망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신을 믿으세요?”
“신은 이미 죽었어요. 그렇지 않다면 이럴 수는 없겠죠.”
갑자기 목소리에 감정이 섞였다. 그가 말하는 신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나는 모른다, 정말 그런 신은 죽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살아서 작동하고 만물을 소생시키는 신은 분명 살아있으며, 지금 꽃향기와 호밀이 그 증거라고 했다. 더 가까운 증거는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지금도 뛰고 있는 우리의 심장이라고.
생명은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지 우리 것이 아니며, 주관하는 존재는 따로 있기에 나는 그 힘과 능력을 믿는다고 했다. 그래서 그가 처한 상황도 우리의 작은 힘보다는 더 큰 질서와 힘을 믿고 귀의하며 의탁하는 것이 우선 그가 살 수 있는 방법일지도 모른다고 하자, 그는 말없이 싱끗 웃었다.
사실, 한국을 떠날 때 한국적 상황이 너무 막막했고 길이 보이질 않았다. 그리고 내가 하필이면 한국 땅에 태어나서 내 청춘을 이렇게 고뇌와 갈등으로 썩여야 한다는 사실이 정말 억울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이곳에서 만난 젊은이들은 나보다 더 심한 박해 속에서 그들의 삶을 저당 잡혀 있었다.
그래, 내가 우물 안 개구리였구나! 우리만 그런 줄 알았는데 세계 곳곳이 비슷한 상황에서 고통을 겪고 있었구나! 그렇지, 넓게 보면 인간 속성의 추함과 인간의 어리석음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식민지 시대는 외세와 제국주의에 의해 박해를 당했다지만 자국 내에서 정치권력에 의해서 다시 젊은이들이 망명생활을 하고 저렇게 지낸다는 사실이 어처구니없이 여겨졌다.
하늘 아래 새로울 것이 없다고 하더니 어느 곳, 어느 시대나 인간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근본적으로는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더 나를 절망하게 했다. 그래서 다시 어쩔 수 없이 인간적인 노력이 아닌 초월적 가치와 근원적 변화만이 진정한 변화를 인간 삶에 전해줄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 머리로는 이해가 되질 않았다. 내가 어떻게 그 사람과 쉽게 친해지고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는지, 왜 그가 나에게 끌렸는지... 그 사람 속에 무엇이 어떻게 작용했는지는 알 수 없다.
어쩌면 그는 내가 자신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사람이기에 속 마음을 내보이기가 쉬웠을지도 모른다. 며칠간의 세미나만 끝나면 다시는 볼 일이 없는 사람이었기에, 다 털어놓아도 자존심 상할 것 없고 문제 될 것 없는 사이였기에 가능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이번엔 내가 그에게 수호천사로 나타났는지도 모른다. 지구라는 작은 공간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길동무가 되어주기도 하고 때로는 수호천사가 되기도 한다. 지금 이 순간 여기에서 함께 살아가며 새로운 조화와 질서를 만들어가는 창조자가 아닐까? 그렇다면 새로운 질서와 창조는 바로 우리 손에 달린 것이 아닐까?